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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약수터가 있는 산뻬드로(San pedro)마을을 나와 다음 여행지로 향하던 일행은 뜻하지 않은 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2차선의 도로 곳곳에 크고 작은 돌들이 널려있어 처음엔 길가 산에 있던 돌들이 떨어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것은 낙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페루 톨레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 농민들이 일부러 길가에 버려놓은 것.

▲ 농민들이 버려놓은 돌로 아수라장이 된 도로
ⓒ 배한수

처음엔 돌들을 피해 서행으로 운전해 나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마을 주민들이 돌을 쌓아 길을 완전히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 큰돌로 길을 막은 채 시위중인 농민들
ⓒ 배한수

페루 친구가 차에서 내려 마을 주민에게 영문을 묻자, 얼마 전 톨레도 대통령이 발표한 축가 세율 인상안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종전엔 축가에서 소 한 마리를 팔 때 11%의 세금을 내야했지만, 톨레도의 세율 인상안 발표로 내야하는 세금이 19%에 이르러 안 그래도 적은 수익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차에서 내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위의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얼마 전 급여 인상을 이유로 공무원들이 집단 파업을 단행했고, 톨레도 대통령은 끝내 봉급을 인상하는데 합의 했다고 한다. 그 후 톨레도 대통령은 공무원 봉급 인상에 대한 금전적 해결책을 농가와 축가의 세율 인상으로 해결하려 세율인상안을 발표했고, 4~5년 소 한 마리를 키워 고기 1kg당 5솔(한화 1600원) 남짓의 작은 돈을 벌어오던 이 마을 사람들은 "소고기 1kg 팔아 5년간 사료비 대기도 힘든데, 대통령은 그것도 모르고 더 목을 조인다"며 시위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톨레도 대통령에 대한 국민지지율은 최근 8~14%로 더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얼마 전 하야한 볼리비아의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의 지지율보다도 낮은 수치라고. 후지모리 대통령 하야 이후, 페루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인디오들의 힘을 업고 당선된 인디오계 톨레도 대통령이지만 현재 페루 국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한 상태이다.

하지만 푸노로 통하는 유일한 길을 막고 벌이는 시위는 곧 중단되고 말았다. 길에서 발목이 묶인 시민과 여행객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게다가 일부에서는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등 사태가 과열됐기 때문이다.

▲ 마을 주민들에게 항의하고 있는 시민들
ⓒ 배한수

결국 시위는 시작한지 30분 만에 돌로 된 바리게이트를 철거하는 것으로 마감됐다. 하지만 이 마을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앞쪽 차창에 톨레도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글귀를 유성 페인트로 적어야만 길을 통과하게 해준 것.

▲ 차창에 "Fuera Toledo"를 적은 채 길을 통과중인 트럭
ⓒ 배한수

따라서 일행이 탄 차도 "Fuera toledo(톨레도 추방해라)!"라는 글을 주민이 페인트로 차창에 칠한 후에야 이 지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차들도 "19%의 세율 인하해라!", "시위는 계속된다" 등의 글귀를 적고나서야 이 지역을 통과했다.

▲ 차창에 반 톨레도 글귀를 적고 있는 주민들
ⓒ 배한수

하지만 근방 4개의 마을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시위를 단행해, 결국 일행은 근처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이른 아침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인근 볼리비아에서도 라파스(Lapas)를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가 과격해져 나라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또한 페루,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현재 남미의 많은 국가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이다.

시위로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이들의 시위를 보며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나라나 지구 반대편 이곳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없는 농민들이 더 이상 정책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웃으며 일 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쿠스코-푸노 여행기는 총 8부로 연재됩니다. 

현재 페루에 체류 중입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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