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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처럼 구경이나 체험보다 '다랭이마을'의 사례에 관심이 많은 경우에는 저녁에 마을두레방(회관)에 모여 '다랭이마을' 사례 발표가 이어지기도 한다. 당연히 마을 할머니가 손수 만든 막걸리와 바로 만든 파전이 뒤따른다.

손님이 오면 맛을 보여라

▲ 미역이 나는 마을 갱번.
ⓒ 김준
사실 민박과 체험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체험이라고 해 봐야 1천 원에서 5천 원, 여름철 바다 체험이 1만 원 정도였다. 이러한 체험들은 다랭이마을 추진위원회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민박집 소득과 거리가 있다. 따라서 민박집 숙식비로 농가들이 돈을 만진다는 것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바로 미역과 마늘이었다. 찬거리가 특별히 없었던 탓에 주민들도 찬거리 정도나 하고 거들떠보지 않던 미역으로 끓인 국이 손님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곳 갱번은 물살이 세고 거칠어 미역 품질이 아주 좋고 쫄깃쫄깃했다.

하지만 말리면 '희뜩희뜩'해 상품성이 떨어져 잘 뜯지 않았는데, 미역국 맛이 손님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다랭이 미역이 불티가 나기 시작했다. 이제 하루 식사 중 한 번은 꼭 이곳 미역으로 국을 끓여 낸다. 이곳 미역은 3kg에 4만5천 원에 거래되는데 생산되기 바쁘게 팔리고 있다.

자신들의 장점을 하나씩 발견하기 시작한 다랭이 사람들, 이제는 마늘 판매에 나섰다. 오래 전부터 마늘은 남해의 특산품이었다. 민박에서 직접 마늘 장아찌를 비롯한 마늘 반찬을 먹어본 방문객들이 즉석에서 마늘 주문을 할 정도였다.

특히 다랭이 마을은 농사 자체가 전통 방식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강력한 해풍에 품질도 한 등급 위에 속했다. 예전에는 농협을 통해 1kg에 1700원에 거래되던(수수료와 운송비를 제하면 1만6000원 소득) 1등품이 지금 다랭이마을에서는 2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다랭이마을의 마늘은 5월에 수확하지만 판매는 7월에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마늘을 사면 잘 말려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망 속에 넣어 두고 먹는다. 한꺼번에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먹다 보면 마늘이 썩고 양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마늘의 품질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피해는 농민이 보게 된다. 그래서 다랭이마을은 마늘을 한 달간 제대로 말려 상품을 만든 다음 장마가 끝난 뒤 7월에 예약을 받아 팔고 있다.

▲ 다랭이 최고의 농산물 마늘밭.
ⓒ 김준
처음에는 잠자리와 화장실을 걱정했다. 도시민들이 제일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걱정하는 것은 도시 사람들에게 맞춰서 친절을 베풀거나 관광 숙박업하는 사람처럼 만들어진 친절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난 5월에 외국인 70여 명이 다랭이마을을 방문했다. 당시에 제일 신경 썼던 것도 잠자리와 먹거리였다. 대부분 교환 학생, 영어 강사, 대학 교수 등이었다. 준비를 한답시고 추진위원회에서 민박집 주인들을 모셔다 간단한 외국어를 익히도록 했지만 금방 포기해야 했다.

대신 그들만의 방식, '자식처럼 대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그게 주민들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손님을 편하고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손님들에게 먹히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 소주가 생각난다면 자식에게 주듯 소주도 한 잔 주고 동네에서 준비할 수 있는 간단한 안주도 내온다.

그렇다고 그것이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밥값만 받지만 그들이 떠나고 나면 전화기 밑에, 방안 베개 밑에 만 원짜리가 놓여져 있다. 꼭 가족들이 정을 나누듯이 말이다. 외국인들도 노인들의 몸짓과 손짓에 웬만한 이야기는 모두 통한다. 거기다 한국의 전통농촌의 민박에 매우 만족해 한다. 이제 마을이 그대로 관광자원이고 골목길이 그대로 상품이 되었다.

▲ 미륵바위(암수바위).
ⓒ 김준
체험과 볼거리 마을에서 찾아라

혹자들은 차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도로를 넓히고 마을 안에 주차장도 마련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김주성 위원장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농촌관광을 한다고 하면서 중요한 것들을 제일 많이 버린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마을 '오솔길'이라고 한다.

다랭이마을은 마을 위 도로 옆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마을로 들어와야 한다. 내려오면서 주민들도 만나고 대문 앞에 쌓아둔 호박이며 마늘이며 이곳 특산물들도 만난다. 그리고 일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직접 볼 수 있다. 마을에서 만든 막걸리도 한 잔 할 수 있다. 걸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길, 논두렁이 모두 도시민들에게는 볼거리고 체험거리가 될 수 있다.

농촌관광을 한다고 해서 가 보면 체험거리는 '짚공예,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 등 모두 똑같다. 체험거리로 도시민들에게 마을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 줘야 한다.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똑같은 체험거리로는 도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것은 30여년 전 마을 어른들이 하고 놀았던 것, 마을에서 했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 2002년에 손그물 고기잡기 체험, 2003년 전통배(테우) 타고 마을 바다 돌아보기, 2004년에는 통발을 이용해 문어잡기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것들은 주민들이 과거에 직접 생활에 이용했던 것들이다. 몽돌해변에서 홍합 등을 미끼로 손에 쥐고 바다에 담그고 있으면 '바지랭이'들이 손을 간질이며 들어온다. 과거에 놀거리가 없던 다랭이 마을 아이들이 몽돌해변에서 멱을 감다 싫증이 나면 했던 놀이들이다. 통발로 잡은 문어는 즉석에서 삶아서 간단히 소주 한 잔씩 하기도 한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이곳 문어를 사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최근에는 '시골운동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김주성 위원장은 내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고 한다. 최근 어장 체험이 매우 인기가 높다. 삼각망을 몇 틀 쳐놓고 마을 찾는 사람들 중 어장체험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웃마을 선박과 계약하여 직접 그물을 건지고 선상에서 회를 맛보기도 한다. 어른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다.

▲ 마을 동제를 지내는 '밥무덤'
ⓒ 김준
▲ 한지로 밥을 싸서 황토로 묻어둔다.
ⓒ 김준
남해마을 중앙에는 밥무덤과 미륵바우가 있다. 미륵바우(암수바위)는 남해에서 꽤 알려져 있다. 미륵바우는 남성의 성기를 닮은 '숫미륵'과 만삭한 여성이 누워 있는 모습의 '암미륵'이 있다. '성기바위'로 표시되어 있지만 주민들은 '미륵바우'라고 부른다.

이런 영험한 바위에 사연이 없을 리 없다. 남해 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위로 우마가 지나다녀 불편하니 꺼내 세워주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해서 세워 놓고 미륵불로 봉안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를 발견한 날(음력 10월 23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미륵불과 달리 밥무덤은 마을에서 사라진 풍속을 재현해 낸 것이다. 원래 마을 중앙과 동쪽, 서쪽 세 군데 밥무덤이 있어 매년 음력 10월 15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지냈다. 부정을 타지 않을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을 정해 마을 뒷산 깨끗한 곳에서 황토를 파서 무덤 안에 황토와 교환을 한다. 그해의 햇곡식과 과일, 생선 등을 정성스럽게 차려 놓고, 마을 안녕과 번영 그리고 풍농을 기원한다. 제를 마치면 한지에 밥을 싸서 일 년 동안 묻어 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갯벌체험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남해에는 갯벌이 많지 않지만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과 연계해서 상생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한 마을이 도시민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해 줄 수 없다. 함께 공존하면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갖가지 이름으로 체험마을을 조성하면서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성과는 고사하고 돈이 들어가서 부서진 마을들도 많이 있다. 모두 당장 손에 잡히는 성과를 보려고 하는 조급함이 만들어 낸 결과들이다. 앞으로 남해의 다랭이마을이 어떻게 변할지 지켜볼 것이며, 좋은 사례로 남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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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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