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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빼고 헝가리 말하기'란 제목을 본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야, 부다페스트 빼고 헝가리에 대해 말할 게 있어? 부다페스트를 빼고 어찌 헝가리에 대해 말한단 말야?"

나도 그럴 줄만 알았다. 2002년 헝가리에 가서 직접 한 달 정도 살아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헝가리' 하면 자연스럽게 '부다페스트'가 떠오르던 나의 반사적 태도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헝가리인 친구의 집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관광지보다는 시장을', '호텔보다는 현지인 집을', '단순히 '찍고 턴'하는 관광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다른 문화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여행 속의 생활'을 선호하는 내게 헝가리 친구들의 초대는 뿌리칠 수 없는 강한 유혹이 분명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난데없이 이스라엘 키부츠로 날아가서 자원봉사자(volunteer)로 일하고 있던 난 어차피 과감히 직장까지 그만두고 떠나온 바에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도 보고 말로만 듣던 '서구화되어 가는 동유럽'을 만나보기로 했다.

이스라엘을 떠나 이집트를 여행하던 난 안 먹고 안 쓰며 아껴뒀던 돈으로 카이로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고, 헝가리 국적항공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 드디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헝가리 국적항공기 'Malev'
ⓒ Malev
공항에는 헝가리 친구와 그의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년 만에 재회이니 만큼 난 친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예전 같으면 이런 포옹은 '징그러워라' 하며 피했겠지만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다 보니 이 정도 포옹쯤이야 정말 인사로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생겼다).

▲ 난 파란 색 동그라미 친 Pecs인근 Monyorod까지 흘러갔다.
ⓒ 헝가리 관광청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친구가 내 얼굴을 보며 "너무 까매져서 네가 아닌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거울을 보니 정말 토종 황인종 김수진은 어디로 사라지고, 코코아 빛 얼굴의 웬 중동여인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이집트 사막을 방황하다 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얼굴과 옷차림새로 난 헝가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 차창 밖으로 바라 본 헝가리 시골 풍경
ⓒ 김수진
날 헝가리로 불러들인 그들은 누군가?

여기서 잠깐, 나를 헝가리 속으로 끌어들인 내 소중한 헝가리인 친구들에 대해 먼저 소개해야겠다. Horvath Bernadett와 Horvath Henriett(헝가리도 우리처럼 성을 먼저 쓴다) 자매가 그 주인공인데, 그들의 애칭은 데티(Detti)와 리아(Ria)다.

내가 이들 자매를 알게 된 건 수년 전 캐나다에서였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던 난 자칭 '문화 체험'이라는 명목 하에 캐나다에 갔고, 그 곳에서 우연히 이들 헝가리 자매를 알게 됐다. 이들 역시 원래 캐나다에 사는 게 아니라 영어 공부도 하고 연로하신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와 잠시 동안 함께 지내기 위해 캐나다에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외국인과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가 없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 준 친구들이다. 우리는 피부색은 달랐지만 얘기가 통하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같이 영화를 보고난 뒤 차를 마시며 영화 얘기도 나누고, 짧은 영어지만 같이 문화 얘기, 정치 얘기, 역사 얘기는 물론 때로는 남자 고민까지 그야말로 일반적으로 친구들이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느 날 해질 무렵 공원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리아가 나에게 "근데, 전부터 참 궁금했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일본인들을 싫어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졌다. 난 그간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배경 등을 늘어놓으며 그 이유를 설명했고, 내 설명을 들은 리아는 "우리 헝가리도 강대국에 둘러싸여 고난의 시기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한국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1년여 동안 서로에 대해, 서로가 살아 온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배워가며 우정을 쌓아갔고, 서로 헤어져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서 '꼭 다시 만나자'란 약속을 했었다.

그렇게 5년 정도가 흐른 후 우리는 약속대로 헝가리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다.

여기가 헝가리야? 한국이야?

친구 아버지의 차를 타고 나는 곧바로 부다페스트 공항을 떠나 헝가리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로 향했다. 여행책자에는 주로 부다페스트만이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여행책자에서 봤던 헝가리 모습과 실제로 접하게 된 헝가리 모습은 참 많이 달랐다.

내가 처음 접한 헝가리의 모습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이나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좁고 길게 뻗은 2차선 도로에 그 옆으로 보이는 나무와 평야, 간간이 보이는 소박한 마을들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거친 솜씨로 차를 몰던 친구의 아버지가 어느 대문 앞에 차를 세우시고, 드디어 우리는 헝가리 시골에 자리한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빨간 고추였다.

▲ 빨간 고추가 익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헝가리에선 고추를 '파프리카'라고 부른다.
ⓒ 헝가리 관광청
"헉! 고추다! 그 것도 빨간 고추!"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영락없는 우리나라 시골의 가을 풍경이었다. 멀리 유럽 대륙에서 그것도 백인들이 사는 땅에서 만난 빨간 고추는 그야말로 하나의 충격이었다. 반갑고 즐거운 충격 말이다.

▲ 고추와 마늘이 주렁주렁. 여기가 한국이야? 헝가리야?
ⓒ 헝가리 관광청
우리랑 공통점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그 낯선 땅에서 이렇게 한국적인 풍경을 접하게 될 줄이야.

헝가리에서 맛본 따뜻한 '정'

헝가리 시골 풍경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은 분명 빨간 고추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오자 부엌에서 거의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맞아주시던 친구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한국의 어머니, 할머니 모습 그대로였다.

▲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데티, 리아 가족과 따뜻한 헝가리 사람들.
ⓒ 김수진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렇게 눈으로 마음으로 서로에 대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부엌에선 맛있는 음식이 익어가는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고,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을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에게 따뜻한 국을 떠주시며, 이 음식 저 음식을 권하시는 어머니와 할머니 모습을 통해 오랜만에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정'만은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난 그전까지 서양인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냉철하고, 개인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사람들'이라는 뭐 그런 느낌말이다. 하지만 내 이런 엉성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부색이 같아도 살아 온 문화와 생활방식에 따라 가치관과 사고관이 다를 수 있다는 그 평범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난 왜 그때서야 깨닫게 된 걸까?

빨간 고추를 말리고, 아빠를 '아파(Apa)'로 부르는 헝가리인들을 보면서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우랄알타이어족'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며, 앞으로 더 많은 즐거운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기대감에 가슴이 설렜다.

그렇게 헝가리 시골에서의 내 생활이 시작됐다.

<여행야화> 연재를 시작하며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고 안정된 생활을 접고 '이스라엘 키부츠'로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도 서유럽도 아닌 '웬 이스라엘?'이라는 반응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난 중동과 동유럽에 강한 매력을 느꼈고, 단순한 관광보다는 다른 문화권의 진정한 삶을 체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던가, 당시 비행기 왕복표와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들고 무작정 떠났던 난 이스라엘로, 터키로, 이집트로, 헝가리로 6개월을 멋지게 돌아다니다 왔다.

돌아와서 나의 생활을 걱정하는 친구들과 부모님께 내가 했던 말은 '산 입에 거미줄 치랴!'였다. 그 말처럼 돌아와서 난 CNN뉴스 번역 일을 하고, 간간이 글도 쓰면서 정말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낯선 땅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소중한 경험들을 그냥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편하게 많은 이들과 나눠보고 싶다. ‘내 이야기가 <천일야화> 같은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야무진 꿈을 꿔본다.

아날로그형 인간이 뒤늦게 사이버 공간에 방 한 칸 마련했다.

집 주소는 http://blog.naver.com/travel_holic / 김수진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와는 좀 다른 내용의 헝가리 관련 기사를 지난 주에 주간 여행 잡지 'Travie'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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