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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상최악의 참패를 당해, 당사에 마련된 선거상황실이 썰렁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집권여당 사상 최악의 참패라고 한다. 맞다. 최악이다. 당선자 숫자만이 문제가 아니다. '질'도 사상 최악이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한나라당 당선자의 득표율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평균 60%대를 기록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20%대에 머물렀다. 더블 스코어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율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일각에서는 분당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해체한 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맞지만 틀리다. 분당으로 호남표를 분산시켰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또 하나의 지지층인 개혁표의 이탈은 설명하지 못한다.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한 개혁표 상당수가 부동층으로 남지 않고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선 까닭은 뭔가?

개혁표가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선 까닭은?

그래서 사회 전반의 보수화 흐름에 주목한다. 열린우리당에 비해 정도는 덜 하지만 역시 패배한 민주노동당의 경우도 이 틀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정답률이 100%인 건 아니다. 개혁표가 '보수와의 동침'을 택한 현상만 보면 맞다.

문제는 이런 현상의 지속성이다. 일시적 현상이란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선 결정적 이유가 정부 여당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지, 이념 성향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비유하자면 홧김에 서방질한 것이지, 혼인신고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부여당이 이런 흐름을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월, 지방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가 아니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고, 이후 '노무현 요인'이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나갔다. 이해찬 총리에 대한 야당의 경질 요구를 순순히 들어줬을 뿐 아니라, 정치색이 엷은 사람을 후임 총리로 앉혔다. 지방선거가 '반노' 구도로 치러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열린우리당도 지방선거 직전 한나라당의 사학법 재개정 요구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훈수'까지 물리치고 오히려 6개 민생·개혁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개혁 이미지를 유권자에 각인시키려 한 것이다. 왜일까? 정부여당이 선제적으로 차단조치를 취했는데도 전통적 지지층은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자명하다. 정부여당이 꺼내든 건 백신이 아니라 항생제였다. 백신을 주사할 시점은 놓친 지 오래였고, 기껏해야 합병증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투약하는 게 전부였다.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총체적이다. 개혁 좌초에 대한 실망감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보인 혼선에 대한 불신감도 뿌리 깊다. 이런 마당에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들어주자 말자 갑론을박했고, 나중에는 청와대와 엇박자를 쳤다. 딴에는 이미지 쇄신을 하려고 했지만 실체만 온전히 노정시켰다.

정계개편, 과연 차선책일까?

열린우리당은 석고대죄를 운위한다. 또 정계개편을 바란다. 그런다고 살 수 있을까? 반성은 갱생으로 이어져야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그럼 열린우리당의 갱생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고, 당내 그리고 정부와의 정책 조율도 매끄러워야 한다. 하지만 어렵다.

▲ 31일 저녁 5·31지방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나타나자, 정동영 의장이 의장실에서 소감을 밝힌 뒤 자리를 뜨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 참패로 이미 정국 주도권을 잃었다. 드라이브는 고사하고 후진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정책 조율도 매끄러울 수 없다. 한미FTA 협상이 문제다. 중산층과 서민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한미FTA를 앞에 두고 열린우리당이 무조건 정부를 지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 지도부 약화에 따라 당내 정책갈등만 심화될 수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열린우리당이 자력갱생할 길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정계개편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을 구축해 새 리더십을 구축하고, 정국 주도권을 회복해 개혁 드라이브를 걸며, 정부가 따라오지 않으면 힘으로 강제하는 방법이다.

문제가 있다. '영남파' 인사들의 동태가 심상치가 않다. 이들이 반기를 들면 정계개편 효과는 반감된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가세하면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계개편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그러려면 노무현 대통령은 두 가지를 감수해야 한다. 자신이 주도했던 분당의 과오를 인정해야 하고, 임기 후반기 주요 국정과제를 접어야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독자 행보를 긋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분당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모아 당을 만들면 정책 사안에 따라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넘나들며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선택하면 정권 재창출에 등 돌린 분열주의자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정리하자. 열린우리당도 살 길이 보이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도 뾰족수 찾기가 힘들다. 말 그대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형국이다. 이럴 때 정치권이 쓰는 말이 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라는 말이다.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대통령 모두 최선 카드는 없다. 어차피 차선을 택해야 한다.

'최선'과 '차선'의 차이는 하나다. 손해를 감수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대통령 모두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게 역설이다. 확장을 위해 축소해야 하고, 투기(鬪技)를 위해 투기(投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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