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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함 속에 숨겨진 문학성
- 조성기의 <반금련>


ⓒ 동아일보사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 등과 더불어 '중국 4대 기서'로 지칭되는 <금병매>를 저본으로 하는 조성기의 소설 <반금련>(동아일보사)이 출간됐다. 중앙일보 연재 당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반금련>은 부호 서문경과 세 치의 발을 가진 '전족(纏足) 미녀' 반금련의 애정행각과 갈등 그리고,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다.

<금병매>는 그 옛날 남녀의 구별이 엄격했던 동양에서 씌어졌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사실적인 성애장면 묘사 탓에 '엽색소설' 또는 저급한 '불륜소설'로 오해받아왔다.

조성기가 자신의 패턴으로 재해석한 <반금련>에도 섹스에 관한 날것의 표현들이 적잖이 등장한다. 백호등(白虎騰) 또는, 용완전(龍宛轉)이란 체위 묘사의 리얼함은 어떤 관능적 연애소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금련>이 그저 그런 섹스소설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펴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들이라면 "성적욕망을 솔직하게 다룬 것은 물론, 인간관계의 설정과 소설의 구성 또한 대단히 뛰어나다"는 조성기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 분명하다.

동양학연구자 로베르트 반 홀릭은 "결말에서 보여지는 방탕한 영웅과 음란한 여성의 파멸"을 <금병매>의 미덕 중 하나로 지적했지만, 비단 이런 권선징악의 설파 만일까? 서문경과 반금련은 그들의 온몸으로 '인간은 고작 욕망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기자 또한 그런 존재라는 깨달음이 새삼스럽다.

인간사 불행의 대부분이 과도한 욕망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권한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 윤성희 신작소설집 <거기, 당신?>


ⓒ 문학동네
첫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을 통해 평단과 독자로부터 동시에 주목받았던 신예 윤성희가 두 번째 작품집을 들고 독자들과 만났다. 제목부터가 쓸쓸한 자의 독백이다. <거기, 당신?>(문학동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그 남자의 책 198쪽' '잘 가, 또 보자' 등의 빼어난 단편들을 그 품에 안은 윤씨의 두 번째 소설집을 읽노라면 18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던진 말이 200년의 세월을 건너와 귓가에 윙윙댄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거기, 당신?> 속에는 즐겁고, 신명난 사람들보다 외롭고, 슬프고, 우울한 사람들이 훨씬 많이 숨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상처받은' 그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과 우울함을 애써 타자(他者)와 나누려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상처받은 채로 살아갈 뿐이다. 윤성희의 건조한 문장과 메마른 문체는 이들의 일상을 감정 없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담담하게 따라간다.

강변하지 않는 서러움은 가끔 통곡보다 슬프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이 책을 "참담하고 비통한 이야기 속에서도 따뜻한 정감과 활기찬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고 평했지만, 글쎄... 기자는 윤성희의 이야기 속에서 유머는 고사하고 한 조각 웃음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과도한 감정이입 탓이었을까?

'세상에 외로운 것은 나 하나'라는 착각에 홀로 술잔을 꺾는 염세주의자들에게 권한다.

미당의 죽음은 자살일 수도 있다?
- 계간 시평 겨울호 <애인은 내 몸을 입는다>


ⓒ 시평사
한국 시인의 작품은 물론, 일본과 중국, 몽골 시인의 작품들까지도 다채롭게 만날 수 있는 계간 시 전문지 <시평> 2004년 겨울호가 출간됐다. 뭐니뭐니 해도 독자들이 이번 호에서 가장 관심을 가질 대목은 '미당 서정주의 죽음이 자살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담은 맹란자(<에세이문학> 발행인)의 글이다.

미당의 시 중 '자화상' '자살미수'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에서 보여지는 표현과 싯구 사용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미당의 죽음이 자살일 수도 있다는 맹씨의 주장은 사실여부를 떠나 적지 않은 논란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천재성을 지닌 자아의 상처' 등을 거론하며 '본인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조심스런 방식으로 논지를 펴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의성과 주관성이 지나치다는 의심은 떨칠 수가 없다.

<시평> 겨울호에선 최두석, 박남철, 하종오, 이은봉 등 80년대 등단작가들의 신작들을 만나는 기쁨이 각별하다. 조선의 황진이와 비견되는 일본의 여성시인 이즈미 시키부(和泉式部)의 생애를 서술한 세종대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교수의 글도 흥미롭다.

시와 시에 관한 글을 읽는 것으로 행복에 가 닿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권한다.

한 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열매출판사
유현숙의 <소설 체 게바라>(열매출판사)

한 사람의 '인물'이 아닌 영원불멸할 '전설'로 지칭되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 철학자 장 폴 싸르트르에게 "완벽한 인간"이라 칭송 받은 사람, 사후 40년이 가까워오지만 여전히 핍박받고 탄압 받는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남아 변혁의 불꽃을 제공하는 그의 생애를 소설로 만난다.

책의 중간에서 만나는 흑백사진 20여장은 게바라가 '민중 속으로'가 아닌 '민중 속에서'란 슬로건을 신봉했음을 증명한다. 올리브색 군복을 입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 외모도 제임스 딘과 리버 피닉스에 못지 않다.

박시교 신작시집 <독작>(작가)
짜여진 운율에 글자 수까지 맞춰가며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시조. 등단 34년을 맞은 박시교의 맵찬 글 맛을 본다.

강은자 장편 <그 스님의 여자>(해와달)
한국인 작가가 프랑스에서 쓴 소설. 몰락한 양반과 창녀의 사랑이라는 통속적 구도를 강은자는 어떤 방법으로 극복했을까?

아도르노의 <프리즘>(문학동네)
20세기 최고 지성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문화비평 에세이를 모았다. 대구대학교 홍승용 교수 역.

시조모음집 <가려 뽑은 우리 시조>(현암사)
중국엔 절구(絶句)가 있고, 일본엔 하이쿠가 있다면 한국엔 시조가 있다. 빼어난 시조와 근사한 사진이 좋은 쌍을 이룬다.

린다 리어의 <레이첼 카슨 평전>(샨티)
그 누구보다 앞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설파했던 사람, '지구의 날'이 제정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레이첼 카슨과 만나다.

히가시 다이사쿠의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역사넷)
베트남전쟁은 막을 수 없는 비극이었을까? 미국의 이라크침공과 강압통치가 전세계를 공포와 당혹으로 몰아넣은 오늘. 우리는 과거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만프레드 클라우스의 <알렉산드리아>(생각의나무)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고대 도시 알렉산드리아. 독일의 역사학자가 들려주는 한 도시의 흥망사.

거기, 당신?

윤성희 지음, 문학동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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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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