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 대중문화 전문기자인 조은미 기자가 '비틀어뷰'를 통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영화, 드라마, 공연은 물론 대중문화 전반을 샅샅이 헤집으며 해학과 풍자가 있는 도발적 글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편집자주>
▲ 2006 월드컵 축구대표팀과 토고의 첫경기가 열린 13일 저녁 서울광장 일대에 20만명의 응원인파가 몰렸지만, 통행로가 확보되지 않아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초저녁부터 자리를 잡기위해 서울광장에 나와있던 시민들이 인파를 뚫고 이동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떴다! 우리나라 월드컵 거리 응원장에선 성추행범 활약이 눈부시단다. 방법도 가지가지요, 옹호도 가지가지다.

쉰일곱살 먹은 온씨 아저씨, 앞에 있는 여대생 엉덩이에 얼굴을 들이대다 걸렸다.

마침 경찰이 지나가는 바람에 잡혔다. 현장범이다. 그래, 재수없다. 만약 경찰이 못 봤으면 발뺌했을텐데. 낼모레 환갑잔치 예약한 이 아저씨,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다 늙어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할 것 없다. 족히 40년은 어린 여자애한테 로망을 실현하려다 노망든 게 증명된 거니까. 그런데 어떻게 밀리면 남의 엉덩이에 얼굴을 갖다대나?

이번엔 마흔살 먹은 김씨 아저씨, 10대 여자애를 끌어안고 가슴 만진 죄로 잡혔다.

이 김씨, 경찰서에서 이랬단다. "토고전 승리를 기뻐하면서 얼싸안고 좋아했을 뿐, 몸을 일부러 더듬은 것은 결코 아니다." '기쁨에 대처하는 이 남자의 자세' 참 희한하다. 껴안는 자세가 무슨 배구공 토스 자세냐? 팔이 상대방 등이 아니라 가슴을 덮치게? 행동이 사람같지 않으니, 말도 말같지 않게 하신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건 이들이 아니다. 뭐, 세상에 어디 이런 놈이 한둘이냐? 국회의원께서도 모범을 보이는 마당에, 백팔번 도닦는 심정으로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거리 응원 성추행 잇따라'란 기사에 달린 댓글 봐라.

댓글에서 규탄대회가 열렸다.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 영역권 인정과 생존권 쟁취를 위한 범시민 규탄대회'가 열릴 줄 알았더니, 웬걸? 솔직한 남성 네티즌 여러분이 알려주는 속사정은 참으로 황홀지경이다. 이 역발상의 미더덕이라니. 씹을 때마다 뜨거운 국물이 톡톡 터졌다. 어떻게?

동정이 들끓는다. 여자가 아니라 성추행범 영감님한테. 선망이 침 튀긴다. 용감한 여자가 아니라, 그 나이에도 왕성하신 영감님한테. 이해가 꿈틀댄다. 여자 때문인데 재수없이 걸렸다며, 이 영감님한테. 이러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 팔불출 콜이야."

"만진다고 닳기라도 하냐? 봉사한 셈 쳐"

네티즌이 말했다. "4년 만에 한 번 만지는 건데 좀 그냥 놔둬라.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이다." "만진다구 닳기라도 하나. 봉사한 셈 칩시다. 만지도록 만든 것들도 책임 있음다." "본보기로 재수없게 걸렸네요. 그런 사람 한둘이 아니던데. 솔직히 여자들 응원복 만지고 싶게 입고 다니긴 하지만…."

영감님이 못 참게 만들 정도로 벗고 나온 그 여자가 문제라니, 이게 무슨 부처님 가운데 토막 기절하실 말씀? 어차피 죽으면 썩어없어질 몸이라는 당신, 그 말 하니 궁금하다. 그럼 밥은 왜 먹고 사나? 화장실은 왜 가나? 어차피 죽으면 땅으로 돌아갈 거.

그리고 이 세상 여자가 모두 자신이 만지도록 만들었다고 믿는 거, 이 정도 과대망상이면 치료가 필요하다. 이단교 교주의 앞날이 보인다. 또 그 나이에 성추행하다 걸린 영감님의 정력이 부럽다면, 이 역시 치료가 필요하다. 얼른 병원에 가보시라. 얼마나 안 되면 그게 다 부러울까 생각하니, 내 가슴이 다 짠하다.

문득 걱정된다. 이리도 마음 넓으시고 상대방을 아끼는 이들, 프랑스전도 이리 관전하는 건 아닐까? "프랑스팀이 골 좀 넣는다고 축구공이 닳기라도 하나. 봉사한 셈 칩시다. 공 넣으라고 골대 만든 것들도 책임 있음다."

마음만 미쳐 날뛰어라, 손은 말고

▲ 월드컵 한국-토고전이 시작되기 전인 13일 오후 응원을 위해 시청앞 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지하철 1호선 4번 출구를 가득 메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면, 발정은 뇌를 잠수시키는 걸까? 남의 부적절한 발정을 보는 네티즌의 자세는 실망을 넘어 실소를 자아낸다. 그런 논리는 이런 논리와 똑같다. "오죽 열받게 했으면, 살인까지 했겠어? 죽은 놈이 죽을 짓을 했겠지. 쯧쯧. 재수없어서 잡혔네. 죽은 놈이 잘못이지, 죽인 놈이 무슨 잘못이야?" 이게 제정신으로 보이나? 강자의 논리에서 모든 건 약자 탓이다.

이들이 말하고 싶은 건 그거다. "그래 좀 만졌다. 그러니까 누가 만지고 싶게 만들래? 다,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여자들은 응원이다 뭐다 설치지 말고 집에서 방바닥이나 닦으라니까." 이러다간 새로 입법이라도 해야겠다. 법명? 노출금지법. 죄명? 만지고 싶게 만든 죄, 남 흥분하게 만든 죄. 물론 제일 먼저 고소당할 건 TV다. 미스 코리아 대회다. 온갖 미녀 대회다. 더워서 살 내밀게 만드는 여름이다. 그리고 수영장이다. 왜 벗고 나와 난리냐?

마음은 미쳐 날뛰어도, 손까지 미쳐 날뛰면 곤란하다. 남의 몸뚱이 더듬기 전에, 내 몸뚱이에 붙은 머릿속 다듬기가 필요하다. 성추행 대한민국으로 국위 선양하지 않으려면.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라. 여자 엉덩이 주무르러 4년이나 기다렸다니 미안하긴 하지만, 이왕 기다린 거 그 기다림 쭈욱 관짝까지 갖고 가면 안 되겠니? 월드컵이 A컵부터 D컵까지 여자 가슴을 최고로 많이 주무른 자에게 주는 컵 이름이 되기 전에.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