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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드러낸 하천 잉글랜드 동부에 위치한 에식스 주의 한 하천. 이번 가뭄 여파로 인해 평균 수위가 상당히 낮아졌다.
ⓒ 김성수
비와 우산의 나라로 유명한 영국이 올해는 물 부족을 걱정하는 중이다. 비가 안 온 것은 아니지만 잉글랜드 동부와 남부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예년에 비해 엄청나게 적었다.

게다가 지난 5월의 강수량은 1983년 이후 가장 높았으나 괴이하게도 일부 지역은 이제 본격적으로 물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기존에 내렸던 비의 양이 워낙 적었던 탓이다.

물 부족 위험지역의 야외생태계도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비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나라, 영국

영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외국인들이 쉽게 느끼는 큰 불편 중 하나는 날씨다. 특히 늦가을부터 초봄 무렵인 11월에서 3월까지의 영국 날씨는 최악이다. 한 달 중에 비(아주 추울 때만 눈)가 전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이 며칠 안된다.

영국에서는 '샤워'라 불리는 간간히 흩뿌려지는 비, 장마철에나 내릴 법한 소나기, 강한 바람을 동반하는 준태풍형 비, 우박이나 서리와 함께 떨어지는 비, 해는 떠 있는데도 내리는 비, 오락가락 하루종일 끈질기게 오는 비 등등 비의 종류도 다양하다.

비오는 게 이 정도다 보니 영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선 산에 갈 때 입는 모자 달린 방수점퍼를 평상복처럼 입으며 웬만큼 살살 오는 비는 그냥 맞는다. 영국 신사의 트레이드마크가 우산, 영국제 명품의류가 버버리 코트, 영국 영화에서 비오는 날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 <윔블던>엔 "영국인들은 발에 물갈퀴가 달린 인간으로 진화할 것"이란 대사도 나온다.

이처럼 비의 축복(?)을 받고 사는 탓인지, 영국에는 개인 정원과 공공 공원들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일반 주택에 사는 중산층들과 좀 넉넉한 수준의 서민들 대부분이 집 앞이나 뒤에 자그마한 개인 정원을 가지고 있다. 또 시골 생태계도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산업혁명의 폐해를 이겨낸 영국인들의 자연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다.

사실 비 자체가 영국 문화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겨울은 오후 4-5시 정도만 되면 밤처럼 어두워지는데, 이때 부는 비바람은 추리·괴기소설의 무대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또한 19세기 대영제국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들을 만들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한 이유가 '해'를 계속 보기 위해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있다.

최근 급감한 강수량... 남부 일부 지역은 평년 절반도 못 미쳐

최악의 강수량 3월 중순 BBC뉴스 인터넷판의 물 부족 상황 분석 기사. 위 도표는 잉글랜드 남부지방(붉은색 부분)의 물 저장량이 50%밖에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래 도표는 지난 2005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강수량이 2004년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음을 보여주는데, 특히 비가 많이 와야 정상인 1월의 2006년 강수량은 최악이다.
하지만 최근 수개월은 양상이 좀 다르다. 영국 브리튼섬의 북부지역은 그럭저럭 비가 많이 내렸지만, 중부 이하 지역은 현저하게 줄었다. 특히 지난 겨울은 유달리 비나 눈이 평년에 비해 적었다. 70년새 최저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는 문제의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강수량이 평균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영국 기상청은 이렇게 된 주원인을 대서양 내에서 발생해왔던 폭풍들이 영국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않았다는 데서 찾고 있다. 이 폭풍들은 영국의 가을과 겨울에 많은 습기를 제공하고 비를 오게 하는 원천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난 겨울엔 브리튼섬 밖의 북쪽과 남쪽에만 영향을 미치고 섬 내부엔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다.

작년 10월에만 많은 비가 왔을 뿐, 이후 강수량은 계속 평균치 아래였다. 그러다가 지난 1월부터는 그나마도 평균치의 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지금도 예전처럼 구름 많은 날 역시 많고 비도 간간히 오고 있지만, 잉글랜드 전체를 해갈시킬 만큼의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16일, 영국 환경청은 현재 영국 일부 지역이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맞게 되어 물이 부족하게 될 위기라고 경고했다. 그간 1단계 '물 호스 사용금지'가 몇몇 해당 지역에서 행해져 왔었다가, 결국 지난달 27일 11년 만에 잉글랜드 남부의 서튼과 써리 동쪽 지역 일부에 2단계 '가뭄경보'가 발령되어 65만명이 물 사용 제한조치를 받고 있는 상태다.

땅바닥이 갈라지고 영국 한 포털 사이트의 가뭄 관련 스페셜. 일부 지역의 땅바닥이 갈라진 모습이 보인다.
'매일 35억리터의 물이 수도관에서 줄줄 샌다'

영국내 일부 환경운동가들과 물 전문가들은 이 위기를 단순하게 강수량의 급감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다. 이들은 풍부했던 비 때문에 그간 물 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해 왔던 정부 당국과 수도회사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특히 노후화된 수도관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물이 새어 나가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강하게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BBC 뉴스 인터넷판 5월 23일자는 작년 한 해 동안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노후되어 누수되는 수도관 때문에 매일 35억 리터 이상의 물이 지면으로 흡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영국 상수도 1일 공급량인 150억 리터의 5분의 1보다 많은 양이며, 영국인들이 1년간 마시는 포장 생수의 전체량보다도 많은 양이다.

영국의 3단계 물사용 제한조치

영국은 물 공급이 모두 사설화되어 있으며 회사간의 물 매매도 이뤄지고 있다. 영국에는 3단계의 물 사용 제한 조치가 있는데, 수도회사와 그 수도회사가 제공하는 가정에 적용이 된다. 정부 당국의 권고에 따라 행해지며 수도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 1단계 '물 호스 사용금지(Hosepipe Ban)': 수도회사는 물이 공급되는 각 가정에 물 호스 사용 금지를 명한다. 사업체는 예외가 될 수 있다.
- 2단계 '가뭄경보(Drought Orders): 수도회사는 공급되는 가정 및 모든 사업체에 물 호스 사용 금지뿐만 아니라, 개인용 소형수형장, 인공연못, 물 분수 등 물 관련 설치물 사용 금지를 명한다. 물 청소, 물 세차 등 기타 물이 많이 들어가는 모든 행위들 역시 금지된다.
- 3단계 '가뭄비상경보(Emergency Drought Orders)': 수도회사는 물이 공급되는 가정 및 모든 사업체에 특정 시간에만 물을 공급한다. 최악의 경우 물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즈> 5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미 영국 정부산하 수도서비스 감독기관인 OFWAT은 현 물 부족 상황을 날씨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또

BBC 뉴스 인터넷판 5월 23일자 보도에서 환경문제 전문가인 쉐퍼드 박사가 "수도관 밖으로 새 나간 물은 완전히 소실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물로 되돌아 온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새 나간 물은 결국 지하수로 흡수되고 우리가 사용하는 물로 되돌아 오는 과정에서 토양 및 자연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치며, 물 정화비를 줄여주는 효과도 낳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 제한 사용으로 인해 개인 정원에 물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은 이에 별로 동감하고 있지 않는 형편이다. "만일 그렇다면, 물 호스로 청소하면서 흘러간 물도 도움이 되는데, 왜 물 호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네티즌들도 있다.

이 상황에서도 물 부족 지역 영국인들의 정원 가꾸기에 대한 불타는 집념은 꺼지지 않고 있다. 물 호스를 사용해서 정원에 물 주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 여전히 정원으로 상당량의 물이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물 부족 현상이 본격적으로 우려되기 시작한 3월부터 언론들은 정원에 효율적으로 물주는 방법 등을 보도하기도 했다.

"물 걱정이 태산" 물문제를 다루고 있는 최근 BBC 뉴스 한 장면. 최근 언론은 영국민들에게 물에 대한 경각심을 계속 높이고 있다.
북극의 빙산을 끌어오자?

이런 와중에 불과 10여일 전 잉글랜드 북부의 상습침수지역인 요크는 비로 인해 도시 일부가 침수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남부는 물 부족 현상으로 고민이 계속 심각해지고 있는데. 북부는 홍수가 발생한 것이다. 또 북쪽 스코틀랜드는 남쪽 잉글랜드나 웨일즈와는 달리 물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어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에서 남부로 물이 실제로 수송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부에서 인구가 많은 남부로 물을 실어와 대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더 타임즈> 5월 17일자는 수도회사 사장들이 모여서 북극의 빙산을 런던 템즈 강으로 끌어오는 것에 대해 상의했다고 보도했다.

25일, 당국은 런던을 포함한 동남부 잉글랜드 지방 수도회사들에게도 '가뭄경보'를 상황에 따라 계속 발령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에 전반적으로 날씨도 많이 안 좋았고 비도 상당히 많이 내렸으나 가뭄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땅 속내 지하수층도 지금 상당히 말라있으므로,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영국 기상청은 앞으로도 비는 오겠지만 물 부족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현재 잉글랜드 중부 지역 이하엔 비가 오락가락 꾸준히 내리고 있는 편이지만 큰 비는 없다. 영국은 장마가 없고, 6-7월이 건기라는 면을 감안할 때, 기상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물 부족 현상은 더 심해지거나 최소한 계속될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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