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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우먼타임스특별취재팀] 우먼타임스는 각계 오피니언 리더 부부들을 인터뷰하는 ‘He & His Partner’(She & Her Partner) 지면을 통해 우리 사회 주류 인사들 뒤에 있는 비공식적 제1참모로서의 남편 혹은 아내의 역할과 관계가 양성평등의식을 확산시키고 건전한 가족문화를 조성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을 맞아 양성평등 도시를 일구고 있는 염홍철 대전광역시장과 이종숙 덕성여대 교수 부부를 초청했습니다.

대전광역시는 전국 최초로 양성평등헌장을 선포하고 연 2회 실천보고회를 통해 이행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시장이 직접 주재하는 실천보고회에는 실·국장들이 모두 참여해 해당되는 정책이 양성평등에 맞게 계획, 전개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2005년 여성계의 큰 과제인 성 주류화 사회(Gender Mainstream)가 대전에서는 이미 활성화되고 있는 것. 본지는 성 주류화 사회를 희망하며 신년특집으로 양성평등도시를 가꾸고 있는 대전광역시 염홍철 시장과 이종숙 덕성여대 교수 부부를 ‘He & His partner’ 코너에 초대했다. 양성평등도시를 대표하는 대전시와 양성평등부부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염 시장과 이 교수 부부를 통해 알고 보면 쉬운 양성평등의 모습을 그려본다.

-양성평등도시를 선언하고 헌장까지 마련했는데….
“양성평등도시는 각종 정책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해 여성과 남성에게 차별 요소가 없도록 하는 성 주류화 도시를 말한다. 헌장은 6개 항목에 20개의 측정 항목을 마련하고, 47개의 측정 지표를 마련해 틀을 만들어 놓았다. 지난 2003년 7월 선언을 한 후 세 차례의 실천보고회를 가졌는데 여성정책 예산이 2003년에 비해 2004년 11.1% 증가했으며 여성 고용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유치한 콜센터를 통해 4524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오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선언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고 판단해 매년 두 차례 점검회의를 갖는다. 점검 항목에는 각종 위원회에 여성 참여비율을 높이고 고용과 임금에서의 평등과, 여성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경제적 가치인정은 물론 양성평등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캠페인도 포함된다. 이 제도는 타 시도에서도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양성평등정책 수립과 집행과정에서 견해 차이가 많고 일부 반발도 예상되는데 어떠한가.
“여성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차이는 있다고 본다. 여성이 적응하기 쉬운 곳에 아무래도 여성인력이 더 가는 것 아니겠나. 여성정책의 싱크뱅크라고 할 수 있는 여성정책위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과욕도 많다. 관광안내부문에 여성만 채용하지 말고 남성도 뽑으라고 하고, 여성축구팀은 지원하지 말라고도 한다. 내 의견과는 다르지만 이럴 때는 회의도 여러 차례 하고 그 회의 자료들을 꾸준히 모아 데이터로 활용한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여성들이 많은 분야나 주 활동 분야의 직위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여성관리자가 5%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이는 양성평등도시답지 않다.
“양성평등도시를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는데도 여성정책평가에서 1등을 하지 못하는 것은 여성국장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인사문제에서 내 입장은 최소한 승진에서 차별은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조건이면 여성을 발탁하지만 획기적인 특진 조치를 쓰지는 않는다. 여성을 특별히 우대하는 것은 조직 전체로 보면 일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여성 입장에서는 미흡한 조치로 보이지만 전체를 조명하고 조직의 사기까지 고려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균형에 맞는다고 본다. 과장급에 여성이 3명뿐이지만 여성업무와 관련된 과장은 물론 회계과장도 여성에게 주어 업무영역을 넓혔다. 다면평가결과가 나오면 여성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고 최소한 불이익은 주지 않으려고 한다. 여성관리자가 지금은 16명으로 전체의 5% 수준이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승진 요건을 구비하는 등 조건이 비슷해지면 우대한다. 파격적인 조치는 없지만 이렇게 하면 앞으로 우리가 목표하는 수치로 상향조정되리라고 믿는다.”

-여성 부시장을 발탁한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부산의 경우 부시장을 3명으로 늘려 이 가운데 한 명을 여성에게 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 제도하에서 시장이 발탁할 수 있는 부시장은 정무부시장인데 여성이 정무부시장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면 기용하겠지만 여성 배려 차원에서 기용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배려 차원에서 여성을 기용하면 그 파급이 크다. 특별한 배려는 하지 않겠지만 능력 있는 여성이 있다면 당연히 발탁한다.”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고 보육을 여성부가 관장, 보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양성평등도시와 함께 영유아보육 수범도시 육성방안도 마련했는데 보육정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양성평등헌장 마지막이 여성의 복지이고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영·유아보육이다. 영·유아보육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때문에 의무교육은 상향할 것이 아니라 하향해 영·유아로 내려와야 한다.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아내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교육효과는 영·유아 시기가 중요하다. 이때의 교육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한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의무교육을 밑으로 내릴 것이다. 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영·유아보육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예산을 해마다 50%씩 늘려나가고 있다. 다른 지방은 기초, 차상위, 차차상위 3단계로 나누어 지원하지만 대전은 차차차상위까지 4단계로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는 5단계까지 상향조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정을 위해 ‘가정양육지원센터(어린이집 같은 놀이공간)’를 만들어 엄마와 아이들이 그 시설을 활용하게 하고 엄마는 보육과 관련된 특강들을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각 구에 1개씩 설립할 계획이며 현재 대흥동과 보육시설로 내준 옛 시장관사 등 2곳은 거의 준비가 됐다.”

-대전의 마지막 관선시장을 역임한 후 민선시장에 당선됐다. 민선과 관선의 차이는 무엇이라 보는가.
“관선시장일 때 시장과 시민과의 관계는 지극히 공적이다. 하지만 민선은 사적인 관계다. 민원을 처리할 때 원칙이나 제도와 법을 강조하면 상당히 싫어한다.”

-시장 임기가 벌써 반은 지나갔는데 재임기간 중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인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두레를 현대에 맞게 편성한 ‘복지만두레’를 출범시킨 것이다. 이는 공적인 복지정책에서 소외되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지역민들을 위해 민관 네트워킹으로 복지를 보충해주는 제도다. 현재 동 단위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상당히 잘 되고 있다. 법적인 기준에 관계없이 어려운 세대 1만 세대를 선정하여 종교, 의료기관, 학교, 사회단체 등과 1대1로 결연을 맺고 수혜를 주도록 했다. 나눔과 섬김의 문화를 확산함과 동시에 경제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찾아 보완해줄 수 있어 다행이다.”

신행정수도에 관해

신행정수도와 관련 염 시장은 “정부가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당초 정책 목표를 유지한다면 후속 조치나 행정특별시 등의 논의를 수용할 수 있지만 정부가 신행정수도 건설 정책을 포기한다면 후속 대책은 논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 결정에 대한 그의 시각은 이렇다. 헌재가 결정한 것은 신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헌법을 성문헌법으로 헌법개정을 하라는 것이다. 즉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지 신행정수도 건설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신행정수도 건설 당초 목표는 유지하고 헌법개정, 국민투표 등 시기선택은 국민의 의견을 들어 5~10년 뒤에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 공동화 문제도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

그는 지역주민들도 신행정수도 이전을 전제로 행정기관이 내려오는 것은 찬성한다고 밝힌다.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당초 목표를 유지하면 충청권의 민심도 수습할 수 있지만 꿩 대신 닭으로의 검토는 반대라고.

신행정수도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앞에 두고 있는 선장답게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처럼 대권 도전의사를 비치는 대신 대전시장에 충실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나라 당적을 갖고 있지만 행정수도에 대한 당의 대응은 잘못됐다고 판단한다. 선거공약이었고 그 공약을 제시한 후보가 당선됐으면 정치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받은 것이고 특별법 만들 때도 압도적으로 통과시켜놓고 지금 와서 반대하는 태도는 잘못됐다는 말을 분명히 했다.

이종숙 교수의 양성평등부부론

염홍철 시장과 이종숙 교수는 전형적인 평등부부이다. 이들 부부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간섭대신 신뢰하고 힘이 되어주는 길을 택했다.

가끔씩 부부싸움도 하지만 출근시간 전에 다툰 문제를 출근 후까지 몰고 가지 않을 정도로 즉시즉시 해결해 앙금을 만들지 않는다. 덕성여대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심리학과 교수로 있는 이 교수는 남편이 시장이기 때문에 학교에 소홀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철저한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대전에서 시장부인으로 참석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지도 않는다. 대전 출신 대학생 서클인 ‘한다발’ 선후배로 만나 지금까지 동반자의 길을 걸은 이 교수는 서울과 대전을 주중에도 몇 번씩 오가느라 KTX의 최대 수혜자라고 밝힐 정도다.”


-염 시장이 가정에서도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인가.
“기본적으로 ‘여자는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지 않은 사람이다. 3년 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결혼 후 임신하고 너무 힘들어 그만두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염 시장 때문이다. 첫아이 낳자마자 대학원 입학원서를 사들고 왔다. 석사학위를 딴 후 그만두려 했는데 중간에 그만두면 안 된다며 유학 가라고 고집해 큰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가족들 모두 반대했는데 워낙 강경한 입장이라 시부모들도 허락했다. 70년대였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 한 것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염 시장은 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이럴 경우 정치를 시작할 때 부인들이 많이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족 입장에서 보면 정치인은 좋지 않은 직업 같다. 그러나 본인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정치학 교수였지만 글 쓰고 강의하는 것에 만족하는 성격이 아니다. 참여하기 좋아하고 실천하고 결과를 보기 원한다. 교수라는 직업은 그렇지 않아 본인으로선 잘 결정한 것이다. 1988년 청와대로 간 뒤부터 가정생활은 거의 없다. 그래도 배려는 많이 한다. 딸이 둘인데 딸들이 아빠에게 전화하는 것보다 아빠가 하는 횟수가 더 많을 정도다. 요즘은 문자메시지를 많이 활용한다.”

-일을 갖고 있어 혹여 힘들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다행히 시장 부인은 대통령 영부인처럼 부부동반 같은 공식행사는 많지 않다. 시장 부인 역할은 사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고 봉사가 많다. 시민들은 시장을 뽑은 거지 시장 부인을 뽑은 건 아니다. 힐러리처럼 대통령 부인에서 대통령 후보로 거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시장 부인이 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살림이면 살림, 직장이면 직장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이 이상적인 동반자 관계이다. 양성평등도 여성이 정신차려야 한다고 본다. 남성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만큼 뺏기니까. 우리가 뺏어야 하는데 피해의식을 주면 안 된다. 자진해서 내놓을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거나, 여자이기 때문에 못해 본 것은 없다. 시장부인이라고 학교에 누를 끼친 적은 없다. 직장인으로서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혼가정이 늘고 있는데 부부생활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가정에서의 신뢰 구축이 사회로도 이어진다. 서로간에 믿음이 깨어진다든지 서로 맡겨지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 소홀히 한다면 가정은 해체위기에 놓인다.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하는데 사회에서 번듯한 일을 한다고 평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어야 한다. 살림을 맡았다면 ‘맡기니까 정말 잘 된다’는 소리를 듣도록 신뢰를 얻어야 한다.”

염시장의 여성정책 발자취

여성과 관련 염 시장에게는 양성평등도시처럼 최초의 기록이 많다. 그가 여성문제, 즉 양성평등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8년 청와대 정무 비서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행정부처의 정무1, 2장관 중 정무2장관이 여성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여성과 관련된 중요한 입법을 실무적으로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이때 여성학 책도 읽고 공부를 한 것이 밑바탕이 됐다고.

관선대전시장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전국 최초로 여성복지기금을 만들었다. 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보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마련한 것이 복지기금으로 지금의 여성정치발전자금의 시초가 됐다. 20억을 목표로 한 기금 가운데 그는 재임 시절 6억원대의 시드머니를 만들었다.

시장에 이어 한국공항공단 이사장이 된 그는 정부 산하기관 중 처음으로(1997년) 20% 여성 채용할당제를 실시했다. 당시 대졸 여성 합격률은 5.4%. 낮은 합격률의 원인을 시험 과목 때문이라고 분석한 그는 시험과목을 바꿀 수는 없어 채용할당제를 도입한 것.

정치에 입문하면서도 여성할당제에 대한 이론 수립에 주력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사례는 염 시장이 즐겨 사용했다. 현재 노동부가 도입한 ‘적극적 조치’ 역시 일찍부터 주장해왔고, 사관학교나 경찰대학에 여성 입학을 허용한 것도 실무자일 때 그가 정책을 입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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