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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 양지포구, 김제의 심포, 군산 하제포구. 2-3년 전부터 이곳에 엔진을 두 개나 달고 배 고물(꼬리부분)에 육중한 쇠파이프를 단 선박이 등장했다. 일명 '뽐뿌배'라고 부르는 배들이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이들 선박들이 하나 둘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조직을 결성해서 활동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배를 '해적선'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선주들은 사실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다.

▲ 심포항에 정박 중인 뽐뿌배
ⓒ 김준

어민들의 선택, 뽐뿌배

뽐뿌배와 유사한 어구로 '방배'가 있다. 방배는 일명 '고대구리'라고 부르는 것으로 대표적인 불법어로에 속한다. 방배는 그물에 무거운 납덩이를 달아서 갯벌 바닥을 긁어 바닥에 사는 각종 패류, 어류 등을 송두리째 걷어올리는 방법이다.

여기에 갯벌을 파헤칠 수 있는 무논써레 모양의 쇠파이프가 선박의 고물에 매달려있다. 이 파이프에는 170여개의 작은 구멍을 뚫어 강한 물줄기를 쏘아 갯벌을 뒤집어 개불, 생합 등을 방배그물 등으로 긁어 잡는 것이다. 뽐뿌배는 목선을 이용해서 만들며 뽐뿌의 크기도 목선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제작하고 있다.

백 대 일, 어민 100명 대 뽐뿌배 1대

심포의 어민들에 따르면 뽐뿌배는 20여척이며 이 중 6척만이 등록어선이고 나머지는 무등록 어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등록 어선은 불법어로 행위를 하더라도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 등록어선의 불법어로보다 낮은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 뽐뿌를 수리 중 양지포구(계화도)
ⓒ 김준
뽐뿌배가 지나가고 나면 그곳에서는 며칠 지나도 생합을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인근에 김 양식장 김발에 뻘이 붙어 양식장을 망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이들 뽐뿌배들의 작업량은 순수한 노동으로 그레질하는 어민의 100배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갯벌을 뒤집어 놓기 때문에 갯벌에 사는 저서식물들의 생존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그레는 생합을 잡는 도구로 갯벌을 10여cm 두께로 긁어가다가 물체에 부딪히는 소리, 감각을 이용해 생합을 잡는다. 그레질로 생합을 잡을 때는 갯벌 바닥에 그레질한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지나가기 때문에 해양생태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후 그곳에 다른 생합들이 이동해 자리를 잡고 있다.

사실 조상 대대로 갯벌을 이용할 수 있었고, 필요한 만금 갯벌에 나가 가져 올 수 있었던 것도 갯벌과 어민들이 함께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 계화도 갯벌에서 그레로 생합을 잡는 모습
ⓒ 김준

어민들간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문제는 뽐뿌배가 갯벌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레질로 생합을 잡아온 심포 어민들은 요즘 잡히는 생합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이유를 뽐뿌배 탓으로 여기고 있다.

2년 전인가 계화도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생합 밭을 고대구리 배가 야밤에 모조리 긁어 버린 일이 있었다. 뒤늦게 생합이 전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알아낸 아주머니와 주민들은 고대구리가 바닥을 긁지 못하도록 갯벌에 말목을 박기도 했다고 한다. 갯벌 이용을 둘러싼 어민들간 갈등의 여전히 불씨들은 남아 있다.

심포에서도 몇 차례 해양경찰에 불법 어로행위에 대한 단속을 요청했지만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사실 알고 보면 뽐뿌배로 어로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다 보니 단속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리고 뽐뿌배가 작업하는 현장에서 적발을 해야 하는데 야간이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어렵다는 것이 경찰 측의 이야기이다.

최근 이들 지역에서 뽐뿌배 소유주와 그레질로 생합을 잡는 사람들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나타나기도 했다. 인근의 장항 등 외지의 배들이 와서 개불을 잡는다고 새만금 해역을 뒤집기도 했다.

계화도처럼 그레질를 하는 사람들이 중심인 선외기 조직이 잘 되는 곳에서는 뽐뿌배와 일정한 타협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는 지역은 뽐뿌배의 불법어로를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 방치되어 있는 뽐뿌
ⓒ 김준

▲ 뽐뿌배의 고물(꼬리) 부분, 뽐뿌를 작동하기 위한 엔진이 달려있다
ⓒ 김준

더 근본적인 것은 새만금 해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어로행위는 엄격하게 법률적 적용을 한다면 모두 불법어로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면허어업과 '깔꾸리보상'(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작은 쇠스랑을 이용해 관행적으로 생합을 잡아온 어업행위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어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에 나가면 10만원은 족히 벌어오는데 보상비라고 1000여만원 준 것도 보상이냐고 항변을 하겠지만 법률적으로는 이미 끝난 이야기이다.

이렇게 약탈적인 어로행위를 하는 것도 사실은 어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보상에 눈이 어두워 도장을 꾹꾹 눌러준 것이 사실이지 않는가. 뽐뿌배의 이용은 그나마 어민으로서 생존을 이어가는 가느다란 숨통마저 끊어버리는 것이다. 새만금 사업을 추진하려는 입장에서 본다면 더 없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

최근에는 계화도의 뽐뿌배 소유자들이 중심이 되어 새만금어선협회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해경의 단속, 그레와 깔꾸리를 이용해 생합을 잡는 어민들의 반발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려는 속셈이다.

반면에 심포, 고사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한시허가'를 취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새만금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에 그 해역에서 하는 어로 행위가 불법화되어 어민들이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촌계의 노력이다.

▲ 포구에 정박 중인 뽐뿌배들
ⓒ 김준

4공구가 막히면서 생긴 일

뽐뿌배는 초기에 새만금 해역에 개불을 잡기 위해 고안된 선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만금 사업이 시작되면서 김제와 부안의 갯벌에서 증식하기 시작한 개불에 어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새만금 유역에서 잡히는 고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였다.

물론 개불이 이전에도 새만금 갯벌에서 서식했지만 비안도,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무녀도, 왕등도, 위도 등 인근 바다에서 활어들을 잡을 수 있어 개불에는 관심도 갖지 않았다.

사실 4공구가 막히기 전에는 김제와 군산의 새만금 방조제 안쪽의 심포, 원동, 하제 등 어민들은 아쉬운 대로 그물질을 할 수 있었다. 방조제 안쪽에서 이루어지는 그물질은 물론 고군산군도까지 쉽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갯벌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갯벌에 담겨 있는 그 질퍽한 인간사

그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아 <갯벌을 가다>(한얼미디어, 2004년 10월)를 냈습니다. 독자분들의 관심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갯벌의 생태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갯벌을 체험과 관광의 대상으로 보는 편협한 시선도 부정한다. 그곳 갯벌에는 희로애락의 인간사가 질퍽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갯벌을 탐구하려는 사람들에게 갯마을과 갯벌은 무한히 열려 있는 공간이다." ...<갯벌의 가다> 머릿말 중에서 / 김준
하지만 4공구가 막히면서 이제 고군산군도나 왕등도, 위도 인근 해역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계화도 앞을 경유해 신시도와 야미도 사이에 터진 물길을 이용해야 한다. 빙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기름 값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든다. 게다가 모든 고기잡이 어선들이 그곳에 몰려드는 통해 잡히는 고기도 시원찮아 기름 값이 더욱 아깝다. 그래서 선택한 것 중에 하나가 뽐뿌배였다.

이들 어민들은 분명 새만금 사업의 피해자였지만 이제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다.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면서 갯벌과 바다는 말할 것도 없이 어민들도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이제 이들이 바다를 포기하는 순간 바다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삼보일배도, 해창갯벌의 매향제도, 새만금 갯벌 걷기도, 촛불시위도 어민들의 바다를 포기하는 순간 모두 무너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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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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