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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신년회견 이후 두 정치 지도자의 대립적인 견해를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의 주장에 비유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인하하자는 박근혜 대표의 주장은 너무나도 '유연한 고용구조'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고전학파의 주장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극단화된 노동자의 구성은 세금인하의 혜택이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집중되어 소득격차를 더욱 크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매우 유연하다. 적어도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3명 중 한 명은 자영업을 하거나 이를 위하여 무급으로 일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상용근로자이고, 나머지 한 명은 비정규직(임시/일용근로자)이다.

즉 경제활동인구에서 자영업을 제외한 노동자의 절반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5년 12월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2005년 경제활동인구에서 실업자를 제외한 취업자의 구성은 매우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정규직 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상용근로자는 791.7만 명,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의 수는 각각 505.6만 명과 221.2만 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726.8만 명에 이르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와 실업자, 구직단념자의 수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36.8만 명이 더 많다. 또한 자영업주(617.2만 명)와 함께 일하는 무급가족종사자(149.9만 명)는 무려 767.1만 명에 이른다.

이러한 고용구조 하에서 근로소득세를 인하하면 직접적으로는 비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수령액(가처분소득)은 증가하게 되고, 백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면세점 이하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별 다른 소득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간접적으로는 정규직 노동자의 소득증가가 저축으로 흡수되지 않고 모두 소비로 이어지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입증가로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과적으로 근로소득세를 인하하게 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격차는 더욱 커질 확률이 높다.

한편 법인세 인하를 통해 기업의 이윤이 증가한다면 투자자에 대한 배당과 노동에 대한 임금 등의 보수의 증가를 제외한 나머지가 사내에 유보되거나 투자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불황탈출에 성공하고 그 성과가 사회 전반에 골고루 분배되더라도 과연 감세로 인한 직접적인 소득격차를 해소하고도 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또 당장의 조세수입의 감소로 인해 공공서비스의 양이 줄고, 질이 낮아진다면 빈곤층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며, 구직단념자를 포함한 101.7만 명의 실업자가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모든 15세 이상의 경제활동 인구가 '나홀로 가정'으로 살고 있다면, 4.3%의 가정은 직업이 없거나 직장을 구하다 포기한 빈곤층이고, 30.6%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차상위 계층에 해당한다. 경제활동인구가 모두 미혼 남녀라고 할 때 정부의 도움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규직 노동자는 반드시 비정규직이나 실업 상태인 사람과 결혼해야만 한다.

노동시장이 이렇게 유연함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불황의 원인이 다름이 아닌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을 정도이다. 또 이러한 비관적인 통계는 적어도 감세정책은 우리 사회가 선택 가능한 범위 내에 있지 않다는 극단적인 근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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