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2002년 4월 <통풍을 아십니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내가 '통풍'이라는 병을 처음 갖게 된 시기와 연유, 오랜 세월 그 고약한 병을 지니고 살아오면서 감내해야 했던 불편과 고통, 또 자세히 알게 된 그 병에 대한 지식들을 소개한 글이었지요.

관련
기사
'통풍'을 아십니까?

곁들여 술자리와 미식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병의 정체를 알리고 경고를 함으로써 나 같은 불행한 통풍 환자가 많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지요.

통풍이라는 생소한 병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그 글을 꽤 많은 사람들이 읽었습니다. 독자들 중에는 의외로 통풍 환자들도 많은 것 같더군요. 수많은 '독자 의견'들 중에는 동병상련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지요.

또 내 글에 의견을 달아주신 통풍 환자들 중에는 자신이 병을 관리하는 방법과 약제를 소개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방법과 약제들 중에는 내가 한번도 접해 보거나 시행해 보지 않은 것들도 있었지요. 자연 내 귀가 솔깃해지면서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고….

댓글과 메일로 내게 새 정보를 주신 분들께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기대를 안은 채 서울 제기동 한약 시장으로 발걸음을 한 적도 있답니다. 또 한가지 얻은 정보를 가지고는 한의사인 생질 사위에게 처방을 구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역시 이미 만성이 된 내 통풍을 적절히 다스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종전의 방식대로 의사가 부작용을 걱정하고 겁을 주면서 인색하게(?) 지어준 약을 애지중지하며 발작 기미가 느껴질 때마다 복용을 하는 식으로 내 통풍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풍이 무시로 발작을 하므로 금주와 음식 제한은 일찍부터 기본이 되어 있었지요. 금기 식품과 제한 식품이 적힌 식단표를 주방의 냉장고에 붙여 놓고 사니, 어머니와 아내도 보통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음식을 가려 먹고, 마누라보다도 더 좋아하며 '주(酒)님'으로까지 숭배했던 술과도 결별을 하다시피 했는데도 수시로 통풍 발작을 겪는 것은 정말이지 슬프고도 환장할 일이었습니다. 내 몸은 이미 음식 주입에 의해서만 요산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 지방의 합성 작용에 의해서도 요산이 발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지요.

늘 약을 준비해 놓고 살고, 먼길을 갈 때는 꼭 약부터 챙기고, 약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서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통풍 발작 기미가 느껴질 때마다 약을 먹으니, 사실은 늘 약을 끼고 사는 형국이었습니다. 약을 먹을 때마다 의사의 부작용 경고를 상기해야 하는 것도 큰 고역이었지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내가 오래 통풍을 지니고 살다보니 저절로 이력이 나서 발작 기미를 일찍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간혹 음식 절제를 하지 못했을 때는 발작 기미가 오기 전에 미리 약을 먹는 지혜(?)도 갖추게 된 점이었습니다.

(2)

여기에서 두어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야겠군요.

내게 약을 줄 때마다 의사는 부작용 걱정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물론 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그때마다 죄인 심정이 되곤 했지요. 의사는 내게 15일분의 약을 주면서 그 15일분으로 최소한 6개월 정도는 버텨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지혜롭게 통풍 발작 기미가 느껴지는 순간에 약을 먹는다 하더라도, 15일분으로 6개월을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약을 먹을 때마다 6개월 후에 오라고 한 의사의 말을 상기하게 되고, 약이 점점 줄어드는 데서 갖게 되는 심리적 압박감도 컸습니다.

그동안 여러 군데 병·의원을 다니며 처방을 받아 보았지만, 부작용을 경고하며 인색하게 약을 주는 의원의 그 약이 내 통풍을 관리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기미가 느껴질 때 얼른 한봉지나 두봉지 정도 먹으면 발작 기미가 가곤 했으니까요.

그러니 그 의사의 처방만이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매번 걱정을 하고 겁을 주며 약을 인색하게 주다니….

15일분의 약으로 6개월을 버틸 수 없었던 나는 한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그 의원에서 받은 처방을 곧바로 약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문구사로 가서 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다 놓고 약 이름들을 확실하게 읽고 외운 다음 다른 의원으로 가서 원장에게 같은 처방을 부탁했지요.

그 뒤로는 두 의원을 번갈아 다니며 통풍 약을 지으니 묘하고도 얄궂은 여유를 갖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의사들을 속이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의원을 번갈아 다니며 약을 여유 있게 확보해 놓고 사는 내 신세가 정말 처량하기 한량 없었습니다.

통풍 기미가 느껴질 때마다 선수를 치듯 약을 먹으면 발작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부터는 가끔 술도 한잔씩하곤 했습니다. 통풍뿐만 아니라 당뇨라는 병도 가지고 있으므로 술은 내 몸에 정말이지 금기 식품이었지요. 그렇지만 그 좋아하던 술을 칼로 자르듯 완전히 끊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임 같은 데 가면 한잔씩은 하는데, 무슨 술이고 간에 딱 한잔이 정량이었습니다.

술자리에 앉아서 주로 소주 한잔을 받아놓고 병아리 눈물만큼씩 혀끝으로만 홀짝거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한잔으로 해결하니 생각하면 눈물겨운 일이었지요. 취기라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그저 혀끝으로 소주의 싸한 맛이나 느끼려는 것이니, 생각하면 정말 불쌍한 신세였습니다.

집에서도 가끔 반주를 하는데 역시 소주 한잔…. 그마저도 마누라는 곧잘 타박을 하는데, 아들의 지난 시절의 호주(豪酒)를 잘 아시는 나머지 오늘의 내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는 어머니는 매번 내 편을 들어주시곤 하지요. 그때마다 역시 어머니는 어머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한번은 홀로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태안읍 도내리 바닷가에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로 가는 길에서였습니다. 한 옆에 긴 저수지를 끼고 아득하게 이어진 반듯한 그 길에는 수많은 전신주들이 가지런히 이어져 있어서 더욱 아스라한 느낌을 주지요. 나는 그 길을 좋아해서 가끔 일부러 가기도 하는데, 하루는 걸음을 멈추고 중간쯤의 저수지 앞에 앉아 막걸리 한잔을 마시자니 절로 애원 기도와 함께 눈물이 나더군요.

"하느님, 제가 옛날처럼 만취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가끔 간절히 목이 마를 때는 막걸리 한대접을 벌컥벌컥 마음 놓고 마시며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당뇨는 제가 거의 매일 같이 등산하고 음식 절제를 하니 평생 동안 잘 관리하며 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통풍은 대책이 없습니다. 음식 절제를 하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수시로 발작을 하는 이 고통을 어찌해야 합니까? 음식 절제를 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만큼 통풍 발작이 없도록 해주시고, 제가 감히 옛날처럼 만취를 원하지는 않으니, 간혹 목이 마를 때 막걸리 한 대접씩은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막걸리 한잔을 벌컥벌컥 기울이고 나서 이렇게 기도를 하자니 울컥 슬픔이 솟구치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군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또 내 자신의 문제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3)

내가 <아스파라거스>라는 식물의 액을 알게 된 것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아내 덕분이었지요. 아니, 식생활의 변화 탓으로 내 가까운 주변에도 통풍 환자들이 많아진 탓이고,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통풍 환자 남편을 둔 여교사가 있는 덕이었습니다.

동료 여교사에게서 아스파라거스 정보를 입수한 아내가 그 즉시 학교에서 인터넷으로 5만원어치 25봉지를 주문했고, 택배로 받은 날부터 나는 그것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냉동 상태로 온 것을 냉장고의 냉동실 안에다 넣어 놓고 한봉지씩 꺼내어 놓여서 먹는데, 맛은 좀 역한 편이지만 먹기가 어려울 정도는 아니더군요. 처음 한동안은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봉지씩 먹었지만, 다시 10만원어치 50봉지를 주문한 후로는 하루에 한봉지씩 먹고 있지요.

이 아스파라거스가 통풍 환자인 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긴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내가 내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붙이들에게 보낸 '가족 메일' 중에서 아스파라거스에 관한 얘기가 들어 있는 부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나는 비교적 자주 내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붙이들에게 '가족 메일'을 보내는데, 일년 전의 메일을 일년 후 같은 날 내 홈페이지 '가족공동체' 방에 올려 놓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아스파라거스(asparagus)의 확실한 효능

토요일 저녁 원북면 신두리 해변에서 초저녁부터 밤 2시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졌네. 신부님과 여러 교우들과 어울려 얘기도 많이 나누고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소주와 맥주를 꽤나 많이 마셨네. 농기계에 달린 수레를 타고 광활한 밤 해변을 드라이브도 하고….

거의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셨네. 내 차에서 아스파라거스 한봉지를 꺼내 들고 밤 2시경 마누라와 한결 두 모자만이 자고 있는 방을 찾아 들어가서 마누라를 깨워 아스파라거스를 먹었는데, 그 사실조차 다음날 아침에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것일세. 두 가지 술과 함께 안주로 돼지고기도 꽤 많이 먹었네.

이렇게 내가 근래 들어 처음으로 거의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신 것은 다소 의도적인 것이기도 했네. 아스파라거스의 체내 요산 제거 효능을 좀더 확실히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지. 정말 오랜만에 술을 제대로 마셔본 것이었네.

역시 아스파라거스의 효능은 놀라울 정도였네.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온몸의 신경을 검색해 보니 통풍 기미가 전혀 없더군. 그전 같으면 통풍 발작으로 괴로운 지경일 텐데…. 물론 혈당이야 꽤 올라갔을 테지만, 당뇨는 내 부지런한 운동으로 어느 정도 조절에 자신이 있으니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통풍을 잘 제어해주는 아스파라거스의 효능을 믿고 앞으로 또 술을 많이 마실 리는 없지만(당뇨와 고혈압도 생각해야 하니…), 아스파라거스의 효능을 확실히 체감하고 확인한 것이 기쁘네. 술과 육식을 거의 하지 않고 바짝 조심을 하는데도 통풍이 오곤 하는 그 고통을 이제는 확실하게 피할 수가 있게 되었네.

아스파라거스를 전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봉지씩 먹다가 9월부터는 저녁에만 한 봉지씩 마시는데, 몸 상태가 좋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통풍 환자들에게 아스파라거스의 존재를 알려줘야 할 것 같네. 요산 제거 효능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콩팥의 옥산살 결정을 파괴하여 저하된 콩팥 기능을 되살려낸다 하니 통풍과 마찬가지로 콩팥에 부담을 주는 당뇨에도 유용한 물질이 될 것 같네.

주변에 통풍환자가 있으면 꼭 아스파라거스의 존재를 소개해 주기 바라네.
(9월 7일의 편지)


(4)

나는 지난 9월 17일과 10월 18일 서울에 가서 두번 모두 밤샘 음주를 했답니다. 인터넷 상에서 만난 교우(敎友) 겸 동지(同志)들과 어울리다 보니 4차까지 가게 되었고, 여러 가지 술과 음식을 먹게 되었지요. 통풍, 당뇨, 고혈압, 고약한 성인병들을 세가지씩이나 안고 50대 후반의 세월을 살고 있는 내가 밤샘 음주를 하다니….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두번이나 밤샘 음주를 하고서도 내 몸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아스파라거스 덕임을 확신합니다. "아스파라거스의 주성분인 아스파라긴산은 콩팥의 기능을 돕고 요산 배설을 촉진시키며 신장이나 전신 근육계의 옥산살 결정을 파괴하므로 요산 축적에 의한 통풍, 신경통, 류마티즘에 효과적"이라는 그 말이 사실임을 내 몸으로 거듭 확인한 것이지요.

통풍환자들에게 참으로 요긴한 물질인 아스파라거스가 한 봉지에 2천원인 것은 다소 비싼 느낌을 주지만, 통풍의 고통에서 해방된 것을 나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통풍을 근원적으로 완치시켜 주는 것은 아니지만, 콩팥의 옥산살 결정을 파괴하는 물질이라는 사실에 더욱 큰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통풍과 당뇨 고혈압 모두 콩팥을 압박하는 병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콩팥이 손상될 것을 염려하며 살고 있는 처지에서는 정말이지 아스파라거스의 존재를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2년 4월 인터넷상에 <통풍을 아십니까?>라는 글을 쓴 처지에서 2년 후인 오늘 <이젠 통풍을 걱정하지 않습니다>라는 이름의 글을 쓰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전국의 많은 통풍 환자들이 이 글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태그: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련 기사]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