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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영국 잉글랜드의 술집 앞. 잉글랜드 국기(성 죠지)가 온 사방에 걸려있다.
ⓒ 김성수
▲ 10일 밤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부근에서 파라과이에 1대 0으로 승리한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응원단 수백명이 술을 마시고 응원가를 부르며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6강 진출이요? 그걸 못하리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아쉽게도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 축구팀을 응원하는 한 영국인의 말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세계에 자랑하는 영국인들의 자긍심과 기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답변이다. 잉글랜드는 2승 1무에 조 1위로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6강 못 간다는 생각, 해본 적도 없어요"

영국인들의 축구 사랑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게 늘 따라다니는 별명은 '훌리건의 나라'다.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진짜 훌리건들은 이번에 독일로 출국도 못했지만 그래도 영국인들의 악명은 이미 충분히 떨쳐지고 있다. 축구와 함께라면 '신사의 나라 영국'이란 이미지는 온데 간데가 없다.

'신사의 나라'란 이미지는 점잔빼기를 좋아했던 근대 영국 사회지도층이 만들어낸 한 단면이다. 근대 이후 시민교육시스템이 강화되어 영국인들이 많이 순화되었지만, 영국사에 드러나는 그들의 원래 모습은 우악스런 민족들이다. 몸에 문신을 즐겨했던 켈트족, 잔인함으로 호각지세인 앵글로족과 색슨족, 그리고 호전적인 바이킹 노르만족이 영국인들의 뿌리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시대, 100여년 이상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은 영국인들의 호전성 및 우악스러움과 미화된 영국의 이미지 속에 감춰진 영악성 및 차분함이 국가주의란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나타난 역사적 산물이다.

이런 면을 감안해서 영국의 축구문화를 보면, 저들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웃통을 벗어젖히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잉글랜드'를 환호하는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모습에선 영국인들 특유의 호전성과 국가주의가 보인다. 스웨덴 출신의 에릭손 감독이 지휘하는 잉글랜드 축구팀이지만, 영악성과 차분함이 함께하는 힘의 축구는 그대로다.

▲ 10일 밤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부근에 모여 잉글랜드 응원단 주변에 진압봉, 전기충격기, 가스총 등으로 무장한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알콜+단체행동+축구... "응원하면 피가 끓는다"

영국인들은 한국인들처럼 많은 수가 모여 대형스크린을 보면서 대대적으로 길거리 응원을 하지 않는다. 영국의 열혈축구팬들은 모두 술집(영국에선 '펍'이라 불림)에 있다.

잉글랜드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대학 구내의 술집은 물론, 크고 작은 전국의 모든 술집들이 축구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경기장에 가지 않는 열혈팬들은 맥주를 마시며 단체로 TV를 함께 보며 경기를 즐긴다.

알콜과 단체행동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문화이다 보니 시끄러워지는건 당연하다. 술에 취한 영국 축구팬들이 호전성과 우악스러움을 한껏 자랑하며 거리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다. 경찰은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동으로 비상체제다. 영국은 훌리건이 계속 재생산될 수 있는 토양과 문화를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영국은 원래부터 축구가 이미 사회 문화의 중요한 일부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에 대한 응원은 물론, 여러 하위리그에 속한 각 지역 대표팀들을 응원하면서 축구를 자기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영국인들이 많다. 영국에서 축구팬이라 말할 정도면, 국가대표팀 못지 않게 자기 지역팀에도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사람이다.

한 영국인은 "축구는 내 삶이다, 보는 것도 좋고 직접 축구를 하는 것도 좋다, 잉글랜드를 응원할 때면 피가 끓어오른다, 축구가 없다면 인생이 재미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주말만 되면, 자기 동네 축구팀의 유니폼을 입고 동네 공원 옆 축구장으로 뛰어나가는 사람들은 아이들뿐만이 아닌 것이다.

▲ <라디오 타임즈>의 20일자 TV 편성표. 스웨덴-잉글랜드의 경기는 ITV에서만 중계했다. 다른 방송사들은 월드컵이 없을 때와 같았다.
ⓒ 김성수
그러나 영국 언론은 침착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 영국 잉글랜드의 분위기는 4년 만에 다시 절정으로 향하고 있다. 상점마다 술집마다 잉글랜드 국기가 걸려있으며, 대형 슈퍼마켓과 백화점은 응원용품 판매 경쟁체제로 돌입한지 오래다. 개인 승용차들에도 국기가 휘날리고, 가정의 집 창문에까지 국기를 걸어놓은 집들도 많다. TV를 통해 경기를 보고 광분한 열혈축구팬들 이야기들도 간간이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잉글랜드 전체가 월드컵의 도가니 속에 빠져있는 상태는 아니다. 언론들이 월드컵 올인을 오히려 막고 있는 듯한 분위기. 대부분의 경기가 BBC와 I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지만, 한 경기는 TV 방송사 한 군데에서만 중계되며, 잉글랜드 경기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도 공중파 방송사들은 자기들만의 평소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공영방송 BBC는 월드컵 경기 중계방송 외에도 최신 다큐멘터리 시리즈들을 편성해서 교양 프로그램 방송을 더 강화하고 있다. 경기를 중계하지 않는 채널 4와 채널 5는 아예 각자 자기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채널 4는 매년 여름 방송되는 리얼리티 TV 쇼 '빅브라더'에 집중하고 있으며, 채널 5는 영화 편성을 더 늘렸다.

각 방송사 TV 뉴스나 신문들도 월드컵 기사들에 대한 할당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잉글랜드가 16강에 진출했을 때에도 당일과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집중적으로 반짝 다루었을 뿐이다. <미러>나 <선> 같은 황색언론들 정도가 월드컵에 상당 비율을 할애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언론들은 일반 사회문제에 더 집중하고 있다. 최근 영국 사회문제의 화두는 아동성폭력 해결이다.

▲ 스웨덴-잉글랜드 경기 후, 스튜디오에서 경기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ITV 방송의 해설진들은 이구동성으로 잉글랜드팀의 수비불안을 우려했다.
ⓒ 김성수
프리미어리그 눈높이에 맞춰진 축구해설가들

그렇다고 월드컵 각 경기들에 대한 영국 언론들의 분석과 비평이 무딘 것은 절대 아니다. 20일에 있었던 스웨덴-잉글랜드의 경기에 대해서도 언론들은 대부분 잉글랜드팀의 플레이를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전원 프리미어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잉글랜드 드림팀답지 않았다는 비판도 많았다.

영국 언론들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팀들에 대해서도 비판이 전반적으로 많은 편이다. 방송사 해설가들이나 스포츠전문 기자들의 비평 눈높이가 프리미어리그 수준에 맞추어져 있는 탓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정도가 대체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한국-토고전에서 BBC 해설진들은 한국팀에게 쓴 소리를 퍼부었다. 이천수의 프리킥은 좋았다기보다는 토고 골키퍼가 예측을 하지 못했으며, 현재 한국팀은 2002년에 비해 공에 대한 집중과 압박 모습이 많이 약해져 전 대회 4강팀의 면모를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다. 다만 안정환의 골에 대해서는 수준급이라 칭찬했다.

그래도 프랑스전에서는 사정이 많이 나아진 편. ITV 해설진들은 비록 비에라의 노골이 석연치는 않지만 이미 내려진 판정이며 프랑스팀은 한국팀을 상대로 더 잘했어야 한다고 프랑스의 플레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팀에 대해서는 전반전엔 많이 부진했으나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They never give up)"며 집념을 인정했다.

"한국팀, 스위스보다 한 수 아래지만..."

▲ 잉글랜드 응원용품 전문판매상점의 쇼윈도 모습이다.
ⓒ 김성수
조별리그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한국팀에 대해 영국 내 축구전문가들은 '스위스에 비해 전력도 약하고 한 수 아래지만 프랑스와의 경기 때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견해를 대체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토고전과 프랑스전에서 보여준 한국팀의 후반전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한 눈치다.

그러나 잉글랜드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더욱이 일부 팬들은 "잉글랜드가 4강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다, 팀이 수비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며 냉소하고 있다. 16강 정도엔 그리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고 있으며, 이제부터 잉글랜드의 승리가 계속되어야만 사회가 월드컵 중심으로 어느 정도 바뀌게 될 분위기다.

현재 잉글랜드는 팀 스트라이커에 대한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오언은 부상 진단을 위해 영국으로 되돌아올 정도라 향후 출전이 힘들 전망이며,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 돼 제 컨디션을 못내는 루니는 팀에 별 공헌을 못하고 있다. 월드컵 전엔 우승 후보라고 불리던 잉글랜드팀이 결승까지 올라 영국 사회를 월드컵에 올인하게 만들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월드컵에서 특별대우 받는 '축구종가' 영국

세계 최초의 국가간 공식 축구경기는 1872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경기로 인정받고 있다.

당시엔 영국(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을 구성했던 4개 지역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밖에서 국가간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축구의 기원국가는 현재 중국으로 바뀌어 공인된 상태지만, 영국(잉글랜드)은 근대 축구의 종가집 대우를 계속 받고 있다.

월드컵은 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최초로 개최되었는데 영국은 계속 참가하지 않았다. 1950년 브라질 대회때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축구협회 FIFA는 월드컵의 무게를 키우기 위해 축구종가집 영국의 참가를 종용했다.

이에 영국은 1800년대 후반 대우를 받아야만 참가하겠다고 했으며 FIFA는 이를 받아들였다. 월드컵에서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각기 따로 예선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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