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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자네도 내가 비겁한 암수를 썼다고 생각하는가?”

“..........!”

“만약 자네가 이것이 불편하다면 다시 거둬드릴 수 있네. 그러길 바라는가?”

말 그대로 도산검림(刀山劍林) 속에서의 대결. 생사를 가르는 승부처로 더 이상 적합한 장소는 없을 것이다.

“아니오. 아주 마음에 드오.”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칼날은 스치기만 해도 살이 베어질 것 같이 날카로워 보였다. 칼날과 칼날 간의 공간은 오직 서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닿지 않을 정도로 빽빽했다. 자칫 그 안에서 전후좌우 잘못 움직이다가는 잘 다져진 육편(肉片)이 될 것은 뻔한 일. 공간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움직이기도 어려울 터였다.

더구나 늘어져 있는 칼날들은 일종의 병기였다. 그것은 어쩌면 공평한 병기였다. 늘어진 칼날을 잘 이용한다면 자신의 병기가 될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의 병기일 수도 있었다. 늘어진 칼날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병기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허나 담천의가 거절하지 않은 것은 승부에 앞서 보이는 일종의 기세였다. 마음에 들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상대는 이것에 대해 자신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는 데에 있어서도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마다한다면 처음부터 한풀 꺾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냉정하게 따지자면 어떤 곳이든 주어진 상황은 역시 똑같은 것이다.

“자네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스런 일이군. 자고로 칼날에는 눈이 없네.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네. 나는 실망하기 싫네.”

두 사람은 사각형 모서리에 대각선으로 서 있었다. 모서리를 밟고 돌아갈 수는 있지만 자칫 상대가 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대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결국 늘어진 칼날 사이를 헤집고 다가가야 한다. 특별한 방도는 없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소.”

담천의는 대답을 하면서 진기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동시에 천천히 방백린을 행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몸이 칼날 사이로 들어섰다.

촤르르-----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몸이 칼날 속으로 들어서자 칼날들이 그의 몸을 중심으로 일정 방원을 그리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칼날에 연결된 줄들이 물 흐르는 듯한 소리를 냈다. 무형의 기를 발출함으로서 칼날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좋군....!”

그것을 보고 있던 방백린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반짝 빛냈다. 한 순간 그의 눈에 푸른빛이 감도는 듯 했다.

촤르르--- 치이이---

그러자 담천의의 주위에서 밀려나 있던 칼날들이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다시 방원을 좁혀드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세 자루의 칼날은 가로로 세워지며 담천의 상체를 파고들었다. 걸어가던 담천의가 멈칫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한 시대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승부가 이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담천의에게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이 승부는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는 천년비동(千年秘洞) 천동에서 그 막이 올랐다.


“.............!”

허나 담천의는 잠시 멈추었을 뿐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 다만 진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에 희뿌연 백기가 감도는 듯 보였다. 그러자 좁혀들던 나머지 칼날들도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파고들었던 세 개의 칼날 역시 그의 몸 한치 앞에서 더 이상 파고들지 못하고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떨리며 눈에 보이지 않게 다가왔다가는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내력을 끌어올려 상대의 염화심력과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제법이군.”

방백린이 고개를 끄떡였다. 자신의 염화심력에 대항할 정도라면 그만큼 담천의의 내공이 심후하고 정순하다는 증거였다. 그가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염화심력이지만 먼 거리에서 그 위력을 모두 발휘할 수는 없다.

그에 따라 담천의도 멈추었던 발을 떼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파고들던 세 개의 칼날이 튕겨 나갔다. 빽빽하게 늘어진 칼날들도 다시 그를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한 순간에 서로를 알기 위해 벌였던 가벼운 접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간단한 교환으로 현재 상황이 담천의에게 매우 불리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천정에서 늘어진 칼날은 그저 보기에는 똑같은 조건인 듯싶었지만 그에게는 모두 상대의 병기와 다름없었다.

천동의 비학은 염화심력을 기초하여 이루어진 무학이다. 오감(五感)을 극도로 개발하고 무의식적인 신체의 반응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진 무학이다. 만약 경쟁자가 있어 그들 사이에 승부를 보아야 한다면 이처럼 적합한 장치도 없을 것이다.

방백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천동의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승부를 하자고 한 것은 오히려 담천의를 인정하고 대우해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담천의에게 매우 불리한 장치였다.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 칼날의 움직임이었다. 방백린은 팔짱을 낀 채 아주 자연스럽게 칼날 속으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칼날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길을 스스로 터주는 것 같았다. 부드럽게 비키다가 지나가면 고요히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담천의가 진기를 운용해 밀어낸 후에 흔들리는 것과는 딴판이었다.

촤르르륵---!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담천의의 주위에 칼날들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담천의가 진기를 더욱 끌어올린 이유도 있었지만 멈춰져 있던 칼날들이 그가 다가오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담천의의 진력에 의해 튕겨나갔던 두 개의 칼날이 갑자기 좌우에서 겨드랑이 쪽을 노리며 사각을 그렸다. 동시에 그의 전면에 있던 세 개의 칼날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그의 정수리를 향해 쏘아 내렸다. 뿐이랴! 그의 뒤에서도 역시 세 개의 칼날이 그의 목뒤를 향해 내리 꽂히는 것이 아닌가?

칼날은 교묘한 배합을 이루고 파고들어 피할 공간이 없는 담천의로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는 듯 했다. 하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진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튕겨내는 것과 또 하나는 손발을 이용해 막아내는 것. 다른 칼날들 역시 그의 주위를 스쳐지나가고 있어 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슈우욱----!

하지만 담천의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상체를 굽혀 몸을 낮춤과 동시에 몸을 수평으로 만들었다. 마치 학(鶴)이 한발을 딛고 날개를 편 듯한 백학독립(白鶴獨立)의 자세와 같았다.

동시에 오른발을 들어 뒤쪽에서 내리 꽂히는 칼날을 차고, 상체를 더욱 낮추자 쏘아졌던 좌우 두 개의 칼날과 앞쪽의 칼날이 미세한 차이로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결국 이것이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칼날들은 허리 이하로 낮출 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가 오른발을 들어 뒤쪽의 칼날을 찬 것은 앞으로 나가기 위한 동작이었을 뿐이었다. 그의 신형은 자세를 낮춘 채로 칼날을 헤치며 방백린 쪽으로 빠르게 쏘아갔다.

슈우우욱----!

어느 틈에 발검을 했던가? 칼날 들 틈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 같았다. 삼사 장정도 되는 꽤 먼 거리였지만 그의 검은 어느새 방백린의 하체를 쓸어가고 있었다. 바로 만검의 깨달음이 펼쳐진 것이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가장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그 검...! 담천의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다.

“..........!”

방백린의 얼굴에 이채가 띠어졌다. 발검한 것은 본 것 같은데 어느새 검은 자신에게 다가와 있다. 놀라운 일이다. 이 정도의 경지까지 올랐는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소주 한 잔할 장소와 일시를 공고합니다. 
5월 마지막 주로 정하려 하다가 모두 바쁘실 것 같아 조금 앞당겼습니다. 미국에 있는 분 중 운 좋게 한국에 나오셔서 참석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계셨고, 다음날 부담도 없을 것 같아 금요일로 잡았습니다. 

일시 : 5월 26일(금) 오후 7:00시 
장소 : 광화문 뒷골목 밥상머리 2층(세종문화회관 뒷편 : TEL 02-723-0288) 

이십여 분 정도가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메일을 주셨습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 계시는 분들이 메일주시며 참석하지 못해 서운하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 메일을 주시며 격려하셨던 분들이나 댓글로 성원해 주셨던 분들, 날카롭게 비판하셨던 분들이 모두 참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동안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읽으셨던 분들도 이번 기회에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 

편하게 나오셔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은 없습니다. 흉금 없이 제가 보지 못한 시각에서 본 <단장기>에 대한 평도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 메일이나 답글을 주시지 않고 참석하셔도 무방합니다. 

비용은 그 동안 오마이뉴스에서 단장기를 연재하면서 받은 원고료와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셔 주셨던 '좋은 기사 원고료'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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