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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samarkand)에는 많은 유적과 이슬람 풍의 건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 세 군데를 꼽으라면 레기스탄 광장과 구르 에미르 그리고 비비하님 성원일 것이다.

▲ 비비하님 성원의 전경
ⓒ 김준희
아쉽게도 난 이중에서 레기스탄 광장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내가 사마르칸트에 도착했을 때는 우즈베키스탄의 독립기념일인 9월 1일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처음 사마르칸트에 도착해서 레기스탄 광장을 보려고 그 앞으로 갔을때, 광장 앞에는 수많은 경찰들이 깔려 있었고 광장은 진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서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나에게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영어로 말을 붙였다.

"외국인이야? 어디에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여행 온 거야?"

난 레기스탄 광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근데 지금 여기는 어떻게 된 거야?"
"여기는 레기스탄 광장이야."
"그건 나도 알아. 여기서 지금 무슨 행사를 하는 거야?"
"아, 이거. 독립기념일이 얼마 안 남아서 음악 축제를 준비 중이야."
"음악 축제? 그거 언제하는데?"
"내일부터."
"내일부터 언제까지?"
"5일 동안 하는 걸로 아는데."

막막해졌다. 내일부터 5일간이면 내가 사마르칸트에 머무는 기간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난 레기스탄 광장에 자유롭게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무슨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나. 부하라에 먼저 갔다가 다시 올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중에 히바에 갈때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사마르칸트에 머무는 기간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난 레기스탄 광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불운한 우연의 일치를 원망하면서…. 사전 조사를 제대로 안한 게으른 인간의 한심함을 탓하면서, 난 다른 유적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갔던 곳은 비비하님 성원. 이곳에는 아미르 티무르의 왕비였던 비비하님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비비하님은 아미르 티무르가 인도의 델리를 원정중일 때, 티무르가 돌아오면 줄 선물로 이 장대한 이슬람 성원을 짓게 했다. 하지만 성원이 완성되어 갈 무렵, 페르시아의 건축가는 비비하님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고 통첩했다.

결국 젊은 건축가의 사랑을 비비하님이 받아들였지만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법. 인도 원정을 끝내고 돌아온 아미르 티무르는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페르시아의 건축가는 사랑하는 여인을 버린 채 중동으로 야반도주를 했고, 비비하님은 티무르의 손에 죽었다고 한다.

어두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비비하님 성원은 밖에서 보면 그 명성에 걸맞게 웅장한 건물이다. 이 장대한 건축물은 완공 이후에 지진으로 붕괴되기도 했고, 부하라의 왕은 비비하님 성원의 자재를 허물어서 가지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 비비하님 성원의 안뜰
ⓒ 김준희
입장료 2100숨(숨은 우즈벡의 공식화폐단위, 1숨은 한화 약 1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성원 앞에는 뜰이 있다. 안뜰에서는 다른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기념엽서와 목각인형 등을 팔고 있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웅장한 느낌이었는데 안으로 들어 오니 그 느낌은 작아져 있었다. 안뜰에서 본 성원의 외벽은 온통 떨어져 나간 벽돌 투성이고 그 때문에 벽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모습이었다.

성원의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의 상태는 더 안 좋았다. 내벽은 사방이 균열로 갈라진 모습으로 부서지다만 듯한 몰골이다. 성원이 완공되었을 당시에 여기에서 기도를 하던 무슬림들은 천정에서 떨어지는 벽돌을 피해다녀야 했다고 한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그 모서리에도 거미줄처럼 갈라진 균열이 여러 군데 보였고, 벽돌 하나가 툭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성원 옆에 있는 작은 뜰도 마찬가지다. 널려 있는 쓰레기와 돌의 파편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올려다본 성원의 모습도 기괴하기만 했다. 보수가 진행 중인지 건물 곳곳에서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철제 구조물들, 떨어져나간 벽돌과 균열이 생긴 벽이 최악의 조화를 이룬 모습은 마치 유령의 탑 같은 기괴함이었다.

▲ 비비하님 성원의 외벽
ⓒ 김준희
인도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티무르가 야심차게 건설했다는 이 성원. 그 야심이 지나쳤던 것인지 아니면 슬픈 전설의 주인공인 비비하님의 원한 때문인지, 사마르칸트의 손꼽히는 건축물 중 하나인 이 성원은 마치 폐허처럼 방치되고 있었다.

성원을 둘러보고 '샤흐이진다'라는 이름의 대영묘로 향했다.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라는 이곳은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많은 현지인들이 찾아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티무르 일가의 무덤이 있는 이곳은 번잡한 시내 중심가에서 벗어나 있다.

▲ 샤흐이진다 대영묘의 전경
ⓒ 김준희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돔들이 인상적인 이곳도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라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샤흐이진다의 뒤쪽으로 공동묘지가 보였다. 특이한 점은 비석에 얼굴을 그려놓았거나 얼굴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다는 점이다.

▲ 샤흐이진다 대영묘의 돔. 오른쪽 멀리 비비하님 성원이 보인다.
ⓒ 김준희
사방이 무덤이라서 그런지 시내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이라서 그런지, 조용하고 적막한 느낌이었다. 대영묘 자체의 볼거리보다는 조용한 분위기가 좋은 그런 곳이다.

▲ 샤흐이진다 뒤편의 묘지
ⓒ 김준희
사마르칸트에는 유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립대학교가 있는 거리에서 아미르 티무르 동상이 있는 쪽으로 오다 보면 좌측으로 커다란 공원이 있는 거리가 있다. 이 거리의 입구는 한눈에 보더라도 공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많은 노천 카페와 울창한 나무들, 꽃밭과 그 옆으로 늘어선 러시아 풍의 작은 건물들이 있는 공원 겸 산책로가 나온다.

사마르칸트의 골치아픈 역사와 유적, 번잡한 바자르로부터 벗어나서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에게 적당한 장소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해서 내가 저녁마다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노천 카페에서 파는 커피는 한잔에 200~300숨 정도다. 이 노천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역시 여행자가 외국에 와서 고독을 즐기면서 개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 노천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 사마르칸트의 공원
ⓒ 김준희
난 사마르칸트에서 6일을 보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거기서 뭐할 게 있다고 6일이나 있었냐?"고 묻기도 했지만, 난 그냥 씩 웃을 뿐 특별히 할말은 없다. 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여행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 6일 동안 나는 대충 밥을 때우고, 유적지 주변을 서성이고 바자르를 기웃거리고 아프라시압 언덕에 올라서 폭염을 만끽하며 시내를 바라보곤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날 아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겠지만, 당연하게도 6일 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

사마르칸트의 중심가인 레기스탄 거리에는 많은 식당이 있고 노천카페가 있고 PC방도 있다. 손님을 환영하는 유목민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우즈벡의 현지인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도시에는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여행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바자르의 가게 주인도 있고, 끊임없이 따라오면서 기념품을 사라고 조르는 상인도 있다.

8월 말의 사마르칸트는 덥다. 특히 아프라시압 언덕은. 그 무더위 속에서 생각까지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아프라시압 언덕. 구름 없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과 사방이 황량한 단단한 흙언덕인 이 곳에서는, 걸음을 잘못 옮기다가는 낡은 운동화를 뚫고 들어오는 억센 풀에 찔리기 쉽다.

쉴 만한 나무 또는 그늘 하나 없는 이곳에서 더위를 식히려면 그저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언덕 밑에 묻혀 있는 유적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땅속에 묻혀 있는 유물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발굴해 주길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 이 언덕의 발굴이 끝날까? 그리고 언제 비비하님 성원은 보수공사를 끝마치고 제 모습을 찾을까? 티무르 제국의 수도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영광의 도시 사마르칸트. 이제 이곳을 떠나서 부하라, 히바로 가면 아미르 티무르의 흔적과도 멀어져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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