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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 메일> 24일자의 머리기사와 추가기사
"이 결혼이 축하해야 할 일이냐" - 2월10일자 <더 타임스>
"다이애나의 기억에 대한 모욕이다" - 2월11일자 <데일리 메일>


불멸의 사랑인가, 불륜의 결실인가.

지난 10일, 찰스(57) 왕세자와 그의 연인 카밀라(58)가 오늘 4월10일 결혼할 것이라는 발표를 접한 영국민들의 반발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와 관련 온갖 복잡한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다. 신문, 잡지, 방송은 연일 기사를 쏟아내며 찰스-카밀라 결혼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은 물론, ‘여왕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게 옳은가’까지 논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영국인들은 97년 파리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해왔으며, 그녀의 죽음이 왕실 또는 카밀라와 얽혀있다는 음모론도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다. 찰스 왕세자 재혼 발표는 그동안 제기돼 왔던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으며, 여기에 교회의 수장인 왕과 배우자가 살아있는 이혼녀와의 결혼을 관습적으로 금지해온 영국국교회(성공회)의 문제까지 겹쳐 ‘대형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 찰스-카밀라 결혼과 관련된 BBC 뉴스 인터넷판의 특별면.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에 찬성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한 찬반조사 그래프에는 찬성이 더 많다.
발표 직후, 여왕 부부와 켄터베리 대주교는 결혼에 찬성한 반면 영국 국민들은 반대했다. 상당수의 영국인들은 신분과 책임보다 개인의 사랑을 더 중요시하는 찰스가 영국인들을 ‘위한’ 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찰스 대신 찰스의 아들 윌리엄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 그러나 이 결혼에 세 명이 있었다

1981년 7월 29일.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는 3500여명의 세계 고위층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개최됐다. 전통적 왕실 결혼식으로 거행된 이 결혼은 세계의 이목을 영국 왕실에 집중시켰다.

미모와 사랑스러움을 두루 갖춘 스무살의 다이애나는 결혼과 동시에 모든 영국 국민들의 연인으로 불리웠고, 왕실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익히 알려졌다시피 찰스와 다이애나의 관계는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결혼 전부터 지속돼왔던 찰스와 카밀라의 ‘애매한’ 관계가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찰스는 카밀라와 교제해오다가 별 말 없이 해군에 입대했고, 카밀라는 어정쩡한 찰스 대신 원래 애인이었던 찰스의 친구 앤드류 파커 불스와 73년 결혼했다.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는 이후에도 공공연하게 회자되곤 했는데, 심지어 찰스가 카밀라의 추천으로 어린 다이애나를 왕세자비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다이애나와 찰스는 속과 겉이 다른 결혼생활을 이어가다가 90년대 초반 별거에 들어갔고, 대중들에게도 이들의 불화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다이애나는 이혼 직전인 1995년 한 TV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결혼에 세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북적거렸죠(There were three in the marriage, so it was a bit crowded)"라고 발언하기도 했는데 이 말은 세 사람의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 발언은 지금까지도 영국인들의 마음속에 각인돼 있으며, 다이애나에 대한 연민의 진원지가 되어 왔다.

▲ 이 결혼 발표는 '다이애나에 대한 기억을 모욕하는 것'이란 내용의 <데일리 메일> 11일자 기사. 사진은 찰스로부터 프러포즈 받을 때 받은 반지를 내 보이며 좋아하는 카밀라다.
결혼-이혼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영국왕실, 영국의 정체성

현재 찰스와 카밀라 결혼에 관한 논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남편이 살아있는 이혼녀와 왕(또는 왕위계승자)은 결혼할 수 없다'는 영국국교회의 관습이다.

아이러니컬 하지만 영국국교회 역시 영국 잉글랜드 왕실의 이혼문제 때문에 생겨났다. 1500년대,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신청을 교황에게 냈는데 교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교황권에 반기를 들었다. 헨리 8세는 1534년에 법령을 선포하면서 영국교회를 가톨릭으로부터 이탈시켰고, 스스로 영국국교회의 수장이 됐다. 이후 영국국교회는 유럽 교황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국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어쨌든 위의 관습은 헨리 8세에 의해 정착된 뒤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에드워드 8세(양위 후, 윈저 공작이 됨)가 같은 이유로 왕위를 내놓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 관습은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에 반대를 제기할 수 있는, 그리고 결혼을 하더라도 찰스와 왕위를 계승하는 것에 반대를 제기할 수 있는 ‘최대의’ 이유가 되고 있다.

남녀관계가 지금보다 엄격했던 1930년대 당시,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출신 이혼녀였던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약 1년 만에 왕위를 동생인 조지 6세에게 내놓았다. 조지 6세의 딸이 현재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이고, 그 외손자가 찰스다. 즉 지금 이혼녀 카밀라와 결혼하려는 찰스는 이혼녀 때문에 양위된 왕위를 이어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 인터넷 판은 ‘찰스 왕세자가 왕위와 카밀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내용으로 찬반조사를 벌였는데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58%였다.

▲ '찰스, 카밀라, 영국국교회'라는 제목의 <더 타임즈> 17일자 기사. 박스는 "찰스가 카밀라와 왕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찬반조사 그래프인데 '선택해야 한다'가 더 많다.
그러나 이런 반대는 의견일 뿐이다. <비비시(BBC) 뉴스> 인터넷판 10일자의 한 분석기사에 따르면, 이 결혼을 반대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여왕뿐이다. 여왕이 결혼을 지지하는 이상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 게다가 영국국교회 측도 이 결혼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국 왕실이 결혼식을 강행한다면 문제될 게 없는 상황이다.

찰스와 카밀라, ‘불멸의 사랑’인가 ‘불륜의 결실인가’

찰스와 카밀라의 첫 만남에 대한 일화는 버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 카밀라가 증조 외할머니인 유부녀 앨리스 에드몬스톤과 찰스의 고조외할아버지인 에드워드 7세의 불륜설을 흘리며 찰스에게 먼저 접근했다는 설도 있고, 자유분방하던 찰스가 카밀라에게 반해 맥을 못추었다는 설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상당수의 영국인들과 영국언론들이 이런 찰스 왕세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과는 달리 중립적 입장에서 국민들 다수의 사랑을 받아야하는 왕실에는 부담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 영국의 군주제가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찰스-카밀라의 관계에 반대했던 영국인들은 “왕실이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21세기에는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 것” “유복하지 않은 귀족의 딸로 태어나 찰스와 힘든 결혼생활 및 방황 끝에 비운에 숨진 다이애나를 생각하면 이게 황혼의 로맨스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찰스와 카밀라도 사람이고, 서로 사랑하니까 결혼해야 한다” “찰스가 왕위 계승을 한 뒤 카밀라와 어정쩡한 관계에 있는 게 싫다” “그들의 결혼을 하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등 긍정적 의견도 있지만 이들이 더 이상 영국 왕실을 ‘민간을 능가하는 고귀한 위치’로 보고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을 크게 감안한 듯 왕실은 찰스가 왕위에 오른 뒤에도 카밀라를 ‘왕비(Queen)’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카밀라는 왕의 배우자란 의미의 ‘콘서트 공주(Princess Consort)’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유는 ‘국왕의 배우자’란 뜻의 보통명사 ‘콘서트(consort)’가 대문자 C의 고유명사 ‘콘서트(Consort)’로 쓰여지면 특별해지기 때문이다. ‘콘서트 왕자(Prince Consort)’는 대영제국 시절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앨버트 공에게 붙인 명예로운 호칭으로 영국인들의 자랑이었다.

▲ <가디언> 23일자 기사. 민간방식으로 결혼식을 하면, 여왕은 참석 안 하겠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4월에 거행될 결혼식이 위법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국교회 주관의 왕실결혼식이 아닌, 윈저성에서 가족과 친지만을 하객으로 하는 민간결혼의 형식으로 치러질 이 결혼식에 대해 일부 법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4일자 영국신문들은 민간결혼식이 위법이 아니라는 상원의장 팰코너 경의 해석과 이 결혼식이 민간방식으로 진행되면 참석하지 않겠다는 여왕의 발표 내용을 일제히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특히 <데일리 메일> 24일자는 “여왕의 불참하려는 이유는 카밀라를 좋아하지 않아서다” “불참소식에 카밀라는 자존심이 상했다”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찰스 왕세자의 재혼 발표는 다이애나와의 불화 및 의문사, 영국인들의 상반된 감정, 그리고 영국 왕실의 권위가 더해져 복잡한 형국으로 흐르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로 인해 영국 왕실에 대한 영국인들의 존경심이 97년 다이애나의 죽음 직후에 버금가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떨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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