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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었더니 애들이 신났다. 영학이가 내일도 사달란다. 큰일 났네.
ⓒ 느릿느릿 박철
지금 시골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시쳇말로 뒷간 갈 시간도 없다. 사람들 얼굴도 햇볕에 그을려 새까맣다. 한낮에는 초여름 날씨답게 무덥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더우면 찾는 것이 얼음과자이다.

막대기가 달린 건 하드라 하고, 고깔모양으로 생겨서 종이 껍데기를 벗겨 먹어야 하는 건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별별 종류의 얼음과자가 있다. 이름도 별나다. 비닐봉지에 담긴 얼음 끝을 칼로 자르고 먹는 게 있는데 칼이 없어서 이로 자르다가 앞니가 부러진 사람도 있다.

▲ 우리집 병아리 은빈이. 아빠가 한입만 달래도 안준다. 또 사주나 봐라.
ⓒ 느릿느릿 박철
삼각모양으로 된 얼음과자는 반을 분질러서 애인하고 나눠먹는다. 작년에 우리 집 딸 은빈이가 아이스크림이라고 사왔는데 생긴 모양이 콘돔 비슷하게 생겨 놀란 적이 있었다. 떡 속에 얼음을 집어넣은 것도 있다. 얼음과자회사가 돈 벌려고 별 궁리를 다 하는 모양이다.

어제 오후 교동 섬에서 목회하는 12교회 목사들이 우리교회 운동장에서 얼음과자 내기 족구를 했다. 진 팀에서 여러 종류의 얼음과자를 사왔는데 목사들 취향이 다 다르다. 다 큰 어른들이 얼음과자를 쪽쪽 빨아 먹는 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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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학이가 지현이를 좋아하는 것일까? 표정이 굿이다.
ⓒ 느릿느릿 박철
얼음과자와 얽힌 사연이 아련하다. 유년시절 나는 숫기도 없고, 말도 잘 못하고, 어쩌다 남 앞에 나서면 얼굴이 벌개지곤 했다. 강원도 화천 논미리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화천 읍내로 이사를 왔다. 읍내라고 해도 거의 비포장도로였고 초가집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다. 지금 생각하면 남루한 읍내 풍경이었다. 전방지대라 군용트럭이 지나가면 흙먼지를 다 뒤집어써야 한다.

여름 방학 때였다. 날씨는 푹푹 찌는 데 할 일은 없고, 심심하기는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난 일을 만들어 볼까? 그 궁리를 하고 있는데 내게 빅뉴스가 전달되었다.

읍내 시장 한복판의 얼음과자 공장에서 '아이스께끼'를 도매로 주는 데 그걸 다 팔면 곱절의 이익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 얘길 듣고 과연 내가 아이스께끼 장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며칠 동안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내가 모아둔 돈과 어머니에게 말씀드려 딱 한번 물건을 받을 돈을 만들어 얼음과자 집으로 달려갔다.

▲ 용규가 아이스께끼를 갈비인 줄 알고 물어뜯는다.
ⓒ 느릿느릿 박철
내가 얼음과자를 만드는 공장에 찾아 가서 침을 꼴깍이며 서 있으니까 주인아저씨가, "너 아이스께끼 사 먹으러 왔니? 아이스께끼 장사하러 왔니?"하고 묻는 것이었다.
"…자…장…장사하려구요."

나무 궤짝으로 만든 얼음과자 통에 아이스께끼랑 하드를 반반씩 담아 장삿길에 나섰다. 얼음과자를 팔려면 소리를 질러야 한다.
"아이스께끼나 하~드!"
"아이스께끼나 하~드!"


▲ 구원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스크림이다. 무아지경이다.
ⓒ 느릿느릿 박철
속으로는 잘 되는데 밖으로 소리가 안 나온다. 하는 수 없이 얼음과자 통을 메고 동네에 와서 일단 어머니에게 몇 개 팔고, 이웃집 아줌마, 동네 친구 녀석들, 교회 목사님 네, 이렇게 저렇게 팔고나니 내가 도매로 받아 온 얼음과자가 몽땅 팔렸다. 정말 기분이 최고였다.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팍팍해 보니 곱절이 남았다.

전체 물건 값의 절반만 주고 받아 왔으니 외상값을 다 갚고, 다시 얼음과자를 한 통 받아 올 수 있게 된다. 또 그걸 다 팔면 이제는 순수익이 생기게 된다. 나는 얼음과자 통을 어깨에 메고 뛰어갔다. 신이 났다. 얼음과자 공장주인 아저씨가 하는 말이,

▲ 용규와 지현이는 사이좋은 남매가 같다. 표정이 참 좋다.
ⓒ 느릿느릿 박철
"야, 너 장사수완이 있구나. 벌써 다 팔았어? 야! 오늘 네가 기록 세웠다."

그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다시 얼음과자 한 통을 받아 가지고 장삿길에 나섰는데, 이번에는 집으로는 갈 수 없고 어디로 간담?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자'고 생각해서 버스터미널로 갔다. 날씨는 삼복중이라 푹푹 찌고, 무거운 걸 들고 다니니 셔츠는 땀으로 다 젖었다. 아, 그런데,

"아이스께끼나 하~드!"

▲ 우리동네 구멍가게.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 느릿느릿 박철
그 소리가 내 목구멍에서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벌써 다른 애들이 와서 큰 소리로 "아이스께끼나 하~드!"를 외치며 아이스께끼를 파는 데 나는 완전 벙어리 장사였다.

대합실에 들어가서 내가 그윽한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보아도 한 사람도 얼음과자를 달라는 사람이 없었다. 다리도 아프고 하는 수 없이 얼음과자 통을 깔고 앉아 사람들이 사주길 기다렸다. 간신히 서너 개 팔았을까?

나도 먹고 싶었지만 돈 생각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다. 어떤 아저씨가 하드를 하나 달라도 해서 뚜껑을 열었더니 '아이스께끼나 하드'가 하나도 없다. 다 녹아 물이 되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빈 얼음과자 통을 메고 얼음공장을 걸어가는데 다리에 힘은 쭉 빠지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큰 걱정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몇 개라도 내가 먹을 걸.

▲ 아이스크림 냉장고. 내가 좋아하는 메론바는 오늘 따라 없더라.
ⓒ 박철
내가 얼음과자 통을 들고 얼음공장 문 앞에서 얼찐거리니까, 주인아저씨가 묻는다.
"야, 다 팔았냐?"
"아뇨...그런데 아저씨. 아이스께끼랑 하드가 다 녹아버렸어요."


나는 집에서 갖고 온 돈을 다 주고 그 아저씨가 '특별히 봐 준다. 내일 또 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듣고 얼음공장 문을 나왔다. 그때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지만 세상이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 투자한 본전도 못 건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던지. 지금도 어쩌다 얼음과자를 먹으면 그때가 생각난다. '아이스께끼나 하드 이야기'는 나의 유년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두 번째 단추이다. 지금 하면 목소리가 잘 나올텐데. 바리톤으로.

"아이스께끼나 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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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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