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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자전거 관련 시민단체, 동호회와 함께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를 10주에 걸쳐 진행합니다. 세번째 주에는 유럽, 중국, 일본, 호주 등 세계 자전거 문화를 비교해 봅니다. 세번째로 유럽에서도 자전거와 대중교통의 연계가 잘 돼 있기로 소문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납니다. <편집자주>
▲ 비엔나 중심가로 산책나온 여성. 타기도 하고 밀기도 하고
ⓒ 배을선
지난 3월 봄방학을 마치고 고향인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유학생 크리스틴(Kristin)은 집앞 전신주에 매달려 있는 자신의 자전거를 발견하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전거 앞바퀴와 뒷바퀴가 도난당한 채 자신의 애마(愛馬)가 특이한 오브제로 휑하게 버려져 있던 것.

그 이후 한 달은 자전거 도난사건에 대한 불평, 또 다른 한 달은 뚜벅이 생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던 크리스틴은 비엔나의 토요일 벼룩시장이 열리는 나쉬막(Naschmarkt)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접이식 자전거를 25유로(약 3만원)에 구입했다.

오페라 유학생인 아이슬란드출신 욘(Jon)은 크리스틴이 가져온 맥주 두 병에 흔쾌히 무료로 브레이크를 수선해주었다. 맥주 한 병에 달달이 취해 자전거를 수선해 준 욘과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한 크리스틴은 이 중고자전거를 매개로 더 친한 친구사이로 발전했다.

혹시 이 이야기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비포 더 선라이즈>(Before the Sunrise)의 키치는 아니냐고?

자전거만 있으면 큐피드 화살도 필요가 없어

▲ 비엔나 시내 1구 중 가장 중심가인 슈테판스 돔 옆에 자전거들이 주차되어 있다.
ⓒ 배을선
한국에서는 "술을 마셔서 자동차를 놓고 택시를 타고 갔다" 등의 대화가 오갈 때, 비엔나에서 "술을 마셔서 자전거를 놓고 걸어서 집에 갔다" 등의 대화가 더 많이 오간다.

젊은이들과 학생들은 중고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나 학교에 등교하고, 자신들의 애마인 자전거를 도둑맞지 않기 위해 중고 자전거 등 튀지 않는 평범한 자전거를 선호한다. 1분이라도 자전거를 세워둬야 할 일이 있으면 꼭 그때마다 자물쇠를 채운다.

슈퍼에 장을 보러 갈 때도 짧은 거리를 자동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기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쇼핑트롤리를 끌고 장을 본다. 산책 나갈 때도 자전거와 함께 나간다. 시내 중심가 및 몇몇 구역의 우체국 직원들은 무조건 자전거나 트롤리를 끌고 다녀야 한다.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직원들은 주택들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수도권이나 시골지역에서나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자전거를 매개체로 애인관계로 발전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주차(?)하거나 수리를 맡기거나 하는 경우를 통해 친구들을 사귀기도 한다.

비엔나 사람들은 으레 "사람을 사귀고 싶으면 애완동물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거나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애완동물과 자전거가 흔하다는 말이자 이들이 큐피드의 화살을 대신해준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전거를 타냐고? 자전거가 사랑받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 비엔나 중심가의 직장에서는 업무상 기동력이 필요하면 자동차가 아니라 일단 자전거부터 배치해 놓는다. 오른쪽에 업무용 자전거들이 겹겹이 주차되어 있다.
ⓒ 배을선
작은 국제도시 비엔나에서 자전거는 필수

비엔나 시의 크기는 약 415㎢로 다른 유럽의 수도에 비하면 꽤 작은 편이다. 인구도 겨우 서울의 10분의 1 수준인 약 155만명(2001년 기준)이다. 지하철과 트램, 그리고 버스와 택시는 대중교통으로서 매우 큰 역할을 하지만 서울처럼 다양한 노선으로 긴 구획을 달리지 않는다.

겨우 6칸짜리 지하철은 그 노선이 매우 짧고, 트램은 보통 한 구(區)를 벗어나는 일이 드물다. 버스 역시 노선이 매우 짧고 언제나 안내판에 쓰여진 시간에 정확히 도착한다. 택시는 기본구간요금이 보통 5유로(약 6천원) 이상으로 비싸기 때문에 이용자가 매우 드물다. 이러한 대중교통들은 또한 보통 밤 9시에서 11시 사이에는 영업을 정지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밤 외출시 N버스(Nacht Bus)라고 불리는 야간전용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 심지어 대통령 궁으로 쓰이고 있는 합스부어그의 성 앞에도 자전거들이 빼곡히 주차되어있다
ⓒ 배을선
이뿐만이 아니다. 1구라 불리는 비엔나의 중심가는 대통령궁과 국무총리 집무실, 박물관, 대학교, 사무실, 상가 등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내이자 관광객들로 사시사철 붐비는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링슈트라세'(Ringstrasse)라 불리는 1구를 감싸는 도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보행자도로로 보호되어 새벽 6시부터 오전 9시 사이인 세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자동차가 통과할 수 없다.

따라서 비엔나 시민들에게 1구로의 외출은 언제나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이 더 경제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교통수단을 기다리느니 걸어가는 게 더 빠른 방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에 한 몫을 하는 것이 바로 자전거다. 자전거도로가 잘 구축되어 있는 비엔나에서는 운동목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보다 출퇴근목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비엔나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은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기름값, 주차비, 관리비, 그리고 교통혼잡으로 인한 상대적 시간소모 등 모든 것이 '투자'에 의존한다. 그러나 비엔나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모든 것을 아낄 수 있는 '절약' 그 자체다.

중국과도 유럽과도 다른 독특한 자전거 문화

▲ 지하철에서 자전거와 함께 타려면?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9시부터 3시까지. 6시 30분 이후부터 쭈욱.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일요일, 공휴일은 제한없이 탑승 가능.
ⓒ 배을선
비엔나에서 자전거 타기는 자전거왕국인 중국이나 여타 유럽 국가들과는 또 다르다. 비엔나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아이들과 여자친구를 자전거 보조석에 태우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은 헬멧과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유아용 자전거를 따로 탄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는 각자의 자전거를 따로 타고 함께 달린다.

자전거도로를 걸어가거나 방해하는 시민들에게 과민하게 따르릉 따르릉 연신 벨을 울려대는 독일 베를린과는 달리 비엔나 자전거 운전자들은 이상하게도 여유롭다. 그들은 뚜벅이 시민들을 기다리거나 오히려 비켜간다. 바퀴가 달린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한 보행자에게 먼저 양보하는 것은 자전거 운전자의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전거 운전자에게 비엔나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대중교통수단과의 자유로운 연계에 있다.

우리나라의 국철에 해당하는 슈넬반(Schnellbahn)과 지하철인 우반(U-Bahn), 그리고 트램인 슈트라세반(Strassebahn)은 복잡한 출퇴근시간을 제외하면 자전거 승객도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 지하철요금? 나홀로 승객은 성인요금, 15살 이하 어린이와 애완견, 자전거는 성인요금의 반값. 60세 이상은 50% 할인혜택.
ⓒ 배을선
일반적으로 자전거와 함께 탑승할 경우 성인요금의 반값에 해당하는 티켓을 사야하지만, 몇몇 지하철 노선은 접이식 자전거의 경우 별도의 요금을 받지 않거나, 연(year)티켓 소지자의 경우는 자전거 요금이 면제된다.

승객들은 큼직한 자전거와 함께 탑승하는 시민들을 위해 일부러 넓고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고 문을 잡아준다. 아무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언젠가 자신도 그런 방식으로 탑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리함은 비엔나의 티켓체크시스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티켓을 사지 않고 무료탑승하려는 불법시민들을 철저하게 금지하기 위해 2중 3중으로 지하철 입구를 폐쇄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에 비해 비엔나는 선진시민의식에 기반한 자율성에 의존해 지하철 입구를 백퍼센트 개방하고 있다.

지하철 입구를 자동시스템이나 바(Bar)시스템으로 막아놓지 않았기 때문에 자전거와 유모차, 장애인과 애완동물은 아무런 불편 없이 탑승하거나 하차할 수 있다. 대부분 시민들은 티켓을 체크하는 감독인이 없어도 스스로 티켓을 사서 펀칭을 한다.

▲ 비엔나 지하철 1호선의 가장 중심역인 슈테판스돔 역 내부. 가장 중심가이기도 하다. 서울로 치자면 명동역. 티켓체크시스템이나 바 없이 열려 있다.
ⓒ 배을선
티켓 한 장 값인 1.5유로(약 2천원)에 양심을 팔았다가 불심검문으로 40유로에서 80유로(5만원~10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고 창피를 당하느니 국가와 시가 제공하는 교통서비스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누려야 할 복지혜택.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나홀로 승객이든 동물, 짐, 자전거와 함께 동승하는 승객이든 누릴 수 있는 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비엔나는 언제나 제도를 개선해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시민들의 노력과 규율정신이 따라왔다. 바쁜 출근시간에는 누구도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지 않으며 금지된 시간, 금지된 존에는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질서를 지켜왔다.

좋은 제도는 국가와 시가 무조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시와 시민이 함께 지켜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그래서 비엔나에서 자전거 타기는 따르릉 따르릉 울리는 벨이 없어도 즐겁고 유쾌하다.

▲ 시내중심가 뿐 아니라 변두리와 수도권의 모든 시설에는 장애인과 유모차, 자전거 등이 아무런 불편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시설이 잘 되어있다. 왼쪽사진은 슈넬반이 지나가는 한 역의 출입 계단 모습. 오른쪽은 자전거를 밀고 가는 한 소년.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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