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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한번 지나가면 없것는디." "게으른 사람은 좋컸네."

깎아지른 듯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논배미들을 보고 신안 갯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50여명의 신안지역 주민들이 새벽같이 배를 타고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남해군 다랭이마을. 이들에게 바다는 새로울 것도 없다. 게다가 손바닥만 한 논배미들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50여 가구의 집들을 보면서 여기서 뭘 배우자는 것이냐는 빈정거림도 섞여 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해대교를 건너면서 올라탄 안내원의 안내는 계속된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 한배미가 모자라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한배미가 있었다는 애기가 있을 정도로 작은 삿갓배미에서 300평이 족히 넘는 큰 논까지 있는 다랭이논 마을입니다."

▲ 다랭이 마을 전경입니다.
ⓒ 김준

▲ 다랭이마을의 가을입니다.
ⓒ 김준
배 한척 없는 바닷가 마을

다랭이마을은 '농촌전통테마' 마을과 함께 생겨난 이름이다. 행정이름은 가천(加川) 마을이다. 전해오는 이름은 간천(間천)이었으나 고려 중엽에 이르러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마을을 사이에 두고 설흘산(소흘산, 망산)에서 내려오는 두 개의 하천이 있어 '냇가가 하나가 더 해졌다'고 해 가천이라고 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이 하천은 참게가 살고 있을 정도로 깨끗하며, 모든 다랭이 논은 하천물에 의존하는 천수답이지만 농사를 짓지 못한 적은 없다.

농가수 58호에 156ha의 면적, 논이 18ha, 밭이 24ha로 구성된 다랭이 마을은 바닷가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배는 한 척도 없다. 바닷가에 있는 농촌마을, 정확히 표현하면 산촌마을이다. '산중해변'이다. 민박집에서 만난 70세 할머니, 아버지가 정해준 신랑이 하필이면 '가천'사람이라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가마를 타고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가는데 가마가 하늘을 향해 물구나무를 서듯 했다고 전한다. 가파른 언덕에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 다랭이 마을에서 본 일출입니다.
ⓒ 김준
마을 어느 골목에서나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다랭이만 가지는 자랑이다. 마을 앞 바다가 태평양인 탓에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기도 한다. 태평양에서 발원해 올라오는 대부분 태풍은 다랭이마을을 거치며 북상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8월말 남해안을 지나 동해안에 큰 타격을 입히고 빠져나간 루사 태풍도 그랬다. 당시 태풍은 1959년 태풍 사리 이후 신기록 경쟁이라도 하듯 모든 기록을 갱신하며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태풍이 일기 시작하면 문을 걸어 잠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직접 태풍을 맞는다. 태평양에서부터 거칠 것 없이 몰아치는 비바람을 막을 길이 없다. 특히 깎아지른 듯 가파른 곳에 다랭이 논들이 있어 태풍에 그대로 노출되고, 심지어는 옴팍한 곳에 들어선 집마저도 위태롭다.

일주일만 있으면 걷을 곡식들이 루사가 지나간 뒤 쭉정이로 변했고, 소먹이가 되고 말았다. 당시 피해가 너무 컸던 탓인지 보상이 제법 이루어졌다. 12개의 작은 다랭이 논 400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권(74) 어르신은 보상금으로 430만 원을 받았다. 농사짓는 것보다 백번 나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루사를 '효자태풍'이라 부르기도 했다.

'다랭이는 태풍의 아구지다.' 그래서 늘 여름 태풍피해를 겪어야 한다. 태풍이 오면 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실 정도라고 한다.

▲ 마을에서 내려다 본 전경입니다.
ⓒ 김준
경지정리 한 땅 갖는 것이 소원

김씨는 금년 나이가 일흔 넷이다.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반듯하게 경지정리된 논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란다. 그 나이에 무슨 농사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소도 7마리나 키우고 있고 얼마 전 면허증도 따서 1톤 트럭도 운전하고 있다. 수입증지를 붙일 곳이 없을 정도로 필기시험에서 고전한 그는 실기는 한 번에 통과해 며느리들의 부러움을 샀다. 아들이 축하한다고 중고 트럭을 하나 구해줘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는 다랭이마을에 제법 목이 좋은 곳에 땅 마지기가 있다. 불과 몇 천원, 잘해야 만 원 대에도 거래되지 않던 땅들이 다랭이마을이 소문나면서 30-50만 원까지 올랐다. 평생 다랭이 논밭에 소 쟁기질하고, 지게질하며 농사를 지었던 노인에게 꿈이 있었다. 경지정리가 잘된 논에서 기계로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서너 마지기 논 모내기하는데 8-9일은 걸린다. 육지에서 정리된 논은 100여 마지기 모내기하는 데도 그렇게 걸리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혼자 생각으로 저 땅을 팔면 아이들에게 좀 보태주고 농사짓기 좋은 곳에 한두 반구 논이라도 사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어디 내가 마련한 땅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가. 이제 자식들도 커서 의논도 해봐야 할 것 같고, 또 땅을 산 외지인이 그곳에 대형 펜션이라도 지어 이제 막 자리 잡으려는 마을사업을 망치기라도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좀 두고 보기로 결정했다.

▲ 미리 예약을 하면 도착 즉시 다랭이마을 추진협의회 위원장(김주성, 49)이 나와서 민박집 을 정해 줍니다.
ⓒ 김준

▲ 먼저 민박집으로 걸어가며 다랭이 마을을 만납니다 .
ⓒ 김준
모여드는 사람들

다랭이 마을이 알려지면서 많을 때는 수 십대의 차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50여 호의 작은 마을을 민속촌 관광하듯 쑤시고 다니기도 했다. 작년에 27대의 차가 한꺼번에 마을주차장에 들어온 적도 있다.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지도 못하던 작은 마을이 이렇게 유명해졌으니.

다만 농촌관광의 목적이 도시민들에는 휴식과 체험 그리고 농민들에게는 농산물 판매는 물론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다랭이마을을 관광코스 돌아보듯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러한 관광객들이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뒷자리에는 쓰레기와 훼손된 농작물이 남는다. 민박을 하는 방문객들과 남쪽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캐야 할 논두렁의 쑥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작년까지는 추진위원회에서 소개해 민박을 하는 경우 소득의 20%를 추진위원회 기금으로 적립을 했다. 민박을 하는 가정에서는 손님을 맞기 위해서 시장이라도 봐서 찬거리라도 마련하려면 5-6만 원은 금방이다. 한 가족 받아서 10여만 원 벌이가 고작인데 반찬값에 기금까지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민박가정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부 회의를 통해 금년부터는 10%로 낮추었다. 이런 모든 것은 회의를 통해서 결정된다.

다랭이 마을농가들이 처음부터 민박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남해군 농업기술센터의 설득과 주거공간 개량 지원사업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흔히 관광지나 무늬만 체험을 내건 영업집과는 다르다. 흔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가정집 그대로다. 차이가 있다면 집안에 좌변기가 들어선 화장실과 목욕탕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된 방에 에어컨이 전부다. 특별하게 더 꾸민 것도 없다. 방이고 마루고 마당이고 집안 곳곳에 집주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차이라면 바로 이점이 패션이나 숙박업소와 다른 점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은 씻고 자는데 편하지 않을 것이다. 방안에 컴퓨터나 TV도 없다.

▲ 저녁을 먹기 전에 위윈장이나 주민의 안내를 받아 마을이야기를 듣습니다.
ⓒ 김준
'즐거운 집' 민박 김태권 어르신은 할머니(70)와 함께 두 분이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할아버지가 마을을 소개해주셨다. 몇 가구가 살고 있으며, 주로 어떤 농사를 짓고 있는지, 주변에 볼거리는 뭐가 있는지, 그러다 간혹 자식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할아버지 이야기가 좀 길어지는구나 하는 순간 어느 틈에 할머니가 끼어든다. '시장하신데 그만하고 식사하시게 하라'고. 할머니가 내온 찬거리 그대로 건강식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할머니가 해 줄 있는 것이라곤 학생들이 많은 경우 계란 프라이와 김, 여자들이 오면 수제비와 잡곡밥 등이 전부란다. 그래도 맛이 있다고 난리다. 이곳에는 선착장이 없고 배 한 척도 없어 갈치 한 마리라도 사려면 40리 길을 나가야 한다. 간혹 반찬거리를 사러 나가기도 하지만 다랭이 논밭, 설흘산 그리고 바다 갱번에서 직접 구한 것들이 반찬으로 올라온다.

▲ '즐거운 집' 민박집의 저녁상입니다.
ⓒ 김준
마을 총 58호 중 민박집을 운영하는 농가는 15호며, 지금은 12집이 참여하고 있다. 새로 집을 짓는 것은 지원을 받을 수 없지만 집을 수리하여 민박을 할 경우 약간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민박집을 알고 들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마을(추진위원회)를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 정해진 순번대로 민박집과 인원이 결정된다.

오늘은 9집의 민박집에 6명씩 배정되었다. 예약한 손님들의 차가 도착할 무렵이면 민박집 주인들은 마을 위 주차장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추진위원장이 인사를 하고 나서 민박집 주인과 손님이 만난다. 그 뒤 짐을 민박집에 내려두고 위원장이나 주민들의 안내로 마을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다랭이 마을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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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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