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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향386' 등 젊은 우파가 집결한 '자유주의연대'는 지난 24일 은행회관에서 공식 출범했다.
ⓒ 권우성

"운동권들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자본가만큼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어디 있나."

소위 '수구꼴통'의 우익집회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다. 지난 24일 자유주의연대 창립 기념토론회에 참석한 한 386 운동권출신이 내뱉은 '자본가 찬양가'다. 그는 범청학련 부의장과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 등을 지낸 'NL(민족해방) 주사파'출신이었다.

지난 4·15 총선에서 전대협 출신이 12명이나 당선되면서 운동권 386은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요즘 또다른 부류의 운동권 386이 뜨고 있다. 자유주의연대로 집결한 이들은 <조선>과 <동아> 등 보수언론의 지원을 받으면서 현재 뉴라이트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전향 386'들로, 대다수가 과거 NL 주사파 출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홍진표·한기홍, "김정일 정권 타도" 기치 건 <시대정신> 창간멤버

▲ 홍진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오마이뉴스>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자유주의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향 386'은 신지호·이동호·최홍재·최희섭·한기홍·허현준·홍진표 등으로 확인됐다. 이중 PD(민중민주) 계열인 신지호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80년대 NL 주사파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먼저 홍진표(42)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 홍 실장은 한때 국보법(2번)과 집시법(1번) 위반으로 3번이나 투옥된 운동권이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전남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홍 실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으로 입학했다가 이듬해 정치학과 83학번으로 다시 입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홍 실장은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남한 주사파의 대부로 잘 알려진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과 함께 서울대의 구국학생연맹(남한 학생운동사상 최초의 비합법 주사파 조직)에서 활동했다. 그는 당시 김영환 위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홍 실장은 이후 전민련(전국연합의 전신) 통일분과 간사와 한겨레사회연구소 연구원,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국장 등을 지내며 10여년 동안 통일운동에 전념했다. 그는 현재 젊은 우파의 사상지 역할을 해오고 있는 <시대정신>의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홍 실장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현 정권을 '수구좌파'로 규정한 뒤 "현 정권은 북한인권문제는 외면하고 김정일 정권 유지에 목을 걸고 있다"며 "정상적인 좌파라면 지금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홍 실장과 함께 <시대정신>를 창간한 한기홍(43)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노동운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한 대표는 대학 3학년 때 중퇴한 뒤 인천의 작은 공장을 전전했다. 인쇄노조와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각각 3년씩 일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이후 94년부터 97년까지 철도청 하급 기능직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지속했다. 하지만 90년대 말 사상전향한 그는 '푸른사람들'에서 활동했다. 푸른사람들이란 80년대 NL 주사파로 활동했던 운동권들의 친목·학습모임이었다. 그는 1기(구해우)와 2기(김영환)에 이어 3기 회장을 맡았다.

한 대표는 99년 12월 "2000만 북한민중을 구출하기 위해 김정일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를 계기로 '전향 386'들은 <시대정신>과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과거 전대협은 폭력혁명세력... 민주화운동세력이란 용어 쓰지 말아야"

▲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홍재(37)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역시 <시대정신> 편집위원이다. 최 위원은 고려대 신방과 87학번으로 91년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5기 조국통일위원회(조통위) 대행을 지냈다.

최 위원은 94년 한총련 조통위원장을 지냈으며 그 이후 97년까지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에서 일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98년부터 2000년까지 민화협 연수기획부장을 지냈으며 열린사회시민연합의 은평지부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했다.

최 위원은 스스로 "골수 주사파였다"며 "98년 북한 기아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와 함께 전대협에서 활동했던 한 386 인사는 "그는 매우 성실했고 열정적인 동료였다"고 회고하면서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전대협 5기와 6기 중앙위가 이월식을 한양대에서 했다. 교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승용차가 길가에 죽 늘어서 있었는데 홍재가 백미러를 다 때려 부시더라.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자본가는 다 때려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조국통일투쟁과 관련해서도 강경발언을 했다."

최 위원은 90년대 후반 사상적 변화를 겪으면서 젊은 우파의 집결지인 <시대정신> 그룹에 합류해 현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민주통일센터 사무국장도 지냈다.

최 위원은 자유주의연대 창립기념식 토론회(24일)에서 '잃어버린 세대 386(?)-386에 대한 성찰적 회고'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80년대 386'에 대해 "좌경도 용공도 아닌 혁명적 사회주의자"였으며 "소련식 사회주의국가를 만들거나 북한식 김일성주의 국가를 세우려 했던 강력한 이념세대였다"고 규정했다.

최 위원은 '정치권 386'에 대해 "히틀러의 게르만주의보다 더욱 파괴적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시대착오적 담론에 매몰되어 있다"며 "한국 386은 김정일과 운명공동체"라고 주장했다.

▲ 이동호 한반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동호 한반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냈다. 그는 이동복 전 의원이 상임대표로 있는 '북한민주화포럼' 간사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1일 북한민주화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학교 때 조국통일그룹의 지도적 위치에 서서 잘못된 사상에 입각해 살았다"고 '고백'했다.

"애국운동세력은 좌파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나처럼 친북주사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친북주사파에 대한 실질적인 공격에 나서야 한다. 과거 우리(전대협)들은 폭력혁명세력이었다. 더이상 민주화운동세력이라는 말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한의 학생운동과 좌파운동을 지도하는 세력은 김정일정권이다.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으로 일할 때 한민전 투쟁지침과 북한의 혁명관을 단파라디오로 듣고 그 내용을 각 대학의 토론자료로 내려보냈다. 애국운동진영은 남한의 좌파를 성장시킨 배후(김정일)를 찾아 집중 공격해야 한다."

유일한 PD계열 신지호... 90년대 초 "더 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선언

또 전북대 88학번인 허현준 민주통일센터 연구원(36)은 1994년 전북대 총학생회장과 전북총련 의장을 지냈다. 범청학련 남측본부 부의장로 활동하면서 '남·북·해외 공동연석회의'를 성사시켰던 그는 범청학련사건과 서울대 범민족대회사건으로 두차례 구속됐다. 특히 그는 1996년 한총련 연세대 사건 때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2년간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허 연구원은 98년 (주)다우스마트라는 정보통신회사를 설립하고 2003년 4월에는 인터넷 생선회 쇼핑몰(피시팔팔)을 열면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통일운동과 장애인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03년 민화협과 통일맞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탈북자동지회 등에 활어횟감을 무료로 배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허현준 민주통일센터 연구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허 연구원이 총학생회장으로 있던 전북대는 90년대 중후반 이후 새로운 학생운동의 중심지였다. 즉 NL그룹 주류에서 분화한 '사람사랑(사사)계열'의 근거지였던 것. 이들은 '푸른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대부분의 전북지역 총학생회를 장악했다. 심지어 총학생회 사무실에 '김정일 정권 타도'라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로 '북한타도론' 혹은 '북한붕괴론'에 집착했다.

허 연구원은 자유주의연대 창립기념 토론회에서 "한총련 중앙간부들은 밤에는 김일성 회고록을 읽고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비디오를 보면서 탄복하고 박수를 쳤다"며 "386의 이념적 토대는 북한정권의 붕괴와 함께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희섭(40) 열린사회시민연합(시민연합) 동대문지부장은 경희대 사학과 84학번. 그는 5기 전대협에서 조통위 정책위원을 지냈으면 이후 전국연합에서 활동했다.

시민연합은 <시대정신>과 연계된 박홍순(87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숭규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시민연합은 서울민통련과 민주쟁취국본 서울지부가 각각 시민단체로 전화된 서울민주시민연합과 서울겨레사랑지역운동연합이 합쳐져 1998년 창립한 단체다. 시민연합은 창립 초기부터 '북한실상과 탈북자 실태', '북한현실과 통일운동의 방향'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자유주의연대에 소속된 '전향 386'들 중 거의 유일한 PD계열인 신지호(42) 대표는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82학번)를 졸업했다. 신 대표는 노회찬·조승수 의원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추진위 울산 책임자였다.

신 대표는 90년대 초반 '고백논쟁'을 일으키며 운동진영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진보정당추진위에서 활동하던 그는 잡지에 '고백' 등의 글을 통해 운동권을 공개 비판하며 사상전향을 선언했다.

신 대표는 92년 8월호 <길을 찾는 사람들>에 기고한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에서 "사회주의의 핵심이 사적 소유의 폐지에 있다면 장구한 역사발전이 있는 후라면 몰라도 앞으로 상당기간은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그것을 신봉하지도 행동에 옮길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당시 기고글의 편집자주에는 "지난 수년간 지하노동운동을 해오면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추진해왔다는 필자가 맑스레닌주의자에게 묻고 있다"고 적혀 있어 그의 운동경력을 짐작케 한다. 이후 그는 "운동권은 이제 경실련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자신의 충고에 따라 경실련에 들어가 정책파트에서 활동하며 서경석 목사를 보좌했다.

신 대표는 경실련 활동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팀 초빙연구위원을 지냈다. 현재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신 대표는 최근 "현 정권의 참여민주주의는 80년대 운동권이 주창했던 민중민주주의의 노무현 버전"이라며 "지배계급 교체, 기존질서 해체 등의 발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변종인 민중민주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노무현 정부를 공격해왔다.

▲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왼쪽)과 지난 92년 8월호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에 실린 신 대표의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 기고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대협 출신들의 반응 "극단적 단절... 정치세력화를 위한 이미지화작업"

이들에 대한 전대협출신 386인사들은 대체로 "이해할 수 없다", 또는 "슬프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성원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사무처장은 이들의 변신을 "극단적 단절"이라고 표현하면서 "극우와 극좌는 통한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전문환 전대협 동우회장은 "우익인사가 후원하고 우익매체가 띄워주고 있는 자유주의연대의 출범은 우파의 위기의식에 기반한다"며 "하지만 이들의 고백에는 무게나 비전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전 회장은 "이들은 정치세력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재의 활동은 결국 정치권 진출을 위한 이미지화작업"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지역기반 등 하부조직력이 없어 영향력 있는 조직으로 등장하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향 386'의 사상적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김영환 위원의 과거 동지였던 A씨는 "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했냐고 그들에게 따져야 하는데 도리어 그들이 우리를 욕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환이나 홍진표는 당시 학생운동권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이들은 우리한테 공장에 들어가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들은 혁명 지도자기 때문이란다. 이들은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다. 이들은 그동안 운동권에서 나름의 지위를 누려왔다. 이것은 당시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던 많은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자신들이 사상적 지도자인 것처럼 행세하면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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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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