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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앞두고 영국의 집권당인 노동당은 그리 즐겁지 않은 분위기다. 영국 시간으로 지난 수요일 12월 15일 오후. 선천성 시각장애인인 하원의원 데이빗 블렁킷(57)이 2001년부터 수행해 왔던 내무부 장관직을 사임했기 때문. 그동안 블렁킷은 블레어 수상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정가를 주름잡아왔던 거물 중 하나였다.

그는 가난과 장애를 딛고 입지적인 성공을 한 정치가로서 영국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스캔들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는 의원 신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권력의 상층부에서 밀려났으며 정치 인생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노동당은 블렁킷에 대한 여론을 지켜보면서 내년에 있을 총선을 걱정하고 있는 중이다.

블렁킷-킴벌리 스캔들의 시작과 끝

가난과 장애를 이겨내고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의 내무장관이 된 블렁킷은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그의 결혼 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0년 이혼했으며, 그 뒤로 계속 독신으로 지내왔다.

그러던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2001년에 우파잡지 <스펙테이터>의 발행인인 미국 출신 유부녀 킴벌리 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블렁킷은 당시 남편과의 불화로 별거 중이었던 킴벌리와 가까워졌다. 이 둘의 관계는 2002년에 낳은 킴벌리의 아들이 블렁킷의 아들이라는 소문으로까지 확산됐다.

이런 와중에 올 여름 킴벌리 퀸이 자신의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되고, 킴벌리와 블렁킷의 관계가 언론에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 블렁킷의 사임과 관련된 영국 BBC 뉴스 웹사이트의 특별 코너. 사임 당시, 눈물을 흘려 코가 빨개진 그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일방적 절교를 선언한 킴벌리에게 블렁킷은 그녀의 두 살배기 아들 윌리엄과 내년 2월에 태어날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라며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주장,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가기 시작한다. 킴벌리는 아이들에 대한 블렁킷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11월 말에 블렁킷의 '직권남용' 혐의를 폭로하기에 이른다.

직권남용의 내용은 두 사람이 가까웠을 당시 킴벌리가 고용했던 필리핀인 보모(윌리엄의 보모)에게 블렁킷이 혜택을 주었다는 것. 즉, 블렁킷이 비자 연장을 빨리 해주라는 청탁을 자신 관할의 관계기관(Home office)에 넣었다는 것. 블렁킷은 이를 즉시 부인하고 특별조사팀을 만들 것을 지시했으며 본인도 그동안 조사에 협조해 왔다.

그러던 중, 14일 블렁킷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보고를 특별조사팀으로부터 받게 된다. 자신의 비서가 "부탁은 아니지만 보모의 비자를 약간 빨리 발급해 줬으면 좋겠다(no favours but slightly quicker)"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관계기관에 보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유모는 몇 개월이 걸려야만 받을 수 있는 영주 비자를 단 몇 주만에 받은 상태였다.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블렁킷은 "비서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겠다" "내 정직성 문제가 내각에 피해를 입혔다"고 말하며, 하루만에 블레어 수상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는 15일 오후에 수리되었으며, 그의 자리는 전 교육부 장관 찰스 클라크가 이어 받았다. 현재 블렁킷은 쉐필드의 자택에서 조용히 칩거하고 있는 중이다.

블렁킷은 누구인가

1947년에 셰필드시에서 출생한 블렁킷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전혀 보지 못한 1급 시각장애인이다. 유년 시절에 그의 아버지가 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후, 집안의 경제적 사정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블렁킷은 시각장애와 가난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장애인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에 지역 정치계에 입문한다.

22살에 셰필드의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된 블렁킷은 7년 동안 시의회에서 온건 진보주의자로 명성을 얻는다. 1980년에 노동당에 입당한 그는 1987년에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당 대변인이라는 중책까지 맡게 된다. 그리고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등과 함께 당내 '신노동당(New Labour)'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다.

1997년에 노동당이 집권당이 되면서, 영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장관이라는 명성이 그의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게 된다. 이미 '셰도 캐비닛'(제1야당의 예비 내각)에서 보건부 장관 업무와 교육부 장관 업무를 맡았던 그는 새 내각의 교육부장관이 된다.

▲ 1999년도 교육부 장관이었을 때의 블렁킷.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블레어와 함게 걷고 있다
원래 영국의 '신노동당주의(뉴 레이버리즘)'은 노조 중심의 전통적 사회주의 정당 노선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적 가치관들까지 긍정하는 제3의 길을 표방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신노동당의 사회정의는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해 개인 각자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처럼 교육 정책은 신노동당주의의 중요한 이슈였으며 블렁킷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교육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해서 대중으로부터 찬사를 받는다(그러나 그는 기존의 대학 무상 교육제를 폐지하고 등록금을 학생들에게 부과하는 정책을 입안해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도 했다. 물론 이는 대학에 제공되는 지원금을 다른 분야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노동당이 2001년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블렁킷은 영국 내각의 요직 중 하나인 내무부 장관직을 맡게 된다. 그는 이민과 정치적 망명 문제에 대해 강력한 법 적용을 실시하였으며 사회 법질서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강경 스타일을 고수했다. 특히 사임 직전까지 그가 추진했던 사안은 영국 내 주민등록증(National Identity Card) 제도의 도입이었다.

이런 그의 강경책에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상당수 영국인들은 그의 단호한 사회 법질서 유지 정책에 동조했다. 어쩌면 이것은 시각장애인 정치인 블렁킷에 대한 호감뿐만 아니라 그가 시를 쓰는 '순정의 남자'라는 데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1995년에 발간된 그의 자서전 <온 클리어 데이(On clear day)>에는 자작시가 들어 있었다.

영국인들 "내무장관은 사임해도 정치생명은 지속돼야"

이번 스캔들과 관련하여 영국의 언론들은 "'순정의 남자 블렁킷'이 킴벌리 퀸이라는 요부에게 당한 것"이라고 동정하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은 킴벌리의 지난 사생활을 집요하게 파헤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킴벌리가 남편과 별거하고 블렁킷과 가까웠을 당시 블렁킷 외의 다른 남자와도 가깝게 지냈다는 소식이 19일 오후 TV 뉴스에 등장하기까지 했다.

사임 이전부터 블렁킷의 가장 절친한 정치적 동료였던 블레어 수상은 "정치인에게도 개인 사생활은 있는 법"이라며 블렁킷을 두둔했으며, 그의 사표를 처리하면서 많은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레어는 "지난 몇 주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일을 처리한 당신의 방식이 당신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블렁킷을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영국의 언론들과 일반인들은 이라크 전 이후로 계속 진행되어 오던 블렁킷의 영국 내 테러리스트 색출 작업의 인권 침해적 요소에 그리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블렁킷에 대해 실망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하고 있는 상태이다.

사임 직후 각 방송사들과 언론사들은 블렁킷의 행동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내무장관 블렁킷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이지만 정치인 블렁킷이 정계에서 아주 사라질 위기라는 면에서는 당혹해 했다.

또한 블렁킷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이제 TV에서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데에는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일간지 <가디언>은 21일자 머리기사로 "상당수의 영국인들이 블렁킷의 복귀를 희망한다"는 신문사 자체 설문 조사 결과를 기사로 내보냈다.

▲ 2004년 12월 21일자 <가디언> 지의 머릿기사, "블렁킷을 데려오라고 대중은 말한다"
블렁킷 스캔들이 처음 터진 8월 중순부터 12월 중순 사임에 이르기까지 4개월 동안 드라마처럼 펼쳐진 한 정치인의 스캔들은 가십 차원이 아니라 정치인의 사생활, 도덕성, 책임이라는 화두를 영국사회에 던진 듯하다.

이번 스캔들에 대해 한 영국인은 "킴벌리에 의해 블렁킷의 정치 생명에만 금이 간 게 아니라 블레어 내각과 노동당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 문제와 그 외 여러 국내 사정으로 인해 노동당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영국인들이 점차 늘어나는 현 시점에서 블렁킷 스캔들은 노동당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사건임이 분명하다.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 21일자에 따르면, 이번 조사를 전체적으로 총괄했던 앨런 버드 경이 "유모의 비자 발부가 정상보다 빨리 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전 내무장관의 직권남용인지는 불분명하다"라는 다소 애매한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결국 블렁킷 스캔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 영국의 논란거리가 될 것 같다.

그는 내무장관으로서 직권남용을 했던 걸까? 아니면, 아버지와 애인으로서 순정남용(?)을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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