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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그림
ⓒ 소금나무
〈1〉문학작품 속에 들어 있는 '탯말'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을테요
五月 어느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운 꼿닙마져 시드러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쳐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젓느니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


이는 김영랑 시인이 쓴 시 <모란이 피기까지>의 원문에 해당되는 몇 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렸을 적 숱하게 외웠던 교과서에 실린 표준어 시는 또 무엇이었던가? 설마 사투리로 쓴 시를 표준말로 고쳐서 세상에 내 놓았던 것일까? 도대체 사투리 같은 말로 쓴 김영랑의 본래 시가 있을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원시가 있는 줄을 몰랐으니 그렇지, 만약 그것을 일찍이라도 알았더라면 원시를 대하는 느낌은 그만큼 달랐을 것 같다. 그 울림이나 떨림, 감동은 표준어 시를 대하는 것과는 사뭇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금메, 이 밤중에 누구신지 알아야제라. 존 일 헌다고 누군지부터 말씀허시씨요."

이는 조정래가 쓴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한 사람인 정하섭이 한 밤중에 자신의 마을을 몰래 들어가 무당 월녀의 집을 찾아가서 급히 문을 열어 달라고 하자, 방안에서 무당의 딸 소화가 대꾸하는 말이다.

당시 좌익운동가들은 주로 야음을 틈타 활동을 했다. 그래서 야밤에 느닷없이 찾아온 외간남자의 방문 앞에, 소화는 외딴 집을 찾아 온 까닭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 물론 자신을 해치러 온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슨 '존 일 헌다'는 것임을 증명하도록, 그 이름부터 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영랑이 본래 쓴 <모란이 피기까지> 시와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모두 '사투리' 같은 '탯말'로 꽉 들어차 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탯말'이 '사투리'의 다른 말 같지만, 사투리와는 격이 다른 말임을 말이다.

사투리는 서울 표준어에 밀려, 한참이나 뒤떨어진 말로 취급되는 느낌이 강하다. 그 때문에 중앙의 언론이나 국가 정책에서도 지방 말을 그렇게 하잘 것 없이 취급해 온 적이 적지 않다. 방송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한참이나 뒤떨어진 사람이나 저속한 사람으로 대하는 모습들을 곧잘 볼 수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많이 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탯말은 그야말로 자신이 나고 자라고 함께 커 온 말이다. 마치 고향 바람과 흙과 햇볕, 그리고 고향 말로 주조된 자신의 몸과 마음 그 자체와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시인 김영랑도 그렇고 소설가 조정래도 그렇고, 자신들의 문학작품 속에 탯말을 빼곡히 써 넣지 않았는가. 만일 그들이 자신이 쓴 시와 말들을 표준어로 고치고 다듬어 썼다면 그만큼 그 뜻과 울림은 뒤틀렸을 것이 뻔하다.

그렇기에 김영랑의 시와 조정래의 소설이 빛을 발하고 불멸의 가치를 지닌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전라도 탯말을 가득 쓴 데 있다. 전라도 탯말의 가락과 말투, 표현과 억양들이 마치 비단의 날줄과 씨줄이 되듯 눈부시도록 곱게 수놓아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김영량과 조정래의 작품은 전라도 탯말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한영자·최병두·조희범·박원석·정중수의 <전라도 우리 탯말>

그와 같은 사실들은 한영자·최병두·조희범·박원석·정중수가 함께 쓴 <전라도 우리 탯말>(소금나무·2006)에 나타나 있다.

이 책은 탯말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탯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최명희의 <혼불>과 같은 문학작품 속에는 어떤 탯말이 담겨 있는지, 갖가지 예화 속에는 또 어떤 감칠맛 나는 탯말이 들어 있는지, 자연과 풍경과 음식 등 사람이 사는 그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탯말의 독해를 넣어 두고 있고, 마지막으로 표준어와 탯말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는 탯말 사전을 따로 엮어 두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한 탯말은 유년시절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늙어 줄을 때까지 자기의 정체성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탯말은 언제 듣거나 말해도 정겹고 편안하다. 한때 사람들은 전라도 말과 경상도 말, 충청도 말들을 '사투리'로 취급해 완전히 변두리로 내몰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참 한정 없이 어리석은 짓이었다."(책머리에)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구성지고 표현이 풍부한 전라도 탯말, 우리의 혼과 정서와 가락이 깃든 감칠 맛 나는 탯말을 모두가 더 갈고 닦아서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물려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여된 절대적 소명이므로."(71쪽, "탯말, 그 영원한 노스탤지어")

〈3〉'아따, 빙하고 자빠졌네'

그렇다면 어떤 말들이 전라도 탯말인지 책 속에서 몇 가지 것을 끄집어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나를 비롯해 전라도 사람들이 쓰는 탯말에는 무척이나 감칠맛 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끔 욕지거리처럼 들리는 말 속에도 뼈에 사무치도록 깊은 정이 새록새록 깃들어 있는 게 있다.

우선 이런 탯말이 있다. '찐드기맹이로', '매급시', '넹게다보고', '아능게비', '모를깨미' …. 이런 말들은 솔직히 말해서 보석으로 치면 몇 캐럿으로 처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탯말들이다. 그만큼 재밌고 알차고, 해학이 담긴 말들이다.

'찐드기맹이로'는 '착 달라 붙어있는 것', '매급시'는 '아무런 뜻도 없이 그냥 해 본다는 것', '넹게다보고'는 '넘겨다본다는 것', '아능게비'는 '아는척한다는 것', 그리고 '모를깨미'는 '모를까봐 그런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먼 빙을 하고 자빠졌을까 이', '느자구 읍는소리 하고 자빠졌네', '지랄하고 자빠졌당께' 이는 '자빠졌네'가 중심을 이루는 탯말인데, 얼핏 보면 욕지거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남도의 많은 탯말이 그렇듯이 전적으로 욕만은 아니다. 하는 말이나 행동이 도에 지나치긴 하지만 밉지 않을 때도, '아따, 빙하고 자빠졌네' 하는 표현을 곧잘 쓰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항께 좋네야', '서울로 올레 보내불소야', '그른 가시내도 첨 봤소야' 이는 어미에 '~야'를 붙여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다른 큰 뜻은 없고, 경상도 탯말처럼 '몰랐다마', '먹었다마', '갔다왔다마' 등의 '~마'가 지닌 의미와 같은 맥락이다.

'겁나게', '징허게', '허벌나게', '허천나게' 이는 남도 탯말 가운데 유독 과장이 심한 표현들을 쓸 때 하는 말들이다. 즉, 비유로 '많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겁나게 많다'는 말은 '무섭거나 두려울 정도로 많다'는 뜻이고, '징허게 많다'는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는 뜻, 그리고 '허천하게 많다'는 말은 경상도 탯말인 '억수로 많다'는 뜻과 같다.

이토록 재밌고 정겨운 탯말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방송에서나 언론에서도 저급하게 취해서 사장시킬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길이 보전하여 그 가치를 드러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는 문화성과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인류의 문화는 물론 자연생태계까지도 다양성의 가치 아래서만 발전하고 보존한다. 이 다양성이 무시되는 획일적인 사회는 이내 소멸되고 마는 것이 자연과 역사의 법칙이다. 따라서 우리의 언어정책도 이제는 이기기 위해 배우는 표준어 위주가 아닌 각 지방 고유의 정서와 혼이 살아 있는 탯말이 공존하는 다양성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333쪽)

덧붙이는 글 | 도서출판 소금나무에서는 탯말두레와 함께 탯말로 쓴 문학작품을 공모한다고 합니다. 길이는 200자원고지 300매 이상의 중편소설인데,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sogumnamu.co.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전라도 우리 탯말 - 어머니와 고향이 가르쳐 준 영혼의 말

한새암.최병두.조희범.박원석.문틈 지음, 소금나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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