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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는 신문이나 잡지에 특이한 이력을 가진 화가로 간간이 소개되었다. 걸개그림을 그린 사람이라는 것만 알던 나는 최병수 그 이상이 이 책에 들어 있음을 알았다.

그가 단순히 ‘화가’일 수만은 없는 까닭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목수라는 직업으로부터 수십 수백 가지 일들을 자신의 운명처럼 거쳐 온 사람만이 그 경험과 고통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 최병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책을 받아놓고 거의 300쪽이나 되는 책을 하루만에 읽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한숨 짓다가 또 눈물을 훔치며 밥을 해 먹어가면서 하루만에 읽었다. 책을 덮고 나는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화가를 거부하다가 화가가 되어 버린 사람. 목수일을 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들이 마치 그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책이 곧 삶’임을 말하고 있다. 아니 이 책을 말하는데 ‘책은 지난한 고난을 겪어간 이들의 피와 땀으로 새긴 조각’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듯 하다.

‘한열이를 살려내라’와 같은 당시의 현안들을 그린 걸개그림에서부터 ‘반전반핵도’, ‘최후의 만찬’ 등과 같은 그림들이 어떻게 ‘목수’라는 사람에게서 나오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개인이 아늑한 화실에 앉아 화병에 꽂힌 정물을 그리거나 인물화를 그리는 것만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힘차고 꿈틀대는 생생한 생명력을 갖는다.

“그는 주저함이 없다. 그의 작업은 매우 순간적이며 즉각적이다. 가장 먼저 그의 촉수에 도달한 정보에서 사태의 핵심을 추려내고 단순하고 명백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의 작업은 저항과 투쟁과 반발과 호소의 감정에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호소력 있는 표현에 집중된다. 앞뒤를 재고 논리를 따지고 평가를 가늠하는 따위의 모든 행위는 사치스러울 뿐이다.” <본문 191쪽> 김진송의 말에서

그 생명의 힘은 그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박학다식’하게 정통한 ‘유식한 학자’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가 내 뿜는 그림에서의 힘과 활력은 ‘일자무식’의 ‘단순함’과 사냥개가 먹이를 찾아 낚아챌 때의 ‘동물적 후각에 비견할 만한 민감성’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도 당대의 시사와 현안과 문제성이 다분히 함축되어 있는 그림의 이미지를 이끌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미술사를 공부한 김진송이 최병수의 말을 듣고 지은 것이다. 김진송은 우연하게도 최병수와 같은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같은 시절 비슷한 또래로 나 역시 그 동네에서 살았다. 그래서 어쩌면 서로 마주쳤을지도 모를 공간과 시간의 배경이 가깝게 다가왔다. 우연치고는 참 신기했다. 책에서도 언급된 상도동의 강남국민학교, 장승백이, 양녕대군의 묘가 있던 산, 자주 간판이 바뀌던 강남극장 등이 지금도 눈앞에 아스라이 떠오른다.

새만금 뻘에서 혀를 빼물고 죽어간 조개들의 사진이 인터넷 뉴스로 올라온 것을 보았다. 어디 조개뿐이랴, 막대처럼 생긴 조개도 있고 숭어도 애처롭게 누워 있다. 재작년 변산 근처를 여행하면서 우뚝 우뚝 솟아있는 갯벌의 솟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었다. 우리에겐 단순히 ‘뻘쭘’하게 들어오는 스산함도 그의 감각에서는 걸개그림의 중후한 경관으로 재해석되어 나타난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한 사람의 여정이 격랑을 헤쳐 가는 돛단배처럼 보인다.

그가 그렇게 치열한 그림과 또 그림판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현실의 미술판에서는 어느 한 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있다는 게 아니러니 하다. 그것이 또 다른 우리의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그가 정착하려고 하는 따뜻한 남쪽 여수에 아직도 그가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평택 대추리에서는 미군부대이전 문제를 놓고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병수의 연대기에서 그의 출생지가 우연찮게도 ‘평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최병수는 다시 여수를 떠나 평택에 있지 않을까? 그의 건강이 평택 대추리의 건강이 되기를 빈다.

덧붙이는 글 |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 말하고 김진송 글을 짓다/현문서가
책값: 295쪽 12,800원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현실문화(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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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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