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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 중 가장 오래 생존해온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인류의 행동이 글로 적혀지기 이전인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멧돼지가 널리 살았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 척박한 대지를 박차고 뛰어나갈 태세를 갖춘 멧돼지의 모습에서는 카리스마까지 느껴진다.
ⓒ 강상헌
또 인간이 길들인 가축 중 가장 일반적인 돼지의 원종(原種)입니다. 멧돼지를 길들이고 접붙이고 하는 과정을 통해 돼지가 생겨났다는 얘기입니다.

공룡은 멸종했으되 멧돼지는 우리 인간과 인연의 끈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신비스럽지요? '세상 에너지의 애당초' '생명력의 본디'에 보다 가까운 동물인 것입니다. 야성(野性)의 표본이랄 수 있는 멋진 친구지요. 생김생김은 또 얼마나 힘이 넘칩니까? 새끼들 예쁜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지요.

요즘에는 망가졌던 자연이 차차 복원되고, 야생조수(野生鳥獸)를 보호하는 제도에 힘입어 멧돼지란 녀석이 산야(山野)에 늘고 있으며, 심지어는 도시 한복판에 출몰(出沒)하여 한바탕 이벤트를 벌이는 일도 자주 있답니다. 요즘 TV 뉴스에 자주 나오지 않습디까?

끝내는 한강에서 '장렬히' 익사했다는 소식입니다. 겁에 질린 인간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한강을 헤엄치던 돼지가 땅을 밟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네요. 같이 살 수는 없었을까요? 우리는 이제 마지막 몇 남지 않은 '야생'마저 우리 곁에 두지 못하는 것인가요? 안타깝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시골에선 이 녀석들이 농작물을 파헤쳐놓아 애꿎은 농민들의 심각한 시름의 원천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여간 멧돼지란 녀석이 우리 생활 속에 더 깊숙이 들어올 태세랍니다.

멧돼지고기는 돼지고기와 별도로 인간이 오래전부터 좋아해온 고급 육류입니다. 최근 우리 주위에도 이를 사육하여 쏠쏠하게 재미를 보는 농가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멧돼지고기는 흔하지도 않은데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더 좋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쉽게 가릴 수 없어 이제까지 일반 가정의 식탁에까지 오르기가 어려웠지요.

최근에는 사육멧돼지고기를 진공포장하여 일반 소비자에게 택배로 보내주는 전문 가게도 생겼답니다. 또 멧돼지고기 프랜차이즈 요리점도 광고를 하더군요. 멋진 모양과 행태로뿐만 아니라 이제 고기로도 우리를 매혹시킬 태세군요.

▲ 충북 제천의 한 멧돼지농장에서 '잘 생긴' 멧돼지들과 만나다.
ⓒ 강상헌
아무튼 시들해가는 우리 마음과 몸의 야성(野性)을 복구하고, 다시 인간이 자연의 초록 고갱이가 되도록 도와줄 멧돼지의 등장에 많은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멧돼지는 어떤 동물인가?

멧돼지는 '산돼지'입니다. '메'는 '뫼'와 같이 산을 이르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산야에서 야성을 간직한 채 활개 펴고 사는 동물이 멧돼지이지요. 영어로는 wild boar(와일드 보어)입니다. 한자어로는 산저(山猪) 또는 야저(野猪)라고 합니다.

몸은 굵고 길며, 다리는 비교적 짧은데 뒷다리가 더 길어 빨리 뛰기에 선수지요. 주둥이는 길며 원통형이고, 눈은 비교적 작고, 귓바퀴는 삼각형입니다. 머리 위부터 어깨와 등에 걸쳐 갈색 또는 검은색 긴 털이 많이 나 있습니다.

주둥이 바깥 양쪽으로 10cm 정도 나와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는 나무뿌리 같은 질긴 것을 자르거나 싸울 때 좋은 무기가 되지요. 활엽수가 우거진 깊은 산에서 사는데 눈이 많이 와 먹이 찾기가 어려울 때면 야산과 마을로 내려올 때도 있답니다.

본디 초식동물이었지만 토끼 들쥐 등 작은 짐승부터 어류와 곤충에 이르기까지 아무 것이나 먹는 잡식성으로 변했다고 하네요. 코로 땅을 파는 것은 먹이를 찾기 위해서 입니다.

번식기는 12월부터 다음 해 1월이며, 임신기간은 114~140일이고, 5월경에 7마리~13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의 몸에는 보호색 역할을 하는 노란빛 줄무늬가 있는데, 이 줄무늬는 5개월 이후에 없어지기 시작하여 가을에는 어미와 같은 색깔의 딱딱한 털로 변하지요.

젖꼭지는 6쌍입니다. 젖이 부족하거나 하여 낳은 새끼들을 모두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미는 새끼들 중 나약한 놈을 골라 젖꼭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도태(淘汰)'를 선택합니다.

여러 야생동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어미는 이 도태된 새끼의 고기를 먹기도 합니다. 산모(産母)가 제대로 먹어야 젖이 나오겠지요. '자연의 법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수컷은 2년이면 고환(불알)이 발달되기 시작해 어미로부터 쫓겨납니다. 근친(近親) 즉 한 배 자식끼리 짝짓기를 한다면 후손의 '품질'이 떨어지기 마련일 터, 어미는 이 엄연한 진리를 어떻게 터득했을까요? 유전자에 꼼꼼히 새겨져 있는 것일까요? 이제 생식능력을 가진 수컷 멧돼지는 외톨이가 되어 자신의 새끼를 낳아줄 암컷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게 됩니다.

멧돼지고기의 특징

멧돼지고기는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아왔지요. brawn(브론)이란 영어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돼지고기는 pork(포크)지요.

돼지고기보다 선홍빛이 강한 멧돼지고기는 혀에서 녹는 듯한 비계와 쫄깃한 살의 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을 냅니다. 지방의 질(質)이 좋은데다, 고기 안에 퍼져 있는 지방의 분포(分布)와 양(量)이 적당해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 멧돼지 연구자 중의 한 사람인 제주대 정동기 교수.
ⓒ 강상헌
정동기 제주대 생물산업학부 교수는 "경험상으로, 또 풍미(風味)로 보아 멧돼지의 지방은 개고기와도 흡사한 불포화지방산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반 돼지고기와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정 교수는 멧돼지고기의 성분에 관한 연구가 얼른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리 후 조리 기구에 묻는 기름의 양도 적고, 닦기도 쉬운 점이 지방의 질이 좋다는 것을 반증(反證)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멧돼지고기를 조리하는 이들은 말합니다.

멧돼지고기에는 육류 특유의 누린내가 없습니다. 또 구운 후 시간이 좀 지나도 다른 고기처럼 딱딱해지지 않고 야들야들합니다. 이렇듯 한 번 먹어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둘이 아닐 것입니다.

불도장(佛跳牆)이란 중국요리 이름을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중국 청나라 때 만들어진 수프요리인데 어찌나 맛이 좋은지 부처님도 먹고 싶어 담을 넘는다는 뜻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소개하는 멧돼지고기가 사슴 힘줄, 잉어 부레, 송이, 해삼, 전복 등과 함께 이 요리 불도장의 주요한 재료라고 하네요.

멧돼지고기의 효과

젖이 부족한 산모에게 멧돼지고기를 먹게 했다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전해오고 있습니다. 한방(韓方)에서는 고혈압이나 비만증에 좋다고 한답니다. 먹으면 몸이 더워지는 스태미나 식품이라고 하여 널리 사랑을 받고 있으며, 피부 미용에도 좋아 여성들이 좋아하는 고기지요.

쓸개는 어혈(瘀血)을 푸는 특효약으로 쓰입니다. 간혹 쓸개에 우황(牛黃)같은 황이 든 것도 있는데 옛날엔 금값이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지리산 일대에선 멧돼지 쓸개를 말려 툇마루 위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제주대 정동기 교수가 채집(採集)한 얘기지요.

마을에 갑자기 죽어가는 사람이 생긴다든지 하면 이 마른 쓸개를 갈아 물에 타 먹여 살려냈다는 것이지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우황청심환이군요.

잡식성인데다가 후각(嗅覺)이 아주 발달한 이 녀석이 산과 들의 좋은 것은 다 먹고 다니기 때문에 약효가 쓸개에 축적된 것이 아닐까 하고 정 교수는 추측합니다.

냄새 맡는 것, 후각은 동물 중 최고 수준이랍니다. 어떤 나라의 첩보기관에서는 멧돼지의 후각을 마약이나 지뢰탐지에 활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5m 땅 속에 묻은 사과를 냄새로 알고 거뜬히 파먹는 재주는 분명 보통이 아니지요.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모든 짐승 가운데서 가장 많은 부위를 약재로 쓰는 짐승이 돼지입니다. 이 짐승의 원종(原種), 즉 먼 할아버지가 멧돼지이고 보면 멧돼지의 미덕 또한 만만한 것은 아닐 터이지요.

즉 돼지의 '효능'은 말할 것도 없고, 멧돼지가 '산의 주인'이라는 점에 따르는 좋은 점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재배 인삼과 산삼의 차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육멧돼지는 장뇌삼(산삼처럼 산에서 재배한 인삼) 정도에 비유하면 어떨지요.

▲ 다큰 놈들과는 달리 새끼들은 끔찍하게 이쁘다. 줄무늬 밤색은 멧돼지 새끼만의 보호색.
ⓒ 강상헌
그래서 멧돼지고기를 요리해 파는 음식점에 가보면 벽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멧돼지고기가 이러이러하게 좋다'고 쓴 방(榜)이 요란합니다. 그런데 실제와 다른 허황된 얘기가 태반입니다. 멧돼지고기만 먹으면 만병통치약이 따로 필요 없다는 정도의 과장이지요.

먹어본 이들이 "맛이 좋아 한번 먹어보면 다른 고기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고 하기도 하고, 그 힘이 느껴진다고 귀띔하기도 합니다만 멧돼지고기가 어떻게 만병통치약이 되겠습니까?

<동의보감>은 돼지를 설명하고 나서 간단히 멧돼지를 설명합니다. '헛것을 보아 까무러친 데나, 아이의 경기에 좋다'는 구절이 얼른 눈에 들어옵니다. 산신령과 가까이 사는 녀석이어서 영적(靈的) 효험이 있다는 것일까요? <동의보감>이 말하는 멧돼지의 효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생긴 것이 집돼지와 비슷하다. 허리와 다리가 길고 털이 갈색이다. 고기, 기름, 담에 생긴 누런 것, 쓸개, 이빨, 불알 등을 약으로 쓴다. 고기는 오장을 보하고 풍기(風氣)가 동하지 않게 한다. 기름은 얼굴빛이 좋아지게 하고, 산모의 젖을 잘 내게 하는데 좋다. 멧돼지 담 속에서 나온 누런 야저황(野豬黃)은 헛것을 보아 까무러친 데나, 아이의 경기에 좋다. <계속>

덧붙이는 글 | 녹색언론 <생명시대신문>(www.lifereport.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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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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