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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9 장 마지막 안배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다. 또한 공평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스스로의 장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자신의 단점 역시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공평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기회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으려 노력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추구할 때 공평하다고 생각되는 기회가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알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실패하고, 언제나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접는다면 성공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짐에도 말이다.
그의 나이는 이제 열여덟이었다. 조부로부터 매우 명석한 두뇌를 물려받은 그는 한 때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늘을 원망한 적이 있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명이 세워진 이래 모두 죄인이었고, 그는 백련교에 가입한 조부와 그의 부모로 인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이 되었다.
사내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무공을 익히려 했지만 그는 무공을 익히기 어려운 체질이었다. 또한 그는 대단히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사람들은 그의 누나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리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백련교에서는 자신의 누나를 선택했고, 그로서는 꿈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분명 불공평했다.
하지만 그는 불공평하다고 원망만 하고 있지 않았다. 분명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조부는 그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마침내 누군가가 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 너는 아마 이 중원에서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세상을 벌벌 떨게 했던 너의 조부도 너의 두뇌에는 못 미칠 것이다. 더구나 너에게는 아무도 가지지 못한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고, 네가 그 능력을 부여받은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 이 늙은이는 네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가지 구결(口訣)과 천기를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비기(秘記)를 가르쳐주마. 허나 너는 그 구결과 비기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그 구결로 익힌 능력을 남용하게 된다면, 비기를 깨달아 천의를 역행하려 한다면 이 세상은 매우 혼란에 빠질 것이고, 이 늙은이는 하늘이 부여한 네 능력을 반드시 회수할 것이다.
- 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되,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공부하도록 해라. 어쩌면 이 늙은이는 너에게 두 가지를 준 대가로 단 한 번의 부탁을 할지 모른다.
나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의 노인은 자상한 분인 것 같았지만 그 말씀을 하실 때에는 매우 엄한 모습을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 노인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자신의 조부까지도 그 노인에게만큼은 매우 공경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 노인이 가르쳐준 구결을 이해했고, 비기를 해독해 깨달음을 얻었다. 남들이 평생을 허비해도 얻지 못하는 깨달음을 그는 단 십년 만에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특별한 능력을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아마 다른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사술이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었다.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체질은 이제 그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십년 동안 그는 하루에 두시진 이상 잔 적이 없었고, 일각 이상 식사 해 본 적이 없었다. 조부 외에는 아무도 그를 주시하지 않았고, 그의 특별한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어떠한 것에도 간섭받지 않는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주위에는 모두 그의 조부와 같이 장애를 가진 노인들뿐이었고, 바깥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지만 그는 절대 심심하지 않았다. 남들이 잔결방(殘缺邦)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그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아이였다. 그가 세상을 처음 나와 본 것은 사년 전 누나와 함께였고, 그는 그때 누나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다행히 음울한 눈빛을 가진 사내가 자신과 누나를 보고는 검을 거두고 떠났기에 살 수 있었다.
허나 이제는 다시 그를 만난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목숨을 사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지 않을 능력과 자신이 있었다. 창칼을 휘두르고 주먹을 잘 휘두르는 것이 무공의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또 다른 힘이 숨어 있었다.
그가 세상에 나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보름 전 조부가 자신을 찾아왔고, 자신에게 구결과 비기를 가르쳐주셨던 노인의 부탁을 전해주었다. 허나 그것은 어쩌면 쓸모없는 짓이었다. 이미 그는 노인이 부탁할 내용을, 그리고 조부가 그 사실을 부탁하고자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조부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이미 꾸려놓았던 행장을 들고 길을 나섰다. 세상을 구경하며 그는 보름 만에 천마곡에 당도했고, 초췌한 모습의 누나를 만날 수 있었다. 누나의 입이 되었던 당새아란 여인은 어느새 누나의 감시자로 바뀌어 있었고, 조롱 속에 갇힌 한 마리 새에 불과했다.
그는 이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기다림이 최선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하늘이 부여한 그 능력을 사용하면 될 것이었다.
“천동에 오룡은 그 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동주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네. 그것은 천동의 동주가 익혀야 할 비술(秘術) 때문이었지. 무공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법술(法術)이러고도 할 수 없는 그것.”
법술은 무공은 아니다. 하지만 무공만큼의 위력이 있다. 도가(道家)에서는 법술을 익힌 인물들도 꽤 있었다. 정통 도가에서는 본류에 어긋난 것이라 심지어 사술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부적이나 몽환연(夢幻煙)으로 환영을 만들어 상대의 눈과 마음을 홀리는 데에는 그 위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홀린다고는 하지만 법술의 위력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당하는 상대는 그것이 환영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 믿게 되고, 그 환영에 실제 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염화심력입니까?”
“그렇다네.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능력은 강인한 육체에서 나오는 무력이 아니라 정신력이네. 많은 이들이 염력이라고도 하고 심력이라고도 하는 그것이지. 무공이 극에 달한 고수들은 때로 심력을 사용한다네. 자네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기어검(以氣禦劍)이니 심검(心劍)이니 하는 경지가 바로 그것이지. 하지만 그것은 내력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것이라 한계가 있네. 하지만 인간의 순수한 정신력에는 한계가 없는 것이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때 오기조원(五氣朝元)이니 삼화취정(三花聚頂)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들 한다. 그런 경지에 올라야 겨우 이기어검과 심검을 발출해 낼 수 있다고도 한다. 이러한 경지는 심신이 합일된 정기신(精氣神)의 상태로 무형의 기운을 발출할 수 있는 전설적인 경지다. 심력 또는 염력은 이런 것과는 그 본질부터 다른 성질의 것.
“.............!”
“우리 인간들 중에는 간혹 마음으로 사물과 감응할 수 있는 특이한 정신력을 가진 인물이 있네. 모용백린이 바로 그런 자이지. 그의 특이한 능력과 자질은 놀라울 정도네. 더구나 그는 무공만으로도 이미 노부마저 감당할 수 없을 경지에 달했네. 그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아주 특별한 인물이라 할 수 있고, 천동의 동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하나 섭장천 같은 인물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인물이라고 평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모용백린이란 자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허나 그의 표정으로 보아 경고를 하고 있다거나 과장된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어려운 승부가 되겠군요.”
담천의가 신음처럼 내뱉었다. 섭장천은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가 애써 상대를 과장할 이유도 없었고, 또한 처음부터 제마척사맹의 사기를 저하시킬 이유도 없었다. 섭장천은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덧붙이는 글 | 5월 말경이면 단장기 연재를 마치게 될 듯 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분과 조촐한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단장기 게시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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