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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단편들을 무더기로 만나는 즐거움
-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 랜덤하우스중앙
중앙일보사와 문예중앙이 주관하는 황순원문학상 2004년 수상작과 최종후보작들이 발표됐다. 수상작인 김영하의 '보물선'을 비롯 이 작품과 경합한 윤대녕과 구효서, 윤영수와 김연수, 박민규 등의 단편이 실린 <2004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랜덤하우스중앙)은 '좋은 소설'을 응축해 모아놓은 종합선물셋트처럼 풍성하고 알차다.

거대역사에 매몰된 개인사를 한국전쟁의 한 장면을 그림처럼 서술함으로써 탄탄하게 복원한 김연수의 '부넝쒀(不能設)'는 제목 그대로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전쟁의 비극까지 되새기게 한다. 새로운 형태의 반전소설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윤대녕의 '고래등' 역시 작가 특유의 서늘한 세계인식과 매혹적인 문장이 돋보이는 단편이다. 한 시대를 앞서 살아온 아버지들이 궤적이 눈물겹다.

윤영수의 '새떼'는 이창동의 영화 <오아시스>처럼 보는 사람을 거북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과 '거북함'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산다는 게 사실은 별 것 아닌데 우리는 왜 이토록 만사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가'라는 한숨 섞인 혼잣말을 내뱉게 만든다.

재기 넘치는 스피디한 문장으로 자본주의 본질을 소설적으로 유쾌하게(또는, 신랄하게) 파헤친 김영하의 '보물선' 역시 수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작품의 삽화로 사용된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수난기(?)를 읽으며 기자는 '킥킥' 웃었다.

영화, 송준 앞에서 발가벗다
-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


ⓒ 심산문화
'좋은 문장'을 가졌다는 것은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더 할 수 없는 무기(武器)이자 복이다. 좋은 문장은 간혹 타고나기도 하겠지만, 천재가 아니라면 훈련을 통해 쌓아 가는 것이 보편적. 영화와 미술, 건축관련 평론과 시나리오 집필 등을 하며 '자유로운' 글쟁이로 살고 있는 송준(41)이 몇몇의 영화를 자신 앞에서 발가벗겼다.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 - 송준의 영화이야기 2000~2004>(심산문화)에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문장을 축조한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여타의 영화평론과는 또 다른 냄새다. 간명하고 적확하다. 군더더기 없이 한 편 한 편 영화의 핵심과 본질을 해부하는 메스 같은 문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임순례, 스파이크 리와 로만 폴란스키까지를 종횡무진 오가고, <공각기동대>와 <밀리언 달러 호텔>, <리빙 하바나>와 <아멜리에>를 사통팔달하는 송준의 영화 탐식. 마구 먹는 게 아니라, 가려먹고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송준의 감각은 과연 미식가의 그것답다. 책은 독자들이 영화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꼭 필요한 해도(海圖)가 될 듯하다.

저자 송준은 <시사저널> 공채 1기로 기자생활을 시작, <노동일보> 문화팀장과 주간 영화잡지 <프리뷰>의 편집장 등을 거쳤다.

영혼은 죄 속에서도 머물 수 있을까?
- 유형종 장편소설 <그러나 낯선 당신>


ⓒ 푸른사상
199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유형종(민족문학작가회의 강원지회 부회장)이 신작 장편을 들고 독자들과 만났다. 한 지방대학 교수의 사랑 혹은, 불륜을 통해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고래로부터의 질문을 다시금 던지는 <그리나 낯선 당신>(푸른사상).

우연히 만난 시각장애인 소녀에게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는 아내에게 향해있던 사랑을 모조리 그 소녀에게 쏟아 붓는 교수. 소녀의 눈을 통해 새삼 확인하는 자신의 현실. 그 현실 속에서 '아내냐 소녀냐' '현실안주냐 이상 찾기냐' '진보냐 보수냐'를 스스로에게 묻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생에 한번쯤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법한 '감정과잉'의 상태. 길거리에서 마주친 미친 사내는 마치 오랜 수련 끝에 득도한 선승(禪僧)처럼 한마디를 던진다. "죄 속에도 영혼은 머물 수 있다." 불현듯 얻은 이 화두(話頭)를 주인공을 어떻게 받아 안을까?

유형종의 문우이기도 한 박세현(시인)은 <그러나 낯선 당신>을 "주인공이 추적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이념의 1980년대를 지나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든 21세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허물벗기"라고 평했다.

한 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실천문학사
김진경 신작시집 <지구의 시간>(실천문학사)

<갈문리의 아이들>에서부터 <슬픔의 힘>까지.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굳건한 제 위치를 점한 중진 김진경(51)의 새로운 시집. 이러저러한 부연 없이도 책은 그의 이름이 주는 신뢰감만으로 튼튼하고 실하다. 아래와 같은 구절을 다른 어떤 시인이 쉬이 써낼 것인가.

나무가 악기인 것은/지워지지 않으려 온몸으로 울기 때문이다/나무들이 우는 소리/능선을 넘어/온 산을 쏟아져내리는 폭포를 이룬다...
-- 위의 책 중 '악기가 나무인 것은' 일부.

이청준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문이당)
사자는 아무리 늙어도 늑대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다. 원로 소설가 이청준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문장의 맛'은 사자를 닮았다.

강윤신 외 <붉은 이마 여자>(이룸)
12명의 작가들. '소통부재'의 현실에서 소통하는 인간을 꿈꾸다.

안도현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영민한 천재 소년문사에서 등단 20년에 이른 중견이 된 안도현. 시인은 불혹에 이른 삶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기호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문학과지성사)
김유정-이문구-성석제로 이어지는 '이야기꾼'의 재질. 가능성 있는 신예를 만나는 것은 독자의 가장 큰 기쁨이다.

다나베 세이코 소설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작가정신)
아쿠타가와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연애'와 관련한 갖가지 이야기들. 빛나는 유머와 삶에 관한 미시적 관찰이 돋보인다.

공지영 소설 <별들의 들판>(창비)
화제를 몰고 다니는 작가 공지영이 5년만에 내놓은 신작. 베를린에선 무엇이 그녀를 웃기고 울렸을지.

자크 주아나의 <히포크라테스>(아침이슬)
누구나 들어본 이름. 그러나, 그에 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학서가 아닌 종합교양서"라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황인숙의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이다미디어)
시인 황인숙의 안내로 떠나는 책 속으로의 여행.

권오문의 <말말말>(삼진기획)
독과 약, 칼과 방패, 빛과 어둠처럼 양면의 얼굴을 가진 말(言). 세상을 바꾼 말의 역사와 만난다.

매튜 배틀스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넥서스)
도서관이란 단순히 책을 모아놓은 공간일 뿐일까? 하버드대학의 희귀본 도서관 사서가 이 질문에 답한다.

강영주의 <벽초 홍명희 평전>(사계절)
<임꺽정>의 저자이자 월북문인의 대표격으로 불려지는 홍명희. 그의 생애와 사상, 문학을 만나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그러나 낯선 당신

유형종 지음, 푸른사상(2004)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 - 송준의 영화이야기 2000 ~ 2004

송준 지음, 심산(2004)


보물선 - 2004 제4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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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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