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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저 쇼파 밑 좀 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또 시작이군'하는 표정이다. 청소는 내가 한다고 약속을 했지만 입으로 잔소리가 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또 내뱉고 말았다.

아내는 언제부턴가 청소하기를 게을리했다. 결혼 초엔 깔끔했었는데 아이들이 커가고 좁은 집에 짐이 늘어나면서 꾸미고 닦을 여력이 없어졌는지, 아니면 원래 청소에 취미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먼지 쌓이는 소리에 귀를 막아 버렸다.

그것을 못 참는 건 늘 내 몫이 되었고 결국 나는 마트에서 서서 닦는 걸레를 사서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당번이 되었다. 밥 먹고 돌아서서 움직이면 생기는 것이 먼지다. 삶 속에서 부산물처럼 생겨나는 것이고 보면 먼지는 살아 있다는 증거물인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처럼 아무도 쓰지 않는 집에 천으로 덮어 놓은 곳의 먼지는 가루 같은 것으로 외부에서 날아들어오는 것이 전부지만 집에서 생기는 먼지는 좀 다르다. 옷 따위에서 생기는 보푸라기와 머리카락이 사람들의 움직임을 피해 쇼파 밑이나 문 뒤 등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서 쌓인다.

며칠 전 아내가 내 생일상을 차려 모임 친구들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처갓집 식구들까지 초대를 해서 하루 종일 주방일을 했다. 그러곤 다음날 저녁에 몸살이 걸렸는지 싸고 누워 버렸다. 자꾸 춥다며 이불을 더 갖다 덮으려고만 했다. 좋아하는 드라마도 못 볼 정도였다. 내 생일상 차리느라 그랬으니 아이들과 같이 쇼파에 앉아 히죽거리며 드라마를 볼 정도 아니고 해서 방으로 들어와 아내 이마를 짚어 주고 있으니 새삼 아내의 처지가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청소 안 한다고 잔소리꾼처럼 나무랐던 일도 미안해졌다. 사실 아내도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 한귀퉁이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오전엔 수업 준비하고 오후엔 학원엘 가는 '투잡스인'이다.

나도 결혼 초와는 많이 변하지 않았는가. 학창 시절의 자취생활을 자랑하며 밥이랑 설거지도 잘해주었는데 지금은 손에 물 묻히는 것을 꺼려했고 아이들의 공부 봐주는 것도 다 맡겨 버리지 않았는가. 여러 가지 미안한 생각들이 둥둥 떠올랐다.

다음날 출근해서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안부 문자를 날렸다.

"몸은 좀 괜찮은지. 청소 그까짓거 좀 안함 어떤가 건강하기만 해라. 내가 다한다."

그랬더니 꾀병 부린 아이가 자기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듯,

"이 메시지를 증거물로 남겨 두겠음. 컨디션 좋아지고 있어."

맘이 좀 가벼워졌다.

퇴근 후 돌아오면 소파, 식탁, 문 뒤 등을 살펴 먼지가 쌓였으면 걸레를 빨아 즐겁게 닦는다. 더불어 아이들 방과 욕실까지. '그래, 오늘도 우리 가족이 열심히 살았구나'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먼지. 너의 존재는 우리 가족이 열심히 산 흔적이야. 그러니 매일 매일 생겨나야 해. 그러면 난 새로운 너희들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청소를 열심히 할 거고.

덧붙이는 글 | 우리가 사는 집은 23평 형의 복도식 주공 아파트입니다. 짐 정리도 잘 되는 넓은 집도 못 사는 능력이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이제 청소는 열심히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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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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