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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지났습니다. 이맘 때가 되면 평소에 잘 안 해 먹는 음식이 생각납니다. 전에는 아내를 대신해서 음식을 만들었는데 요즘은 잘 안 만듭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요? 아이들도 내가 만든 음식을 더 좋아했는데….

내가 주로 만드는 음식은 감자탕, 부대찌개, 김치볶음밥, 생선 매운탕, 칼국수, 수제비, 콩나물밥이었습니다. 아내와 결혼해서 10년 넘도록 김치는 주로 내가 담갔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누가 맛있게 먹어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그 행위 자체가 즐겁습니다.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게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20년 전 아내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신혼집에서 아내가 차린 밥상을 처음으로 대하는데 황홀했습니다.

그러나 감사기도를 드리고 수저를 들고 음식을 입에 갖다 대자 실망이었습니다. 너무 싱거워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회사를 다니고 있던 때였지요.

▲ 칼국수는 반죽이 제일 중요하다. 조금 되직한 것이 좋다.
ⓒ 박철
요리 학원에도 다녔다고 해서 음식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번도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고, 변변한 음식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풋내기 새댁이었습니다.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신부에게 화를 낼 수는 없어 "조금 싱거운데… 조금 짠 것 같은데…"하고 타박을 했지요. 나중에는 아내가 해 준 음식이 맞지 않아 치열하게 다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기에 기껏해야 저녁 한 끼 얻어먹는 것인데 아내가 차려준 밥상은 번번이 너무 싱겁거나 짜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내 잔소리가 계속되자 아내는 음식에 전혀 간을 안 하고 밥상 위에 소금을 따로 놔두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때부터 내가 음식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더러 처갓집에서 반찬을 얻어다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내가 저녁상을 차렸지요.

아내의 평에 따르면 내 음식솜씨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그런 칭찬에 고무되어 나의 촉각은 언제나 음식 만드는 일에 가 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눈과 혀끝으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아두고, 심지어는 조리법에 대해서도 주방장에게 물어보고 수첩에 메모를 해, 집에 와서 똑같이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음식 만드는 것은 내 차지였습니다. 그 때마다 난 음식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10여 년 전, 어느 치과의사가 의사생활을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에 식당을 차렸는데 그 분은 의사생활보다 식당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적성에 맞고 즐겁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목회를 그만 두면 작은 식당이나 하나 차려볼까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단히 애착이 갔습니다.

아내도 늙었는지 요즘 들어 밥하는 걸 귀찮아하고 부쩍 외식하자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내와 결혼해서 20년을 함께 살면서 아내의 음식 솜씨도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아내는 주로 찌개 종류를 잘 만듭니다. 요즘은 가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농담을 던집니다.

"우리 교회 앞에 김치찌개 식당 하나 차립시다. 요즘 경제도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많으니 밥값도 적게 받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아내는 지금도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외식을 좋아합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점심을 나가서 먹자고 졸라댑니다. 내가 외식할 돈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생활비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직도 아내에게는 처녀시절의 치기가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 칼국수는 잘 익은 김치와 먹는 것이 제격이다.
ⓒ 박철
오늘 모처럼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경상도식(?) 칼국수'입니다. 내가 그냥 붙인 이름입니다. 우리 장모님께 배운 것입니다. 장모님은 안동 권씨인데 음식솜씨가 정말 뛰어 나십니다. 지금도 장모님이 해주시는 음식은 정말 좋아합니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처갓집에서 처음으로 먹어 본 음식이 칼국수와 닭개장입니다. 둘 다 닭이 들어가는 음식이고, 요즘같이 날씨가 쌀쌀할 때 먹기 좋은 음식이지요. 만드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경상도식 칼국수'는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넣는 것이 특징입니다.

먼저 국수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생콩가루를 적당량 혼합하여 물을 붓고 반죽을 합니다. 반죽은 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반죽이 다 되면 밀대로 반죽을 넓게 펴서 국수를 만듭니다. 이게 복잡하다면 국수틀을 이용해서 만들어도 됩니다.

국수가 완성되면 그 다음 육수를 만듭니다. 찬물에 닭 한 마리를 넣고 삶습니다. 이때 처음 삶은 국물은 버리고 다시 푹 삶습니다. 잘 삶은 닭을 꺼내 손으로 살코기를 발라냅니다. 닭 살코기에 마늘, 생강, 고춧가루,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춥니다.

국수를 닭 삶은 국물에 넣고 삶는데 면발이 풀어지지 않도록 적당하게 삶아야 합니다. 이때 호박이나 감자 썬 것을 넣어주면 더 좋습니다.

국수를 다 삶으면 그릇에 다 익은 면발을 담고 그 위에 닭고기를 고명으로 얹습니다. 그러면 맛있는 경상도식 칼국수가 됩니다. 가족들끼리 서로 역할분담을 해서 만들면 더 재밌습니다.

예전에는 칼국수를 많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냉장고에는 언제나 생콩가루를 넣어두었습니다. 콩가루를 밀가루와 혼합하는 이유는 밀가루로 만든 것보다 더 구수하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하던 시절에는 일명 '과수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넣는 것도 같고 만드는 방법도 비슷한데 정선에서 먹을 때는 다른 고명을 넣지 않고 고추장을 풀어 간을 맞춘 다음 먹었습니다. 텁텁한 게 무슨 맛이 있을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의외로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습니다. 사시사철 많이 해먹는 음식이지요.

▲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중에서
ⓒ 무비스트 컴
내가 경상도식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 국수틀을 찾아내고 재료를 준비하자 아내는 친정어머니가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올해 연세가 팔십이신데 혼자 지내십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우리는 그리운 사람도, 희미하지만 소중했던 옛 추억도 반추하게 됩니다.

10년 전 아내와 함께 봤던 중국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다 성장한 딸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하나 둘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지요. 이처럼 음식에는 삶의 고단한 흔적과 애환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해가 막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 온 곳에서 지척에 있는 부두에서는 "뿌웅" 하는 뱃고동 소리가 수시로 들려옵니다. 그리움을 담은 소리같이 들려옵니다.

아내도 이 해가 지나면 곧 지천명의 나이가 됩니다. 붉게 지는 저녁노을처럼 아내가 아름답고 곱게 늙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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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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