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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라면 꼭 가보고 싶은 곳. 백두산!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북경에서 연길로 가는 기차표를 구입할 수 없어 웃돈을 더 주고 구입하였다. 평소 같으면 웃돈이라는 것에 기분이 상해 그만 둘 법도 한데 백두산이라 감정을 꾹 눌렀다.

▲ 여름휴가 여행으로 붐비는 북경역
ⓒ 정호갑
북경에서 연길까지는 23시간. 여행이라는 설렘에 백두산이 더 보태어져 마음은 이미 백두산을 넘어서고 있었다. 북경을 벗어나 기차가 동북쪽으로 달려 갈수록 눈에 익은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도 들도 우리 농촌 마을 그대로이다. 산의 푸르름이 그렇고, 기찻길 옆 옥수수가 그렇고 논에 있는 벼가 그렇다. 북경에서 2년 6개월 동안 보았던 황량함과는 다른 모습이다.

▲ 차장 밖으로 보이는 연변 풍경
ⓒ 정한별
중국은 소수 민족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그들의 언어를 자치 구역에서는 중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인정하여 주고 있다. 조선족자치주로 들어서자 자연 풍경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기차역 표지판도, 안내방송도 우리말이다. 역을 나서니 거리의 간판도 눈에 익은 글씨들이다. 여행의 낯설음을 뒤로 하고 온몸으로 그 포근함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 연길역
ⓒ 정호갑
연길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6시에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가끔 비도 흩날리고 구름은 하늘을 가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5시간여에 걸쳐 백두산에 다다랐다. 하지만 여전히 날씨는 맑아지지 않는다.

백두산에는 16개의 봉우리가 있다. 그 가운데 북한 쪽에 7개, 중국에 6개 그리고 국경 지대에 3개가 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백두산의 관광객은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지만 현재 백두산 관광객은 60% 이상이 중국 사람이라고 한다. 백두산이 중국의 10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기에 중국 사람들도 많이 찾는단다.

백두산에 오르면 모두 보고 싶어 하는 천지는 동으로 두만강, 남쪽으로 압록강 그리고 북쪽으로 송화강으로 이어지는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장백폭포를 따라 송화강으로 흐르는 물줄기뿐이다.

시간이 충분할 경우 '서파 - 금강대협곡 - 천지 - 장백폭포'로 이어지는, 약 10시간 가량의 등산 코스로 백두산을 제대로 둘러볼 수 있지만, 오늘은 욕심을 버리고 천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천지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이다. 천군봉까지 지프차로 가서 천지를 굽어보고 내려와 장백폭포를 보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장백폭포를 보고 난 뒤 장백폭포를 따라 천지까지 등산하는 것이다.

▲ 그침 없이 떨어지는 장백폭포의 물줄기
ⓒ 정한별
첫 번째 방법이 편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리기 때문에 천군봉에서 천지를 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먼저 장백폭포를 보고 천지까지 등산하기로 하였다. 장백폭포 물줄기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씻어주지만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을 떨칠 수 없다.

천지를 보지 못하면 여기가지 온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도 볼 수 있겠지 하는 한 가닥의 미련으로 장백폭포를 따라 산에 오른다. 가파른 계단에 숨이 가프다. 정상에 다다랐는데도 천지는 보이지 않는다.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뿐이다.

백두산의 천지와 천산의 천지

문득 지난해 우루무치에서 보았던 천산 천지가 생각난다. 북경에서 우루무치까지 이동하면서 보았던 황량한 사막이 우루무치에서 멈춘다. 천산에는 물이 흐르고, 정상에는 이름도 거룩한 천지가 있다. 실크로드를 따라 천산에 이르렀을 때 천지에 대한 기대감은 참으로 컸다. 신장 사람들은 천산 천지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하지만 막상 천지에 다다랐을 때 규모나 풍경은 기대를 저버렸다. 그때 그들의 환경에서 위로를 찾았다. 황량한 사막에 반듯한 산이 있고,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그리고 정상에는 천지가 있으니 신장 사람들에게 천산 천지는 하늘이 준 선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 우루무치에 있는 천산 천지
ⓒ 정호갑
백두산 천지도 그렇다는 말인가? 사진은 과연 믿을 수 없는 것일까? 이런저런 실망감이 움트기 시작한다. 힘이 빠진다. 막다른 작은 턱에 올라서는 순간 그만 입이 벌어지고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힘듦이나 홀로 가졌던 투덜거림이 모두 사라졌다. 말 그대로 경이이다.

산에 어떻게 바다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바다만 봐도 마음이 상쾌해지는데, 산꼭대기에 끝없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생각해 보라. 한여름인데도 천지에 손을 담그니 손이 시려온다. 우리 겨레의 강인함이 바로 천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 백두산 천지의 모습 - 건너편의 봉우리가 구름에 가려 있다
ⓒ 정호갑
정신 못 차리고 감탄에 감탄을 하다 사람들을 둘러본다. 한국 사람이건 중국 사람이건 그 모습은 다 한 가지이다. 그저 묵묵히 걸어오다 턱을 넘어서는 순간 그 표정, 그 환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남녀를 떠나고 늙고 젊음을 떠나 경이로운 자연 앞에 감탄하는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제야 주위의 들꽃에도 눈이 가고 산의 생김에도 눈이 간다. 찬바람을 이겨낸 들꽃이 아름답고 화산암의 모습을 간직한 산의 생김새도 특이하다. 날이 맑지 않아 건너편 봉우리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오라는 말인가 보다.

▲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
ⓒ 정호갑
들뜨고 뿌듯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마음이 가벼우니 발걸음 또한 가볍다. 이제 배고픔도 느껴진다. 83도 되는 유황온천에 계란과 옥수수를 쪄 팔고 있다. 4개에 10위엔(우리 돈으로 1300원 정도)을 주고 맛을 본다. 반숙된 계란이 입으로 그대로 미끄러진다. 옥수수도 한 입 베어 문다. 여행의 별미이다.

▲ 83도 되는 유황온천에 쪄 팔고 있는 계란과 옥수수
ⓒ 정호갑
함께 갔던 우리 아이가 묻는다. 오늘 간 곳이 백두산인지, 장백산인지.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오늘 간 곳은 백두산이 아니라 장백산이었다. 그렇다. 다음에는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에 가야지. 아쉬움으로 남았던 천지의 모습도 백두산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백두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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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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