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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해방시킨 건 섹스가 아닌 자유에의 열망
- 이성아 소설집 <절정>


ⓒ 이룸
너무나 사랑했던 여인과의 신혼여행에서 반신불수가 된 사내가 있다. 끔찍스런 교통사고. 사내는 성기능까지 상실한다. 병원 침상에서 명태처럼 말라가는 남편. 어쩔 수 없이 멀어져 가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 그 사내와 아내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는 젊은 간병인 여자가 있었으니...

연민과 동정이 폐기 처분된 21세기에 인간 아니,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온 이성아의 근작 소설집 <절정>(이룸)은 참혹하다. 파괴된 꿈과 빼앗긴 열망 그리고, 끝없이 거부되는 인간다워지려는 욕구. 책에 수록된 9편의 단편에서는 웃음보다는 울음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훨씬 큰 그림자로 일렁인다.

특히 표제작이 그렇다. 젊은 아내는 몸과 영혼 모두가 만신창이가 된 남편을 결국 버린다. 그 버려진 남자의 몸을 껴안고 아직 남아있을지 모를 한 점 불씨를 되살리려는 간병인. 햇살 눈부신 날. 병원 화장실에서 이뤄지는 사내의 생애 마지막 섹스는 간절하기에 아름답고, 벼랑 끝에 몰려있기에 서럽다. 그 아름다움과 서러움이 또 다른 '아픈 사람' 간병인에게 와 닿았던 탓일까? 여자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육체적 절정을 맛본다.

소설가 송기원은 "이성아가 필생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성적 조건으로부터의 자유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다. 어쩌면 부자유스럽고 아픈 삶밖에 겪어보지 못한 간병인 여자를 절정에 이르게 한 것은 땀 끈적이는 섹스가 아닌 그토록 바랐던 자유였을지도.

저항을 넘어 화해로 가는 '큰 시인'의 발걸음
- 이성부 신작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 창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너를 보면 눈이 부셔 맞이할 수가 없다/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나는 아무 것도 너보다 먼저 알릴 수 없다/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앞으로도 100년은 인구에 회자될 것이 명약관화한 절창 '봄'과 '전라도' 연작시의 시인 이성부가 63세의 나이에 신작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창비)를 상재했다. 한때 반짝했던 많은 수의 시인들이 일찌감치 시적 에너지를 잃고 조로하는 한국문단 풍토에서 귀하디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시집에서는 젊은 날의 결기와 저항의 목소리가 걷힌 이순(耳順) 중진의 담담하면서도 편안한 시편들을 만날 수 있다. 산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이 시의 재료가 됐다. 그렇다고, 그가 70~80년대 보여준 청년의 기개와 호방담대한 기질이 완전히 거세된 것은 아니다. 한편 한편이 잘 삭힌 전라도 특산 흑산홍어 맛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광주 아니, 한국이 알아주던 '천재 소년문사' 이성부. 고교 시절 등단한 후 46년 동안 8권의 빼어난 시집을 냄으로써 빛나게 쌓아올린 그의 문학적 성채가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이번 시집은 그 기대가 쉬이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증거한다. 기자가 아닌 독자로서 반갑기 그지없다.

한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재출간된 김성동의 <만다라>(청년사)

아, 감히 누가 있어 감탄사 없이 이 소설의 제목을 호명할 수 있을까? 한국 구도소설의 교과서 <만다라>가 재출간 됐다. 1979년 초판 출간 이후 자그마치 2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김성동이 던진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낼 것인가'라는 화두의 현재성은 여전하다.

법운과 지산 그리고, 수관. 길을 찾던 주인공들은 죽거나, 삶에 절망해 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손가락을 태워 바치면서까지 궁극에 이르려 몸부림쳤던 그들의 진정성은 아직도 독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세월은 명작의 향기를 지우지 못했다.

마이클 커닝햄의 <세상 끝의 사랑>(생각의나무)
유교적 도덕률이 지배하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상 많은 곳에서 아직은 꺼내기 힘든 단어인 동성애를 주제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마이클 커닝햄의 힘. '역동성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평가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닌 모양이다.

웬델 베리의 <포트윌리엄의 이발사>(산해)
세상이 변해 가는 속도와 부패의 속도는 비례한다. 누구나 핸드폰과 퍼스널 컴퓨터를 가진 우리 시대는 과연 행복한 것일까? 저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꿈꾸지 않을 자유'를 설파하며 이 질문에 답한다.

유종호·최동호 공저 <시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작가)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오랜 시간 문학강의를 해온 저자들이 '시에 관해 당신이 알고싶은 모든 것'에 친절하게 답한다.

이은봉 시론집 <화두 또는 호기심>(작가)
시인이 쓴 시에 관한 이론 에세이. 인구 4천만을 넘긴 나라에서 시집 초판 2000부가 소화되지 않는 시대.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시인지망생들은 '신의 영역'이라 할 시작(詩作)을 꿈꾼다. 그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책.

절정

이성아 지음, 자음과모음(이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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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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