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757m 화왕산 정상에 서다
ⓒ 정근영

아침부터 빗방울이 내리고 있다. 우산을 가릴 정도의 비는 아니지만 앞으로 비가 올 것인지 그칠 것인지가 문제다. 일기예보로는 오후에는 갤 것이라지만 등산을 가면서 처음으로 우산을 챙겼다. 오늘 창녕 화왕산 등산은 진주교대총동창회 단합등반대회로 전국의 동문이 모이는 자리다.

우리 부산동창회에서는 서면 영광도서 앞에 집결하여 전세버스로 가게 되었다. 츨발시각은 8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7시다. 세수하고 배낭 챙기고 나니 아침밥 먹을 시간도 없다. 집에서 서면까지는 먼 거리긴 하지만 택시를 집어탔다.

집결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7시 40분 정도 되었다. 영광도서 앞에는 등산을 떠나는 차들로 수십 대가 붐비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약한 차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몫돈 들여서 택시타고 온 것이 아까웠다.

진주교대 부산동창회 회원은 2000명이 넘는다. 그렇지만 오늘 같이 등산을 가는 회원은 겨우 서른 명, 너무 적은 숫자다. 날씨 탓에, 함께 가기로 했던 회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지난해도 서른 명 남짓했다니 할 말이 없다.

▲ 자하골 산림욕장으로 올라갑니다
ⓒ 정근영

▲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 색깔이 아주 곱습니다. 노란 단풍나무 처음봅니다.
ⓒ 정근영

창녕 화왕산 주차장은 전국에서 몰려든 차들로 붐볐다. 동문 모임인데도 가끔 아는 얼굴이 보이기는 하지만 낯선 얼굴이 더 많다. 동문은 한 학교에서 같은 교문을 드나든 이들이고 동창은 한 강의실에서 같은 창문을 내다본 사이라지만 사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동문들의 낯을 익히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동문이란 그 사실 하나만으로 선후배가 되어 서로 등 두드려 주는 따뜻한 관계가 성립한다. 학연의 폐해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어떤 인연이든 서로 따뜻한 이웃이 되어 정을 나눈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훈훈해지리라.

해발 757m의 창녕 화왕산은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봄에는 진달래 말고도 개나리 매화 산수유 칠숙나무 들이 이름이 나 있다. 그래서 화왕이란 것이 꽃화자 화왕인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지만 화자는 꽃화자 아니라 불화자다. 산 이름에 분명히 사연이 있을 테지만 알 수가 없다. 정월 대보름이면 화왕산 억새밭에 불을 질러 불꽃놀이를 하여 유명한 데 그래서 화왕산일까.

창녕 여중학교 옆으로 나 있는 잘 포장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자하골이 나타난다. 여기서 화왕산을 올라가는 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1코스는 길이 험하다. 우리는 2코스를 선택했다. 2코스는 매표소, 산림욕장을 거쳐서 정상으로 가는 길로 주등산로다.

▲ 행사장앞입니다
ⓒ 정근영

▲ 신비스런 풍경입니다
ⓒ 정근영

화왕산은 이제 막 단풍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길가에 서 있는 샛노란 단풍잎은 정말 맑다. 눈이 시릴 정도다. 바알갛게 타오르는 단풍잎은 잉걸불을 보는 듯하다. 한 걸음, 두 걸음 발 걸음을 옮길 적마다 땀방울이 솟아오르고 저 넓은 창녕 들판, 낙동강, 멀리 우포늪까지 눈에 들어온다.

급경사 지역에 도착하니 로프가 쳐져 있다. 로프를 잡고 가파른 고개를 올라간다. 가다가 힘들면 걸음을 멈추고 준비해온 과일과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운다. 우리는 서로 짐을 덜자고 배낭을 먼저 연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서로 동문을 먼저 대접하고자 하는 우정이 아니겠는가.

▲ 1코스는 이런 아름다운 바위들이 늘어섰습니다
ⓒ 정근영

▲ 절벽이군요
ⓒ 정근영

억새로 장관을 이루는 십리평원에 이르렀다. 장관을 이루던 억새의 꽃잎은 바람에 다 날려가 버린 것인가. 늙을 대로 늙어서 줄기만 남은 억새는 볼품이 없다. 십리평원 넓은 분지에 행사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십리평원, 행사장에 닿았을 적에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후두둑 내렸다. 집에서 우산을 챙겨왔지만 차에서 내릴 적에 비가 올 것 같지 않아 차 안에 두고 왔는데. 큰 비는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잠깐이라도 비를 피할 나무가 없어 걱정이다. 동료가 준비한 우산을 같이 쓰고 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동창회 행사는 산신제가 주였다. 국기를 향하여 경계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축문을 읽는다. 축문이 저렇게 긴 것은 처음이라며 지루해 한다. 산신제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대화가 끊임이 없다. 건배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일행이 점심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고 있을 적에 G씨가 화왕산 정상에 가보자고 한다. 화왕산 정상은 행사장에서 뒤돌아 가야 한다. 정상은 수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사진을 찍자고 해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등산에서 정상에 발을 디디지 않는다면 앙꼬 빠진 찐빵으로 맛이 없다.

등산을 또 지루하게 하는 것이 올라간 길로 다시 내려오는 것이다. 오늘 등산은 처음 계획이 십리평원 행사장에서 행사를 마친 뒤 다시 그 길로 내려가게 되어 있어 재미가 없다. 몇몇이 관룡사 쪽으로 내려가자고 의논하기도 했지만 정상에 갔다오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쪽으로 내려 간 것일까.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으니 연락할 길도 없다.

▲ 금강산이 따로 없는 것 같군요
ⓒ 정근영

▲ 자하골 산림욕장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 정근영

도리 없다. 지루하긴 하겠지만 올라온 길로 되돌아 갈 수밖에. 매바위쪽으로 올라가서 다시 배바위쪽을 갔다. 큰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바윗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이 길은 경치는 좋지만 길이 험하다고 한다.

삼인 삼색, 아니 이인 이색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남자동문 G씨는 바윗길로 내려가자 하고 여자 G씨는 올라왔던 편안한 길로 내려가자고 한다. 잠깐 의견이 엇갈렸지만 힘이 들더라도 바윗길로 가기로 했다.

이 길이 바로 1코스다. 프로가 가는 길이라고 한다. 계속되는 비탈길, 바위 틈새로 쳐진 로프를 잡고 산을 내려가야 했다. 경사가 급해서 아차 하는 순간 미끄러져 내릴 것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경치 하나는 정말 아름다웠다.

화왕산을 몇 차례나 갔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가 숨어 있는 줄은 몰랐다. G씨는 다시는 오기 힘든 길이라며 두려워 떨지만 나는 다시 이 길을 오르고 싶다. 정말 아름다운 바윗길이다.

하산 시간이라서 그런지 올라오는 사람은 없고 산을 내려가는 사람은 불어났다. 바위틈을 기어서 전망대에 이르렀다. 생판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서로 말문을 트고 보니 동문이다. 배 하나를 깎아 권하니 정이 더욱 잘 통한다.

▲ 화왕산 산신일까요. 도깨비 모양의 돌장승 얼굴입니다
ⓒ 정근영

자하골, 산림욕장을 지나서 산을 내려오니 먼저 하산한 일행이 천막집 주점에서 동동주 술타령에 취해 있다. 거기서 몇 순배 건배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창녕하면 부곡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창녕까지 와서 부곡 온천을 안 갈 수 있느냐는 동창회장의 말을 따라 부곡 온천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니 피로가 싹 풀리고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다. 돌아오면서 촌국수로 옛 추억을 먹고 차 안에서 졸다보니 어느 새 부산이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11월 6일 일요일 창녕 화왕산 등산을 했습니다. 이날 등산은 진주교육대학교 동문 등반 단합대회 행사에 참여한 것입니다. 화왕산은 여러차례 갔지만 오늘 처음으로 1코스 바윗길 하산을 하였습니다. 봄에는 진달래, 가을엔 억새로 이름난 화왕산에 이런 비경이 숨어 있었나 감탄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