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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비극 <햄릿>의 유명한 일절이다. 그는 이미 400여 년 전에 죽었지만, 영문학계의 거목으로 작품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나 '썼느냐 안 썼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상황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듯싶다. 이것은 '셰익스피어 저작 논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공식적 기록

▲ 공원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상.
ⓒ 김성수
1564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윌리엄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던 상인이자 장갑제조업자였던 아버지 존의 덕택으로 유복한 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고향의 그래머스쿨(대학진학을 위해 가는 중등학교)까지 교육받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83년에 자신보다 8살 연상이었던 앤 헤서웨이(Anne Hathaway)와 결혼했으며, 이듬해에 딸을, 1585년에 쌍둥이를 얻어 세례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후 약 7년간 셰익스피어가 어디서 뭘 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1592년에 로버트 그린이 "셰익스피어는 런던에서 유명한 극작가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1598년은 셰익스피어가 배우로 데뷔한 해다. 벤 존슨의 <유머를 가진 모든 사람>이란 극 출연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후 셰익스피어는 배우로, 극작가로 명성을 계속 쌓아나갔으며, '체임벌린 경의 사람들'이란 연극단의 극단주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1611년 은퇴할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1616년에 죽을 때까지 평생 약 37개의 희곡과 150여 편의 소네트 등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대영제국 시절엔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란 말이 널리 퍼지기도 했으며, 지금도 "영국의 르네상스는 셰익스피어의 시대다"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는 진짜 대문호였을까?

▲ 셰익스피어 생가.
ⓒ 김성수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죽은 후 약 150년 정도 지나서부터는 그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과 더불어 그에 대한 회의론도 강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고, 상인의 아들이었던 셰익스피어가 진짜 대문호였을까?"란 문제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저작 논쟁(authorship debate)'이다.

언뜻 보기엔 평민 출신으로 위대한 극작가가 된 셰익스피어를 폄하하기 위해 지어낸 소문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사용된 단어의 개수를 세어보면 약 2만개가 넘는데, 1611년에 출간된 킹 제임스 성경이 약 1만개의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거대한 어휘력이라 할 수 있겠다.

영국의 소설가면서 영어연구가이자 방송인인 멜빈 브랙은 "21세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개수도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단어 개수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400여 년 동안 단어의 변천을 감안하더라도, 또한 문학의 특수성과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는 당연히 의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월트 휘트먼(미국 시인), 헨리 제임스(미국 소설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분석 창시자) 같은 인문-문학계의 유명 인사들도 셰익스피어가 그 많은 작품들을 당대에 혼자 다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해 왔다. 셰익스피어의 위대성과 의문점이 동시에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가설과 음모론의 속에는 이런 사정들이 있다.

그럼 과연 누가 썼을까? 다양한 가설들과 음모론

▲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의 웹사이트. 저작 논쟁을 설명하고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가설은 1500년대 후반 영국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혔던 문인 크리스토퍼 말로우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경이 '셰익스피어'란 이름으로 작품들을 출간했다는 설이다. 1593년에 살해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된 말로우가 실제로는 죽지 않고 이태리로 건너가서 이름을 숨긴 채 <베니스의 상인> 등을 집필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일부를 당시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썼다는 가설도 있는데, 이것은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의 얼굴과 셰익스피어 초상화의 얼굴이 비슷하다는데에서 기인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논란의 시작은 "17세기에 살았던 옥스퍼드 백작 에드워드 드 베르 경의 글이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유사하다"란 내용이 1920년대 옥스퍼드 문인들에 의해 발표되면서부터였다.

이후 온갖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미국의 흑인운동가 말콤 X는 영국의 군주 제임스 1세가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했으며, 1984년에 찰튼 오그번 주니어는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었던 건 확실하지만 그가 썼다고 말해지는 작품들은 한 사람에 의해 집필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 뒤에서 내용을 더하고 빼고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공회 대학교의 진영종(영문학, 셰익스피어 전공) 교수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라며 "당시 희곡은 극작가가 내용을 대략 써 놓은 다음에 배우들이 리허설을 하면서 극작가와 함께 완성하는 공동 창작 상황이 많았다, 몇몇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일 것이라고 추측되어 나중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았다"라고 말한다.

▲ 홀리 트리니티 교회 내부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무덤.
ⓒ 김성수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런 의문점들은 그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고향에 있는 생가도 셰익스피어 생전에 확인된 게 아니라 사후에 생가로 추정되었다. 셰익스피어가가 다녔다고 하는 고향의 그래머 스쿨에도 그의 기록은 전혀 없다. 당시 학생들의 기록은 모두 남아있지 않으므로 그가 이 학교에 다녔을 것이라는 강한 추측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아직도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은 그가 쓴 것으로 생각하는 게 옳은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명성과 자취들

▲ 홀리 트리니티 교회 외부 모습.
ⓒ 김성수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이처럼 의문의 여지가 많지만, 사실 이 내용들은 그의 명성을 오히려 더 높여주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가설과 음모론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한 영국인에게 물어봤더니 "오죽하면 이런 가설들이나 음모론들이 나오겠냐?"라고 반문을 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긍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답이다.

이런 영국인들의 자긍심과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그의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이다.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3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각국에서 오는 관광객들로 북적대고 있다. 그의 고향에 직접 와서 '셰익스피어'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 저작 논쟁은 공허한 메아리인 것처럼 보인다.

▲ 셰익스피어가 은퇴한 뒤 죽기 전까지 살았다고 하는 뉴 플레이스 터.
ⓒ 김성수
이곳의 셰익스피어 관련 문화재들은 '영국 셰익스피어 생가 재단'이 통합해서 관리하고 있으며 그가 태어났다고 하는 '셰익스피어 생가(Birthplace)', 런던 생활을 마치고 은퇴해서 죽기 전까지 살았다고 하는 '뉴 플레이스(New Place)' 터, 그의 큰 딸 수재너와 사위인 홀이 살았다고 하는 '홀스 크로프트(Hall's Croft)'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도 유명한데 최근 이 교회는 시급한 보수공사 문제로 모금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론에 보도돼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교회 내부에는 셰익스피어의 세례 및 장례 증서 복사본도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전시되어 있는 셰익스피어의 각종 자취들과 에이번 강변 극장에서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 (Royal Shakespeare Company)의 공연을 보며 자연스레 셰익스피어에 젖어들게 된다. 여러 음모론과 가설에 관계없이 예나 지금이나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잘 나가는 문화상품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http://www.pbs.org/wgbh/pages/frontline/shakespeare/ 에서 더욱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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