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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사업에 느는 건 죽뻘뿐

칠게는 서렁게, 찍게, 활게 등 이름도 다양하다. 그만큼 갯벌이 발달한 서남해의 여러 지역에서 서식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넓은 사다리 꼴을 하고 있는 칠게는 집게발이 하늘색이나 주황색을 띠고 있으며 수놈의 집게발은 크고 암놈은 작다.

▲ 칠게
ⓒ 김준
▲ 집게발이 큰 숫놈칠게와 작은 암놈칠게
ⓒ 김준
칠게는 게장을 담가 먹거나 갈아서 밥에 비벼 먹기도 하며, 낙지의 먹잇감으로 쓰인다. 칠게는 눈치가 아주 빠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놈을 노리는 적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에서 호주로 날아가다 새만금 갯벌에 잠시 쉬어 가는 도요새가 종종거리며 칠게를 찾는다.

특히 큰뒷부리도요는 잡은 칠게를 물에 잘 씻어서 먹는, 격식 있는 '신사도요'로 통한다. 아마도 칠게가 맛있다는 것을 인간보다 이들이 먼저 알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칠게를 노리는 놈은 낙지다. 낙지는 생각보다 입맛이 까다로운 모양이다. 그 많은 게들 중에 유독 칠게만 좋아하는 걸 보면.

칠게를 잡아라

▲ 계화도 앞 갯벌을 나는 도요새
ⓒ 김준
칠게의 가장 무서운 적은 인간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 칠게를 대량으로 포획하지 않았다. 맨손으로 잡았기 때문에 개체 수가 적절하게 유지되면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었다. 칠게는 진흙 갯벌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서남해안 특히 동진강과 만경강이 만들어낸 갯벌, 고창과 영광 갯벌, 무안과 함평 갯벌, 영산강이 만들어낸 갯벌, 순천만과 득량만 등 갯벌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들 갯벌이 간척과 매립으로 사라지거나 서식 환경이 바뀌면서 넓은 지역에서 적절한 양으로 공급되던 칠게가 이제 한정된 지역에 집중됐다. 따라서 식용과 낚시 먹잇감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어민들의 집중 포획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새만금 갯벌처럼 고기잡이가 더 이상 어려워지자 그동안 관심밖이던 칠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통발어업을 하는 사람, 그물로 꽃게를 잡는 사람, 덤장으로 숭어며 잡어를 잡는 사람, 낙지를 잡는 사람, 칠게를 잡는 사람 등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됐던 생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홈통을 갯벌에 묻고 있는 어민
ⓒ 김준
▲ 갯벌에 설치된 홈통
ⓒ 김준
작년부터 새만금에는 길이가 3~5m에 지름이 25cm의 플라스틱 통이 위쪽이 터진 채 갯벌에 묻히기 시작했다. 갯벌에 물을 댈 일도 없고, 하수구를 만들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은 칠게를 잡기 위해서 고안한 일종의 함정 어구였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기막힌 발명품이었다.

간조시 물이 빠질 때 칠게들이 갯벌을 종종 거리다가 통 안에 빠지면 꼼짝없이 갇히는 것이다. 다행이 통을 설치한 사람이 바뻐서 갯벌에 나오지 않으면 물이 들어올 때 통 밖으로 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밥상에 오르거나 낙지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계화도에서 온몸으로 바다와 갯벌을 지키고 있는 고은식(42·어민)씨의 이야기이다.

"칠게 없어요. 홈통 파서 잡고 그물로 잡고, 그것도 처음에는 손으로 잡았어요. 집어 넣어서. 그때는 칠게가 이만큼(손가락 길이가 족히 5cm는 된다) 컸어요. 그리고 여러 사람이 잡았죠. 그런데 어떤 사람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통으로 잡기 시작하니까 여러 사람이 못 잡아요. 그 통도 작년에 100개를 놓았으면 올해는 한 300개를 놓아요. 작년에 열 사람이 칠게를 잡았으면 올해는 다섯 사람밖에 통을 못 놓아요. 뽐뿌배랑 다 똑같아요."

인공 칠게가 만들어졌다

▲ 칠게잡이에 나서는 어민들
ⓒ 김준
칠게는 낙지를 잡는 먹잇감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최근 장흥해양수산사무소(소장 김영남)와 서해수산연구소가 공동으로 고흥, 보성, 장흥 지역 득량만 일대 낙지 통발로 생업을 유지하는 어민들을 위해 가짜 미끼를 개발했다. 이들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낙지연승어업에 소형 선박 1척당 연간 1400여만원 정도가 소요되어 어업경비의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살아 있는 미끼인 칠게의 어획이 줄어들고 계절에 따라 가격 폭등까지 겹쳐 중국, 동남아시에 등지에서 수입할 정도로 미끼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와 장흥해양수산사무소에는 낙지 통발용 인공 미끼를 개발해 시험 조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 칠게를 묶은 낙지주낙
ⓒ 김준
낙지통발은 비교적 깊은 바다에서 통발을 몸줄로 묶어서 물 속에 넣어 두고서 매일 나가서 낙지를 잡는(물을 보는) 것을 말한다. 낙지통발보다 더 많은 칠게가 필요한 것이 바로 낙지주낙이다. 낙지주낙은 사기, 타일을 이용해 250~300여개의 미끼판을 만들고 여기에 칠게를 고무줄로 묶는다. 그리고 물이 들어 왔을 때 갯벌에 던져 5분 후에 건져내어 붙어 있는 낙지를 잡는 것이다. 싱싱한 칠게를 이용할수록 낙지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매일 매일 미끼판에 새로운 칠게로 바꾸어야 한다. 때문에 칠게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갯벌이 없는 계화도를 생각해 보라

▲ 홈통에서 칠게를 잡고 있는 어민
ⓒ 김준
▲ 칠게를 잡기 위한 짜깁기 그물과 홈통이 갯벌에 널려 있다
ⓒ 김준
칠게가 사라지면 반찬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낙지, 도요새 등 동물들의 먹잇감이 사라져 생태계에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갯벌이다. 갯벌은 매일 매일 숨을 쉬여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갯벌을 유지하고 많은 갯벌 생물들에게 좋은 서식처를 제공할 수 있다.

새만금갯벌이 8천여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칠게와 같은 청소부와 산소 공급 일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 게들이 쉴 틈 없이 집게발을 이용해 갯벌 흙과 모래를 먹어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갯벌에 수많은 크고 작은 구멍들은 대부분 칠게를 비롯한 게들의 생활 공간이다. 물이 빠지면 갯벌에 나와 활동하다 물이 들어오면 구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린다. 칠게의 이런 행동이 갯벌 깊은 곳까지 산소도 공급하고 다양한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 홈통으로 포획된 칠게
ⓒ 김준
이제 새만금에 남은 물길은 2.7km. 얼마 전 야생동물을 잡기 위해 사람들이 설치해 놓은 올가미에 걸린 토끼가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다. 요즘 새만금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그 모습이 생각난다. 마지막 숨통을 조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숨이 끊어지기 전에 갯벌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어민들.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갯벌 생물들이 삶의 전쟁을 벌여야 할 그곳에 인간들이 탐욕스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새만금 갯벌의 또 다른 지킴이 칠게. 인간이 그곳에 정착하기 전에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새만금에서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갯벌의 변화를 알려 주는 경고이다. 갯벌이 없는 계화도, 심포, 거전, 하제를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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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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