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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입영시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강제입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녹화사업'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지요. 입영을 연기한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강제로 징집되면 빨강색으로 물들었다고 보고 녹화사업의 대상이 되었고 상당히 혹독한 고초를 겪었던 모양입니다.

너나 없이 끌려가기 싫어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도망다니기도 했습니다. 이 시절에 그런 사유로 도망다니던 징집대상자를 '도바리'라고 불렀죠. 도바리들을 숨겨준 친구도 강제징집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도바리들은 남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눈물겨운 한 여성이 있어서 화제를 뿌리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3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한나라당 김정부 의원의 부인입니다. 여성이니 '도바리'는 아니고 '도순이'라 해야 할까요?

지난 17대 총선에서 탄핵의 역풍을 뚫고 당당히 견고한 지역 구도를 지켜내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정부 의원은 아마도 부인의 눈물겨운 내조 덕을 톡톡히 본 듯합니다. 수억대의 재산을 뿌려가며 눈물겨운 선거운동을 한 덕에 소중한 지역구도를 지킬 수 있었던 것하며 남편의 국회의원직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총선이 끝난 지 1년하고도 4개월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도망을 다니고 있는 헌신이 감동(?)입니다.

이제 1심이 끝났으니 항소하면 고법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의 출석을 핑계대며 재판이 지연될 것입니다. 여론에 떠밀려 궐석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고 다시 상고하면 대법원은 언제 재판을 진행할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국회의원 임기가 거의 끝날 때쯤 종결이 되고 의원직을 상실하거나 끝까지 임기를 마치고 나서야 당선무효가 선고될 듯 합니다.

사실은 선거법을 위반하여 당선무효가 선고된 의원들이 상당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질기게 오래 버티는 것도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것도 의원 신분이 아닌 부인이 출석을 하지 않고 버텨서 남편의 의원직을 유지시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단한 내조로군요.

정작 문제는 사법부의 태도입니다. 이상락, 복기왕, 이철우, 김맹곤 등 여당 초선의원들이 그리 무거운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추상같은 판결로 의원직을 빼앗아 가버린 사법부가 범법의 정도가 매우 심한 사안에 대하여 차일피일 기일을 미루고 지연하여 지금 1심 선고를 내린 구조적인 모순입니다.

선거관련 사범의 경우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서 의원직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던 사법부가 유독 한나라당의 경우에만 의원직을 유지하는 판결을 연거푸 내리고 여당 의원들을 줄줄이 낙마시키더니 부인의 불법으로 당연히 의원직 상실이 예상되는 이 사건의 경우 본인이 출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을 계속 연기하여 온 태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이 체포하지 못하고 본인이 법원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도망 다니는 경우라면 최대한 재판의 진행을 신속히 했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남편을 내조하기 위한 부인의 눈물겨운 도망살이에 사법부가 감동받아서 협조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참 이해가 난망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선거 때 본인은 가급적 법을 준수하고 부득이한 경우 부인이 불법을 하고 도망을 다니면 의원직을 상당히 오래 유지할 수가 있을 듯 합니다. 궐석재판을 법원이 이리저리 회피하는 한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되겠군요.

사법부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정상적인 판결을 내려주지 못하고 부당한 자들의 부당한 행위를 추상같이 벌하지 못한다면 법치주의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장 화급한 개혁대상은 사법부가 아닌가 생각이 되는군요.

때 아닌 도망살이를 보면서 80년대의 '도바리'들이 갑자기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망 다니는 점에서 같은 것이지만 도망 다니는 이유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비교되는군요. 그 시절 도바리들의 안타까운 생활상이 눈앞에 선합니다. 부인의 위법행위가 작용하여 당선된 의원직이 부인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유지되는 국회의원님은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라디오에 출연하여 토론도 하시던데….

덧붙이는 글 | 노사모, 서프라이즈, 열린우리당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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