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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만해도 영국의 해안들은 큰 위협에 처해 있었다. 상업화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면서 해안선 3분의 1은 이미 파괴된 상황이었다. '넵튠(로마신화의 바다 신)'사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 '넵튠 사업을 설명하고 있는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웹 사이트' .
내셔널 트러스트에 의해 발족된 넵튠사업은 호텔 등 관광 업소들에 의한 무분별한 해안선 상업개발을 영구히 막는다는 취지로 시작된 해안선 보호 캠페인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미래 후손들에게 영국의 해안선을 현재 모습 그대로 물려주자', '해안선 및 해안 생태계를 보존하자', '도버의 하얀 절벽(White Cliffs)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들을 영구보존 하자'가 이 캠페인의 모토.

그동안 넵튠 캠페인을 통해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해안선 900마일 중 600여마일의 해안선이 복원됐다. 이들의 캠페인 방법은 해안을 구입, 복원한 뒤 다시 일반인들에게 비상업 관광목적으로 공개하는 식이다. 일반인들은 관람료를 내고 자연을 즐기며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도 하게 된다. 단 이 지역들을 관광하는 사람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환경 파괴나 기물 파손 등 각종 누를 끼치지 않게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

110년 전의 '도원결의', 영국을 보존하다

내셔널 트러스트란?

내셔널 트러스트는 1895년에 영국에서 옥타비아 힐(Octavia Hill),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 경, 하드윅 론즐리(Canon Hardwicke Rawnsley)에 의해 설립되었다. 산업혁명 및 개발로 인해 유적들과 자연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보다 못한 세 사람은 자선단체 형태의 전국 협회를 만들었다.

공식 명칭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들과 자연환경을 위한 전국 협회'(National Trust for Places of Historic Interest or Natural Beauty).

내셔널 트러스트는 역사 유적들, 건축물들, 명승지들을 기부 받거나 기금을 마련해서 구입해 왔다.

내셔날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지역은 개발이 제한되었고, 비상업적(교육 및 기금 마련)관광 목표로 일반에 개방되었다.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지역은 내셔널 트러스트가, 스코틀랜드 지역은 스코틀랜드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다.

이미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각기 자생적으로 내셔널 트러스트가 설립되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이와 비슷한 기관이 이탈리아 등에서도 설립되는 등 개념과 방법이 점차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90년대 초반에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가 설립돼 활동 중이다. / 김성수
넵튠 사업뿐만 아니라 영국은 복원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110년 전, 세 명의 ‘도원결의’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영국 전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탓이다.

스톤헨지(영국 월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고대 거석기념물) 같은 중요도 높은 역사 유적들은 정부기관 산하의 각 지역 '해리티지'가 관리하고 있지만, 그 외 작은 역사 유적들은 모두 내셔널 트러스트의 몫이다. 에식스와 서포크 지역 담당자인 필 어도노휴는 "우리는 영국의 역사와 환경, 교육과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자선단체"라고 말한다.

현재 내셔널 트러스트는 영국 전역에 300여개가 넘는 역사 유적들, 건축물들 및 정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런 곳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생소한 곳들이지만 영국의 자연과 역사를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영국의 지방 지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 지역에서 한두 곳은 반드시 발견할 수 있다.

▲ 윌트셔 주의 에이브 버리. 영국의 고대 유적으로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김성수
때문에 승용차로든 기차로든 여행을 하게 될 경우엔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는 여러 지역들과 자연스레 마주칠 수 있게 된다. 수백 개가 넘는 역사 유적들과 아름다운 자연 환경들이 내셔널 트러스트에 의해 적극적으로 보호되는 동시에 비상업적 관광레저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처칠과 존 레논, 그리고 폴 매카트니의 공통점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역사적 가치를 지닌 개인소유의 옛날 성이나 저택인데, 이 또한 내셔널 트러스트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다.

원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귀족들의 성이나 개인들의 저택은 엄청난 시가에 비례해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다. 주인 마음대로 철거할 수도 없거니와 이를 자손들에게 상속할 경우 시가의 30~40%가 세금으로 나간다. 건물을 팔거나 건물 내 각종 골동품을 매매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 것.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경우라면 이를 대대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리버풀에 소재 비틀즈 멤버들의 집들을 소개하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의 웹사이트.
ⓒ .
이런 부동산들을 소유한 집안들은 결국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하는 길을 택하거나 아니면 아주 싼 값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다. 대신 이를 통해 세금 감면 등 여러 혜택들을 받게 되고, 그간 쌓아왔던 집안의 골동품들과 가보들도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된다.

처칠 수상의 저택이나 리버풀에 있는 비틀스의 전 멤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생가도 현재 내셔날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다. 비틀스 멤버들의 생가는 일반인들의 집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비틀스'라는 이름 때문에 덩달아 유명해졌다.

존 레논 생가인 멘딥스의 경우, 2002년 오노 요코가 이를 구입해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의 집(포슬린 가 20번지)의 경우, 폴이 아직 생존해 있지만 이례적으로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경우다. 리버풀에서 이 두 곳은 주요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엔 한 연예뉴스 사이트가 "링고 스타(전 비틀스 드러머)의 생가가 헐릴 위기에 놓여있다"고 보도해 내셔널 트러스트의 관리여부가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링고 스타의 생가는 내셔널 트러스트의 관리 밖 영역이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운동이자 문화

▲ 본 밀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부 자원봉사자 리즈 뮐렌.
ⓒ 김성수
영국인들은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다양하게 참여한다. 단, 영국인들의 이런 참여는 운동적 성격이라기보다 문화향유에 가깝다. 에식스 주 소재 물레방앗간 '본 밀'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주부 자원봉사자 리즈 뮐렌은 "여기서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는 지역을 위하고 나의 여가 생활을 위한 것"이라며 관광객들에게 유적 역사를 알려주고 설명해 주는 일에 만족스러워 했다.

손자 제이콥, 토비와 함께 본밀을 방문한 리즈 뮐렌의 남편 스티브는 "아이들이 기계를 좋아하는데 여기서 직접 수차를 돌려 보게 할 수가 있다"며 "새 것만큼 옛 것과 역사와 전통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만들어져 나온 게 내셔널 트러스트"라고 자랑했다.

관광객을 끌만한 역사유적도 아닌 물레방앗간은 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했다. 2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방앗간 내부의 수차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많은 영국인들이 뮐렌 가족과 같은 생활을 즐긴다. 가족과 함께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는 것과 더불어 내셔널 트러스트 등록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가장 영국적인 여가 생활 중 하나다.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제공하는 1년(또는 평생)회원에 가입해서 역사 유적과 자연 환경을 수시로 즐기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회원권은 1인 당 약 35파운드(한화 7만원), 4인 가족이 경우 약 60파운드(한화 12만원) 정도다. 회원에 가입한 사람들은 무료 및 각종 할인 혜택을 받는다.

내셔널 트러스트의 홍보 책자에 따르면, 현재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 및 기금기부자는 300만 명을 웃돈다. 이 회원등록비가 내셔널 트러스트의 가장 큰 수입원이다.

▲ 에식스 주에 위치한 본 밀. 1800년대 만들어진 물레방앗간이다. 그러나 건물은 토마스 루카스 경이 낚시를 위한 별장으로 1500년대에 만들었다고 한다.
ⓒ 김성수
그렇다고 내셔널 트러스트가 재정적으로 아주 풍족한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 트러스트 소속이었다가 지금은 내셔널 트러스트에 와 있다는 헬렌 버풋은 "내셔널 트러스트의 재정이 더 탄탄해지려면, 새 유적들이나 자연환경들을 받아들여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것들에 더 신경을 쓰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벤트를 늘려야 한다"고 당부한다.

통상 이벤트와 관광객들이 있는 지역에서 역사와 자연을 보존하는 것은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고 알려져 왔다.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는 그와 같은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민간의 운동과 문화가 결합할 경우 환경보호, 역사보존, 관광 레저도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는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공식 홈페이지는 http://www.nationaltrust.org.uk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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