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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시대 지식의 보고인 수도원 도서관에서 금서를 읽던 수사들이 죽어 나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도서관이라는 개념이 인류 문화의 지평에 들어선 이후 도서관과 책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독서실인양 사용되는 한국의 도서관도 책을 소장하고 있기에 '독서실'이 아닌 '도서관'으로 불린다. 책의 보관과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제공, 이 두 가지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서관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런데 이 두 축 중 하나가 사라진다면?

바로 지금, 미국의 대학 도서관에서는 책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은 책이 사라지는 공간을 어떻게 메우고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다. 그러나 아날로그 시대의 앎에 목마른 자들이 도서관의 방대한 서고에서 책이라는 탯줄을 통해 전문 지식을 흡수했다면 21세기의 도서관은 다르다. 도서관은 이제 지식과 정보를 디지털로 저장하고 새로운 통로로 공급한다.

미국 대학 도서관의 새로운 경향, 인포메이션 코먼스

▲ 인포메이션 코먼스의 개인용 컴퓨터 공간.
ⓒ 윤새라
지금 미국 대학 도서관을 이끄는 최전방의 유행은 '인포메이션 코먼스(Information Commons)'다. 미국에서도 아직 명칭이 통일된 것은 아니다. 어떤 대학은 '러닝 코먼스(Learning Commons)'라고도 부른다. 명칭이야 어떻든 이 새로운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겉으로 보면 넓게 트인 공간에 컴퓨터가 잔뜩 들어서 있다. 일견 도서관이 그저 거대하고 편안한 컴퓨터실로 탈바꿈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만은 아니다. 인포메이션 코먼스는 여러 가지 복합 기능을 수행한다.

개인용은 물론이고 그룹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시설, 미디어 랩, 학생들의 연구를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돕는 사서들, 하드웨어의 문제를 담당하는 기술자, 리포트 쓰기를 돕는 시설이 모두 인포메이션 코먼스를 구성한다. 미국의 초대형 서점 체인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을 본뜬 편안한 가구와 카페, 라운지도 인포메이션 코먼스의 특징이다.

▲ 하드웨어 문제를 도와 주는 테크니컬 서포트가 인포메이션 코먼스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 윤새라
하루 24시간 열려 있는 인포메이션 코먼스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할까? 곳곳에 구비된 최신형 컴퓨터로 대학이 제공하는 모든 도서관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현재 미국 대학 도서관은 100개가 넘는 방대하면서도 정교하게 분화된 데이터베이스를 한곳에 구축해 대학에서 행해지는 연구를 돕고 있다. 이제까지는 데이터베이스로 전문을 볼 수 있는 것은 몇 십 장 내외의 논문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구글'이 미국과 영국의 유수한 대학 다섯 군데와 책 전문을 디지털로 저장하는 계획을 실행중인 걸로 미루어 볼 때 모든 학술 서적의 디지털화도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닐 듯싶다.

미국 대학생들은 더 이상 책을 읽으며 공부하지 않는다. 인디애나대학 도서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몇몇 학부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난 학기 도서관에서 학업과 관련해 책을 대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곧 4학년이 되는 아담의 말은 요즘 학부 도서관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교과서를 빼면 책을 볼 일이 없어요. 교재로 쓰이는 책은 다 전자 리저브(E-Reserve)에 있으니까요. 도서관에서 가끔 책을 빌리긴 하지만 그건 그냥 내가 여가 시간에 재미 삼아 읽으려는 책 정도예요."

또 수업 과제물로 내는 리포트를 쓰는 데도 책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데이터베이스로 정보를 찾기 때문이다. 1학년인 앤은 '엡스코'라는 데이터베이스를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한편 옆에 있던 3학년 코린은 자기는 "구글 소녀"라며 꼭 구글부터 돌린다고 밝혔다.

이렇게 디지털화가 진전하고, 그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 패턴도 디지털화되면서 도서관도 그 물결을 타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이 찾지 않는 책을 없애고 대신 그 공간을 그들이 필요로 하는 디지털 정보를 더 빨리, 더 쉽게, 더 깊이 있게 얻을 수 있도록 마련한 시설이 바로 인포메이션 코먼스다.

낡은 책 버리고 컴퓨터 놓인 세미나룸으로

▲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동 연구 공간.
ⓒ 윤새라
인포메이션 코먼스의 또 다른 장점은 그룹 연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많다는 점이다. 학부 수업 과제물에는 흔히 공동 연구가 있기 마련인데 이런 경우, 몇몇의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컴퓨터를 놓고 리서치도 하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 공간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인디애나 대학의 경우 2003년 학부 도서관 1층 전체를 개조해 문을 연 인포메이션 코먼스가 몰려드는 학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올해 초 학부 도서관 2층의 책을 치우고 인포메이션 코먼스를 확장해야 했다.

인포메이션 코먼스는 대학 도서관에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지남철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의 미국 대학 도서관은 '썰렁 그 자체'였다. 학생들이 책이나 찾으러 올 뿐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기자가 처음 유학 왔을 때 대학원생들마저도 도서관에서 볼 수 없어 아는 미국대학원생에게 대체 당신들은 어디서 공부 하냐고 물어 봤을 정도였다. 그들의 답은 바로 '집'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도서관이 학생들로 붐빌 때라고는 시험 때 정도였다. 이제는 사시사철 학생들이 넘친다.

아담과 코린은 일주일에 5일 이상을 도서관에, 정확히는 인포메이션 코먼스에 간다. 한편 앤과 제이는 그룹으로 공부할 때만 가는데 대강 일주일에 두세 번 꼴이다. 횟수와 관계없이 그들은 모두 인포메이션 코먼스에 가는 가장 큰 이유로 그룹 프로젝트와 온라인 리서치를 꼽았다.

새로운 도서관, 고정된 틀을 뛰어넘어

ⓒ 윤새라
인포메이션 코먼스의 가장 큰 장점은 이전까지 개별적으로 나뉘어 있던 서비스를 한곳에 모아 대학 도서관 서비스의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디지털 시대에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실행한다. 또한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 자리에서 문제의 사안에 따라 사서나 기술 도우미에게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도서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학생들이 편안한 환경에서 즐기듯이 효율적으로 공부하게 돕는 것이 인포메이션 코먼스의 기본 개념이다.

1990년대 아이오와대학과 남가주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등에서 태동된 인포메이션 코먼스는 지난 10년간 빠른 속도로 미국 대학 도서관 문화를 바꿔 왔다.

급기야 최근에는 오스틴에 소재한 텍사스대학이 올해 7월 중 학부 도서관에서 책 9만권을 대부분 내보내고 그 공간을 하루 24시간 개방하는 인포메이션 코먼스로 전용하기로 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 결정은 디지털 시대 도서관의 상징적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인포메이션 코먼스라는 최신 현상의 기저에는 미국 도서관의 적극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학생들이 책이 아닌 온라인에서 지식을 얻게 되는 시대가 오자, 보지 않는 책 대신 최신형 컴퓨터와 빠른 접속률의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공동으로 공부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하자 이전의 정숙한 공간을 떠들썩한 토론의 장으로 내어준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전통적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 깨야"
[인터뷰] 인디애나 대학 인포메이션 코먼스 담당 다이앤 댈리스

▲ 다이앤 댈리스
ⓒ윤새라
- '인포메이션 코먼스'라는 용어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학교별로 다른 이름을 쓰기도 하지만 공통분모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필요로 하는 다양한 교육 재원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것이다."

- 인포메이션 코먼스가 최근 빠른 속도로 미국 대학 도서관에 퍼져 나가고 있는데 미국 대학가 보급률은 어느 정도인가.
"정확한 수치는 나도 모른다. 우리학교만 놓고 보자면 인포메이션 코먼스를 견학하러 한달에 두 학교 정도가 직접 찾아온다. 전화나 이메일 상으로도 가능할 텐데 굳이 제대로 다 둘러보겠다고 직접 방문한다. 대학들이 인포메이션 코먼스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를 나타내 주는 예다."

- 비용은 얼마나 드나.
"우리 학교는 이미 있는 기존 공간을 개보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15만~19만 불 정도 들었다. 가장 많은 비용이 든 분야는 첨단 네트워크와 가구였는데, 빠르고 안정적인 네트워크, 편안한 시설을 제공하려 노력했다."

- 인포메이션 코먼스에 대한 반대의견은 없었나.
"도서관 직원들은 모두 전통적인 도서관 문화를 겪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이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처음에는 저항감이 있었지만 책 이용 실태를 조사해보고 난 뒤 바뀌었다. 책 대출이 매우 저조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학부 도서관에서 책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고 15만권의 장서를 3만, 1만5천 순으로 줄였다. 나만 해도 전통적 도서관을 사용하며 자랐지만 지금은 도서관 관련 업무로 리서치를 하려면 맨 먼저 온라인으로 최근 연구 상황을 훑는다. 구세대가 이런 지경이니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는 어떻겠나."

- 앞으로의 계획은?
"인포메이션 코먼스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도서관과 테크놀로지가 혼합된 형태다. 아직까지는 두 부류가 인포메이션 코먼스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을 이해하는 수준이 다르다. 도서관 직원이 이해하는 인포메이션 코먼스가 기존 도서관에 가깝다면, 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컴퓨터 랩에 가깝다는 식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는 학부 도서관만이 아니라 대학원 도서관, 즉 전문 리서치 분야에도 인포메이션 코먼스 개념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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