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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대 거실.
ⓒ 정호갑
"흔히들 사람들은 부와 새로운 과학기술을 함께 말하길 좋아하는데 나는 궁정 공예품인 자단 공예품들이 외국의 새로운 과학기술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진려화

▲ 고비점 길목에 있는 자단박물관
ⓒ 정호갑
북경 고가구 전문 거리인 고비점(高碑店) 길목에 자리한 자단박물관. 1999년 9월 개관해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볼만한 박물관'으로 추천받게 된 자단박물관은 의외지만 개인사업가인 진려화씨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공간이다. 진려화 관장은 이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당시 중국돈 2억 위엔(한화 현재기준 260억원)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홍콩에서 부동산과 건축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진씨는 2002년 미국에서 발행되는 경영전문지 <포브스>에서 중국의 부호 5위에 들 만큼 재산가다. 어렸을 때 가구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박물관을 탄생시켰다고.

자단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단으로 만든 명·청시대의 황실 가구를 모아 놓은 곳이다. 진 관장은 왜 '자단' 박물관을 고집하게 된 걸까.

왜 '자단' 박물관인가

▲ 중국 전통 신혼방 모습.
ⓒ 정호갑
중국 가구의 전성기는 명·청시대로 알려져 있다. 명나라가 송, 원의 전통 가구 기술을 계승했고 한편으로는 명대에 와서 도시 상품 경제가 번창하고 그에 따라 주택과 원림(정원) 건축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보통 좋은 가구 재료로 황화리목이나 두메밤나무, 느티나무, 홍목, 남목 등이 거론되는데 당시의 황실가구는 유독 자단만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자단 박물관의 안내담당 정위(丁炜)의 설명을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자단나무는 쓸모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자라는 속도가 느려서 수백 년이 지나야 사용할 수 있고 나무속이 비어있어 제대로 된 목재가 나올 확률이 20%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단 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꽃게의 집게발과 유사한 섬세한 유선형 문양은 매우 독특하다. 하여 사람들에게는 '교사문(絞絲紋)'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단' 때문인지 명대 가구는 완비함을 갖추면서도 선명한 예술적 특색을 형성하고 있다. 그 선이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고, 균형미를 갖추면서도 이음새가 빈틈없다. 목재의 자연 무늬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수공 조각을 응용해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 또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의 장식은 아름다움을 더욱 가미했다. 이러한 것이 그대로 청대에 까지 이어졌다. 청대 가구는 명대의 가구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청대에 와서는 명대의 소박하고 단아한 멋보다는 문양을 좀 더 화려하게 꾸몄다고 안내원이 일러준다.

황제들의 거처를 엿보다

▲ 자금성에 있는 건청궁의 금병풍을 그대로 모방한 모습.
ⓒ 정호갑
입구로 들어서니 한 가운데에 눈에 익은 화려한 황실 모형이 시선을 끈다.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관리와 외국 사신을 맞이하기도 하는 자금성의 건청궁 보좌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아홉 마리의 용이 보좌를 수호하고 거대한 병풍이 보좌를 보호하는 모양이다. 정말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자단박물관은 가구를 소품 중심으로 꾸며 놓은 것이 아니라 황실의 내부 중심으로 꾸며놓았으며 중국 유명 그림이나 책의 내용 그리고 자금성의 몇 몇 건물들을 자단에 그대로 옮겨 조각하여 놓았다.

중국 황실의 침실, 그리고 명·청의 거실, 전통 혼례방을 당대 그대로 꾸며 놓았으며, 자금성에 있는 고궁각루(故宮角樓), 천추정(千秋亭), 중국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을 5분의 1로 축소하여 건축모형을 만들었다. 북송시대의 화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5배로 확대 조각하여 12폭 짜리 병풍에 새겨놓았다. 서유기를 새긴 것도 볼 수 있다.

자단박물관에 있는 가구와 마주하면 첫눈에 자단이라는 재목이 자아내는 품격과 웅장한 규모에 놀라지만 좀 더 다가가서 보면 조각의 섬세함에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산과 계곡의 조각이 살아 있다. 산의 숨소리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특히 청명상하도는 청명절(淸明節)에 북송의 수도 개봉을 흐르는 변하를 따라서 번성한 도성의 풍물을 교외·강·배· 다리·성문·거리가 차례로 전개되고 군중·술집·가게·길·상인·우마차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 놓은 것인데 그 사실감을 병풍에 그대로 살려 조각하여 놓았다. 그리고 용문삼병풍(龍紋三屛風)은 용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도록 굴곡을 드러내기 위해 투각의 기법을 교묘하게 처리하여 놓았는데 당시의 뛰어난 조각 기술을 엿볼 수 있다.

▲ 용문삼병풍
ⓒ 정호갑
이 곳 가구의 문양은 당시 민간에서 즐겨 사용되었던 행복과 즐거움, 행운 등을 상징하는 나비, 꽃, 박쥐 등의 문양은 거의 볼 수 없다. 황실 가구답게 용이 주된 문양을 이루며 가구가 일반 가구보다 규모가 큰 만큼 무릉도원을 연상할 수 있는 그림을 많이 조각하여 놓았다.

진품보다 화려한 모조품들

가구 하나하나에 황실의 품위가 느껴지지만 여기에 진열된 가구가 모두 진품은 아니다. 진품은 100여점 뿐, 1000여점의 복제품이 진열돼 있다.

▲ 명대 거실.
ⓒ 정호갑
진려화 관장은 처음에는 진품을 사들였으나 넓은 땅에 흩어져 있는 진품들을 일일이 사들일 수가 없어 전국의 유명한 조각가들과 함께 모조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조품이더라도 최고의 목재인 자단으로 최고의 조각가들이 모여 제작하였으니 시간이 흐르면 이 또한 훌륭한 예술품이 될 것이라고 안내원은 말한다.

자단박물관에서는 중국의 옛 가구를 통하여 역사라는 거대함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의자에 걸터앉으면 편안함이 그대로 느껴지고 지난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들의 섬세함에 놀란다.

빈틈없이 질주하고 있는 과학기술 시대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과학에서 느낄 수 없었던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잠시나마 현실을 등지고 과거로 돌아가 편안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재충전을 위해서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북경에는 만리장성이 있고 자금성이 있고 그리고 자단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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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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