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고건과 이명박.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어지럽게 나도는 가운데 대권주자로 지목받고 있는 두 사람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런 걸 두고 '동시패션 편집'이라고 하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고건 전 총리를, <동아일보>는 이명박 서울시장을 1면 머리에 세웠다.

고건 전 총리를 내세운 편집의 행간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가 정계개편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은 진작부터 나왔다.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로 정계개편론이 세를 얻어가는 상황에서 그에게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궁금한 건 <동아일보>의 편집이다. <동아일보>는 '5·31 이후 정국'을 진단하는 릴레이인터뷰의 선두타자로 이명박 서울시장을 골랐고, 그의 가장 중요한 말로 "박(근혜)대표와 쪼개지면 국민 배신"을 뽑았다. 한나라당 내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말이다.

<동아일보>의 편집에 무슨 뜻이 담긴 걸까?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지금 추세라면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다. 딱 한 요인만 제어하면 그렇다. 특정 후보가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해 뛰쳐나가는, 야당발 정계개편만 없다면 그렇다.

▲ '<미래와 경제> 창립 발기인 총회'가 지난 5월 2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고건 전 총리가 박수를 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고건은 뭘 믿고 한나라당 중도파와 같이 갈 수 있다 했을까

그런데 희한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전한 고건 전 총리의 말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중앙일보>는 "한나라당 안에도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깨끗하고 개혁적인 분이 많기 때문에 그런 분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고건 전 총리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중도성향 의원도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고건 전 총리측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어떤 대권주자는 부잣집 문단속을 다짐하는데 어떤 대권주자는 부잣집 자식의 가출을 부추기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지금 상황으로 봐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말 같다.

경선 불복이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는 한나라당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 특정 대권주자가 경선 불복 가능성을 열어둘 만큼 상황이 막바지로 치달은 것도 아니다.

잘 나가는 부잣집에서 뛰쳐나갈 자식은 없다. 오히려 가출했다가 돌아온 자식이 부잣집 후광 덕에 단체장 자리를 꿰차는 형국이다. 연대를 희망하는 건 자유지만 성사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렇게 일축하려니까 뒷덜미가 간지럽다. 고건 전 총리에게 씌워진 이미지는 '좌고우면'이다. 돌다리는 물론이고 콘크리트 다리조차 두드리고 건넌다는 평가가 있다. 그런 고건 전 총리가 허장성세를 부릴까? '신중'과 '과장'은 양립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고건 전 총리는 뭘 믿고 한나라당 중도성향 의원들과 같이 할 수 있다고 했을까?

▲ 지난해 11월 '뉴라이트 전국연합(상임의장 김진홍 목사) 창립대회'에서 만난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의 경선승복 발언 무엇을 의미하나

이 지점에서 이명박 시장의 경선 승복 발언이 새롭게 들린다. 역으로 읽자. 당연지사를 재삼재사 강조하는 데에는 당연지사를 거역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시선이 있음을 반증한다.

이렇게 보면 고건 전 총리의 연대 가능 발언은 '희망'이라기보다는 '대비'에 가깝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 즉 한나라당 경선이 과열로 치닫고 그 결과 불복 세력이 당을 박차고 나오는 상황에 대비해 포석을 깐 발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나만 더 짚자. <조선일보>에 소개된 고건 전 총리측 관계자의 말에 의미 있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연대 대상으로 민주당과 한나라당 중도성향 의원 외에 '열린우리당의 호남·수도권 의원'을 꼽았다.

왜일까? 왜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호남·수도권 의원'으로 한정했을까? '열린우리당의 호남·수도권 의원'의 맞은편에 누가 있기에 이렇게 울타리를 쳤을까?

언뜻 떠오르는 건 '영남파'다. 범위를 좀 더 확장하면 '개혁당파'도 포함될 것이다. 이들은 정계개편에 반대하는 친노 직계그룹이다.

고건 전 총리는 이들이 자신과의 연대를 거부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아울러 연대를 한다 해도 득 될 게 없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고건 전 총리는 <조선일보>·<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실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참여정부의 첫 총리면서도 참여정부와 거리두기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이지만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고건 전 총리 입장에서 친노세력은 부담거리다.

관전 포인트가 잡혀가고 있다. 대선이 현재의 구도에서 치러질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변화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변화가 필연이라면 변화의 발원 지점은 역시 고건 전 총리와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조중동의 '동시패션 편집'이 던져준 오늘의 선물이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하나만 더 간단히 언급하자.

'영남파'와 '개혁당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계개편을 반대하는 차에 정계개편의 중심인물이 자신들을 마뜩찮게 본다면 선택항은 줄어든다. 딴살림을 차리는 게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가 약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역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연대대상은 누굴까? '영남파'나 '개혁당파'도 한나라당 경선 불복 세력 외에 달리 고를 짝짓기 대상이 있을까?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