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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에 사망한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다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다이애나비가 생전에 촬영한 비디오테이프에서 자신의 연인이었던 왕실경호원 배리 매너키와 관련해 “함께 도망가고 싶었다” “그는 피살됐다”고 발언한 것이 최근 미국 NBC를 통해 공개된 것.

다이애나의 고향인 영국은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물론, 다이애나가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왕세자비이기도 하지만, 왕실에 대한 영국인들의 각별한 관심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이애나 문제가 아니더라도 영국 사회는 왕실 문제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 왕실은 영국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국인들은 왜 군주제를 버리지 않을까. 영국인들은 왜 "신이여 우리 여왕을 보호하소서 (God save the Queen)"라는 국가(國歌)를 부르는 걸까.

일반인, 귀족 그리고 왕족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의원제가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다. 반면 일반인, 귀족, 왕족이란 신분제도를 계속 존속시키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부유한 일반인들이 있는 반면 가난한 귀족들도 있으며, 세습작위가 존재하는 한편 군주는 국가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비세습 작위를 하사하고 있다.

▲ 런던 버킹검 궁전의 외부 전경
ⓒ 김성수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입헌군주제하의 영국 군주는 영국 전체를 단합시키는 일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상징적인 존재라는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인들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받기 위해, 쉽게 말해 체통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꽤 많다.

영국 군주제의 과거와 현재

엄밀하게 말하면, 영국 군주제의 시작은 16세기 초부터이다. 영국의 군주제가 불과 300여년 역사 밖에 안 되느냐는 반문은 영국과 잉글랜드를 동일한 나라로 간주하는 데에서 생겨난 생각이다. 영국(United Kingdom)은 일찌감치 웨일즈를 병합하고 있었던 잉글랜드가 1707년에 북부의 스코틀랜드와 연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1800년대 초, 영국은 주변의 이웃 섬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만들어 현대적 의미의 영국이란 나라를 구성한다. 1922년, 아일랜드의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아일랜드의 독립을 허가한 이후, 현재 영국이란 나라의 정식 국호는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영국의 군주제 자체는 잉글랜드가 영국 건국의 주체였다는 면에서 잉글랜드 군주제의 역사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절대왕정은 예전에 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 것처럼 대헌장(1215), 시민전쟁(1642-1657), 크롬웰의 공화정(1649-1653) 등등을 통해 점점 약화되었으며, 이후 영국은 입헌군주제라는 제도를 발전시켜 나간다.

특히 19세기 말부터는 군주의 정치적 영향력이 최소화되고, 결정권은 의회에 완전히 위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군주는 현재에도 여전히 국가를 대표하고 있으며, 행정, 사법, 입법부의 수반인 동시에, 성공회(영국 국교회)와 54개 영연방 회원국의 수장이며 군의 최고 통수권자이다. 더욱이 호주나 캐나다 같은 16개 영연방 국가의 국가 원수이기도 하다.

영국의 군주는 지금도 의회의 개회와 폐회를 주관하며, 영국의 국가수반으로서 모든 외교 행사를 주관한다. 그리고 영국의 모든 공무원들, 법관들, 판사들, 군인들, 그리고 성공회의 주교들은 군주에게 충성 서약을 맹세해야만 한다. 귀족들은 군주와 왕실을 도와 국가의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모병제인 영국 사회에서 왕족들(또는 일부 귀족들 포함)은 대부분 군인으로 상당기간 복무한다. 또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데다가 정부로부터 일부 보조(국민의 세금)도 받기 때문에 대부분 평생동안 자선사업에 관계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신분제와도 비슷한 이런 사회체제가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놀라운 점은 영국인들이 신분제 사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회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왕실과 군주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회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영국의 보통 사람들은 연예인들처럼 TV나 신문, 잡지 등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여왕이나 왕자들을 보면서 왕실과 군주제 전통에 친숙함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영국인들의 영원한 연인 혹은 가십, 다이애나

영국 왕실은 끊임없이 여러 소문과 문젯거리를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지난 97년, 애인 도디 알-파예드와 함께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왕실에 끊임없이 짐이 되는 존재다.

96년 이혼(92년부터 별거) 직후, 전 남편인 찰스 왕세자와는 물론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과 관계가 좋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했던 다이애나비의 사인은 이미 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안개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가장 유력한 '설'은 다이애나가 카멜라 파커-불스라는 찰스의 애인과 왕실의 자존심을 둘러싼 암투 속에서 왕실과 정보국의 음모로 피살된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찰스와 별거 중, 다이아나의 낙태 가능성을 1면 머릿기사으로 뽑은 11월 28일자 타블로이드판 신문(우리나라의 스포츠 신문과 비슷) 'The Mail'
영국의 매체들은 다이애나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1년에도 몇 번씩 방송사별로 돌아가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하는가 하면,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계속 세부사항들을 발굴해서 1면 머리기사로 올리곤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반 가정에 다이애나 사진이 걸려있는가 하면, 상점에선 기념품도 판매되고 있다.

지난 달 말에는 다이애나가 찰스와 별거 중에 낙태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는 기사가 신문 가판대를 장식하더니, 이어서 파리 교통사고 당시 사고차량을 몰았던 운전사가 해외정보국(MI6)의 첩보원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런 와중에 다이애나가 보디가드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내용이 담긴 인터뷰는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죽은 자를 되살리려는 노력에 '인간 다이애나'보다는 그녀를 둘러싼 가십거리가 주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찌됐든 영국인들은 다이애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자선사업에 유달리 열중했었던 다이애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동정하고 추모하는 것일까. 아니면 심심풀이 가십거리로 삼기에 적당해서 그러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영국이 자랑하는 소설 속의 명탐정 셜록 홈즈처럼 다이애나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끝까지 규명해 내고 싶어서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영국인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여전히 많은 영국인들은 이 사안과 무관하게 혹은 이 사안으로 인해 왕실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과연 진실이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블레어 수상의 언급처럼 다이애나는 '영국민 모두의 다이애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군주제를 버리지 못하는 속사정은?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아있는 왕실과 군주제에 대한 영국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왕실과 군주제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영국의 소수 공화주의자들은 군주제가 비민주적이며 유지 비용이 비싸고 특권적이며 계층 심화를 야기하는 시대착오적 제도라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당시 찰스와 다이애나에 대한 문제들로 왕실은 도덕성에 상당한 흠집이 났고,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영국인들은 왕실과 군주제에 대해 결코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2002년 여왕의 즉위 50주년 기념식(Golden Jubilee)을 기점으로 해서 왕실에 대한 따가운 눈총들은 어느 정도 약화되었다.

현재 78세인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아직도 정정하게 군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56세인 찰스는 카멜라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편에선 찰스 대신 그의 큰 아들인 윌리엄에게 바로 왕위를 이어 받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 1952년 즉위한 후, 52년째 영국의 군주로 있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뒤는 부군인 에딘버러 공작 필립 공
ⓒ 김성수
그렇지만,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국가 자존심에 유달리 애착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군주제 폐기에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심지어 만일 영국에 대통령 제도가 생기게 된다면 달로 이민을 가겠다는 영국인도 있을 정도이다. 몇 백년간 조금씩 발전시켜온 입헌군주제와 의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와 내각제라는 영국의 전통이 방송 매체 및 교육 등과 맞물려 영국의 대중들과 사회 문화 전반에 퍼져있는 것이다.

많은 영국인들은 정치인들을 믿기보다는 왕실을 믿는 편이 나으며, 영국의 이익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정치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중립적인 왕실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과거 대영제국 시절 세계를 제패했던 것에 대한 향수와 영국과 예전 식민지 국가들의 자발적 모임인 영연방의 정신적 지주라는 군주의 존재에 대해 자부심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 가운데 얼마 전, 여왕의 행차 구경길에 만난 한 영국인이 전하는 '왕실'과 '군주제'에 대한 의미는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세금을 많이 내면서까지 군주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토니 블레어가 수상이 아닌 '대통령'으로 영국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영국인들, 나아가 전 세계에 무한한 가십거리를 제공하고 나라를 위해 엄청난 관광소득을 만들어 내는 왕실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윈저 성. 현재도 왕실의 별장처럼 사용되고 있다
ⓒ 김성수
즉, 영국인들은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족을 왕실을 통해 위안받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영국의 영화를 기억하게 해주는 '군주제'가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돈이 되는 사업'이기도 하다는 것.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현재 영국의 군주 가문인 윈저 왕가가 연간 사용하는 비용은 3000만 파운드 이상이며, 왕가가 통틀어 만들어 내는 연간 소득은 이 비용의 몇 배가 넘는다고 한다. 연예인화된 왕실과 영국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군주제가 관광소득과 직결되는 탓에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영국인들에 있어서 '왕실'과 '군주제'는 세계속에서 그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또 세계의 이목을 영국으로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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