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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초기에 우리 선조들이 그려 놓은 예술성 높은 바위그림이 울산 태화강 상류의 한 절벽에 있습니다. 흔히 반구대 암각화(岩刻畵)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이 그림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놀라울 정도의 사실성(事實性)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 살림의 구석구석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산업백서(産業白書)라고나 할까요.

▲ 5천년 역사의 더께 입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와 함께 멧돼지가 우리 옛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가로 8m, 세로 2m 넓이의 이 그림에는 고래를 잡거나 맹수를 쫓는 사람의 모습과 고래 사슴 호랑이 등과 함께 멧돼지도 그려져 있답니다. 대개는 암벽 면에 날카로운 꼬챙이 같은 것을 써서 새기는 방법으로 형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고래입니다. 반구대가 고래잡이로 유명한 장생포항에서 26km 떨어진 곳인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원전 29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으로 미뤄볼 때 이미 당시에 그 부근 바다에서는 고래잡이 즉 포경업(捕鯨業)이 일반적인 생업(生業)이었다는 것이지요. 5천년 전의 포경업이라, 역사의 두께를 어림해 볼 수 있겠군요.

멧돼지도 고래 등과 같이 선사시대 한반도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합니다. 바위그림은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세계 각지의 바위그림에서도 멧돼지가 역시 많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한국 상고(上古)의 단군조선을 대통일 민족국가로 서술한 역사책인 <환단고기(桓檀古記)>에도 당시에 멧돼지가 사육됐다는 기록이 나온답니다.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소장품인 그리스 고대 항아리 그림(사진)에 등장하는 유명한 멧돼지도 유럽지역의 고대에 멧돼지가 일반적인 수렵(狩獵)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 그리스 고대 와인그릇 오이노코에에 그려진 멋진 멧돼지.
리시피데스라는 사람이 기원전 520년 경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오이노코에라는 이름의 이 항아리는 와인(포도주)을 담는 용도로 사용된 듯합니다. 점토로 만들어 구운 것이며, 키가 38.7cm인 자그마한 항아리지요.

그리스 신화(神話)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후원자인 아테네 여신이 보는 앞에서 멧돼지를 무릎 꿇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지요. 이 멧돼지는 에리만투스라는 동네의 주민들을 수년간 공포에 떨게 한 말썽꾸러기였다는데 헤라클레스는 이놈을 맨손으로 잡고 있네요.

왕에게 산 채로 바치기 위해서 칼이나 활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나중에 그리스 신화의 중요한 신들 중 하나가 된 영웅 헤라클레스나 아테네 여신의 모습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지만 멧돼지 또한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멧돼지 육종 등 연구 현황

멧돼지의 유전자를 연구하면 집돼지나 교배종(잡종) 멧돼지 사이의 같고 다름 등 품종(品種)을 구분하는 항목(項目)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염색체의 수나 모양의 같고 다름을 두고 서로 구분하는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기준이 있어야 생김새나 고기 모양, 육질 등과 함께 좋은 멧돼지란 어떤 것을 말하는지의 조건들을 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불행하게도 이런 조건을 넉넉하게 충족하는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순천대 동물자원학과 오희정 명예교수가 제주대 정동기 교수 등과 함께 1990년대부터 벌여온 야생멧돼지 교배종멧돼지 집돼지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이 분야의 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아직 실험실 수준을 넘어 산업에 활용할만한 구체적이고 실증적(實證的)인 연구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집돼지와 멧돼지 간(間) 잡종의 염색체 상(像)에 관한 연구> <한국 멧돼지의 표지인자에 관한 연구>와 같은 오 교수 등의 논문은 우선 현재의 멧돼지 사육에 체계적인 육종(育種)의 방법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등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力說)합니다.

▲ 농가에서 사육하는 멧돼지 모습. 대개 잡종 3대를 식용, 약용으로 쓴다.
ⓒ 강상헌
또 이제까지 일반적인 증식(增殖) 수단이었던 교배 즉 멧돼지와 다른 품종과 접붙이는 방법이나 황우석 교수 등이 진행하고 있는 것과 흡사한 유전자 복제에 의한 첨단적인 방법(클로닝)의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도 멧돼지의 육종 분야에서 부딪히게 되는 실질적인 문제지요.

다른 육류상품과 같이 멧돼지도 자체 품종이 우수해야 합니다. 또 성분이나 유전자 등 멧돼지상품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 자세하게 파악되어야 합니다. 맛이 좋다거나, 우수하다거나, 안전하다거나 하는 사항이 일정한 단위로, 수치로 표현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절차에 드는 여러 품이 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좋은 품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전적 특성 등의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야생 순종은 어떤 것이고, 식용으로 적합한 교배종은 어떤 것이다 따위 말입니다.

오희정 교수는 '무엇이 좋은 멧돼지고기인가를 판단하는 조건을 세우는 작업은 사육농가 차원에서 이뤄질 일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농정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 교수 등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멧돼지고기의 조리법

목살 삼겹살 등의 부위는 구이로 제격입니다. 소금구이로 담백하게 즐길 수도 있고, 서양식 소스 또는 쌈장과 곁들여도 먹기 좋습니다. 바비큐의 재료로도 많이 활용되며, 꼬치에 야채와 함께 꿰어 구우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요.

살이 많은 부위는 불고기나 찜, 찌개 재료로 좋지요. 시래기나 잘 익은 김치와 함께 익힌 찜은 건강식으로 적당할 것입니다. 고추장으로 매콤하게 양념하는 불고기도 권할 만합니다. 안심으로 만드는 육회(肉膾)는 프리미엄 메뉴로 적격이지요. 토렴(샤부샤부)이나 떡갈비의 재료로도 손색없고요.

조리 때 너무 많이 익히지 않는 것이 멧돼지고기의 참맛을 즐길 수 있는 비법이랍니다. 경험 많은 주방장들은 구울 때, 80~90% 정도 익은 것으로 보일 때가 가장 맛있다고 입을 모웁니다.

멧돼지는 어떻게 사육되나?

대개 산에서 자라는 야생 멧돼지의 새끼를 데려다 길들여 재래종 돼지와 교배(交配)하는 방법으로 번식시킨다고 멧돼지 사육과 유통분야에서 일해 온 주성농장 이옥현 사장(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은 말합니다.

야생 순종(純種)은 성질이 거칠어 키우기 어려운데다 육질(肉質)이 보다 부드러운 고기를 얻기 위해 잡종(雜種)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잡종 제3대(F3) 교배종이 맛이나 육질 등의 관점에서 식용(食用)으로 적당한 것 같다고 멧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나 유통 종사자들은 얘기합니다.

원래 멧돼지는 사냥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다가 1970년대 초부터 구례 남원 등 지리산 일대 농가에서 사육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답니다.

아직 농정(農政) 당국에 의해 사육농가의 규모 등이 구체적으로 파악되고 있지는 않지만 소비자의 관심이 커가고, 사육농가와 멧돼지 요리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식당이 늘고 있어 멧돼지가 우리 농가의 좋은 소득원으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사육농가는 전국에 퍼져있는데, 특히 전남의 구례, 영암, 해남, 신안, 순천 등지에 멧돼지 사육농가가 많답니다.

전라남도농업기술원(원장 류인섭)은 멧돼지가 농가소득을 효과적으로 증대시킬 좋은 가축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몇 해 전부터 이 분야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녹색언론 <생명시대신문>(www.lifereport.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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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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