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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작동 국립 현충원
ⓒ 이종일
월드컵 D-100일과 함께 온 제 87돌 3·1절!
월드컵의 열기에 3·1절의 중요성이 퇴색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물론 나도 이 열기에 동참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대표 평가전을 보고 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떳떳하다. 3·1절을 맞이해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본관이 광주(廣州)다. 광주라 하면 보통 전라도에 있는 광주(光州)을 생각하게 되는데 나는 빛고을이 아니라 넓은 고을을 나타내는 경기도 광주 이씨다. 또한 이씨 하면 조선왕조 오백년의 전주 이씨를 생각하게 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우리 가문도 휼륭하다고 자부한다. 월드컵의 영광도 중요하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과거 민족의 아픔을 되새겨 보고 싶었다.

때마침 우리 광주 이씨 할아버지들 중에 3·1절과 관련된 분이 계시고 또 그 분의 추모제를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서 매년 지낸다는 친척 아저씨의 말을 듣고 올해에는 꼭 참석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3·1절 아침 아들 현수와 3·1절 기념식을 라디오로 들으면서 강변북로를 따라 가다가 동작대교를 넘어 국립 현충원에 도착했다. 너무 넓고 처음 들어가보는 곳이라 여러 번 헤매고 나서야 애국지사 묘역에서 추모제를 하고 있는 친지 여러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 충열대
ⓒ 이종일


정암(正菴) 이종훈(李鍾勳) 선생!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1919년 기미년 3월 1일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민족대표 33인의 목소리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져 대한독립을 염원하는 모든 조선인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이 민족 33인의 대표 중 천도교를 대표하는 15명 중 한 분이시다.

민족대표 33인의 명단을 볼 때마다 나와 같은 이종일(李鍾一)이라는 이름이 있어 신기해 하면서 '한자까지 똑같은 분이 정말 휼륭한 일을 하셨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 보니 이종일(李鍾一) 선생은 본관이 성주이고 충남 태안에서 출생하여 제국신문 사장이 되셨고 3·1 운동때 직접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옥고를 치른 분이었다. 출옥 후에는 조선국문 연구회장에 취임하여 한국맞춤법 연구에 이바지 한 분이셨다.

저희 가문은 아니셨지만 매우 휼륭한 분이셨다는 것을 알고 은근히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야! 너 내가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사람이라는 거 아냐?"

종친회에 나가서도 나하고 똑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민족대표 33인에 계시다고 하니까 우리 가문에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누구시냐고 물으니 이종훈(李鍾勳) 선생이라는 것이다. 항렬로 따지면 나와 같은 항렬이라는 것이다. 내 이름과 똑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에 흥분이 되어 정작 중요한 분을 찾지 못한 것이다.

▲ 애국지사 묘역의 정암 이종훈 선생 묘
ⓒ 이종일
정암(正庵) 이종훈(李鍾勳)선생은 1856년 2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하고 성격은 매우 강직하였다고 한다. 1894년 갑오 동학혁명운동 때는 39세로 선봉에서 활약하였으며 1904년 갑신 혁신운동에 가담하여 솔선 단발의 장려등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하셨다고 한다. 1898년 천도교 교주 최시형 선생이 교수형을 당하자 옥리(獄吏)를 매수하여 그 시신을 빼어내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장남 관영(寬永 족보명: 東洙)이 매국노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지르고 용문산으로 피신하니 선생은 그 방화사건으로 체포되어 경성구치소에서 수감 되었다가 죄가 없어 풀려났다. 1907년 정암선생은 천도교 중앙 고문실 고문으로 있으며 1911년 천도교 중앙부 대종사 사장과 장로로 승임되셨다.

그러던 중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 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른다. 이 당시 65세인 정암 선생은 33인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이셨다. 1922년 출옥하여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하고 간도, 용정 등지를 돌며 청년들에게 민족혼을 고취하는 계몽을 하였다. 1931년 고문의 휴유증으로 고생하시다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만주에서 타계하니 향년 76세셨다. 이후 1962년 나라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다.

이러한 사료를 찾아 보면서 우리의 가문도 그 누구 못지않은 휼륭한 가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아들 딸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 이종훈 할아버지 묘 앞에 선 현수
ⓒ 이종일
이날 100여 명의 친지들이 참석하여 종훈 할아버지의 애국애족 정신을 되새겼다. 이렇게 나라를 찾으려고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한 역사가 있는데도 일본은 아직까지도 제국주의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면서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처럼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 종훈 할아버지뿐 아니라 많은 선조들이 목숨 바쳐 되찾은 역사를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가슴에 품고 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조선 민족 대표 33인
천도교 -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최린 등 15명
그리스도교 -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홍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등 16명
불교 - 한용운 백용성 등 2명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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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PB로써 고객자산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내 증권방송 앵커 및 증권방송 다수 출연하였으며 주식을 비롯 채권 수익증권 해외금융상품 기업M&A IPO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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