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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한다는 소식이 올해 4월 중순경 중국에 전해지면서 전통 절기 단오를 둘러싼 문화논쟁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중국 문화부가 주도하고 중국의 주요 언론이 대대적으로 지원한 단오절 수호 결의대회는 한국을 '문화약탈국'으로 묘사하며 한국과의 문화전쟁에서 승리하여 중국의 전통 절기인 단오를 수호하자는 비장한 문구가 등장하는 등 사뭇 엄숙한 분위기였다.

▲ 한 개에 2위엔(우리돈 300원)하는 쫑즈, 찹쌀 주먹밥 속에는 대추나 고기 속이 들어 있다.
ⓒ 김대오
세계문화유산 선정 경쟁에서 전통 그림자극을 이란에, 티벳의 전통가무와 음악을 인도에 빼앗긴 전철을 이번에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절박한 의지로 해석되었다.

단오에 대한 홍보와 중화사상에 입각한 전통적 민족주의가 한껏 고양된 상태에서 맞이한 올해 단오절은 과연 예년과 다른 다양한 풍모를 보여 주었다.

베이징에서는 100여명의 시인이 참가한 제1회 단오절 작시대회가 열렸으며 광동, 상하이, 청두 등 전국 각지에서는 용선대회, 쫑즈(粽子, 갈대잎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싼 찹쌀 주먹밥) 던지기 대회 등 단오와 관련한 민속행사가 다채롭게 개최되었다.

또한 길거리, 학교 등지에서 쫑즈를 무료로 나눠주며 단오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다분히 기획되고 가식적인 행사들이 많았다.

많은 신문들이 단오와 관련한 기사를 1면에 실었는데 특히 <베이징완빠오(北京晩報)>는 베이징위엔(北京語言) 대학에서 단오의 유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한 한국 유학생이 ‘중국에서는 설날에 만두를 먹는 것처럼 단오에는 쫑즈를 먹어야 한다’고 미국친구에게 소개해주는 말을 인용하며 단오를 둘러싼 한국과의 불편한 관계와 자신들의 우월 의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6월 22일 단오날, 베이징완빠오 1면에 단오절 관련 기사가 실려 있다. 강릉단오제를 세계문화유산에 신청하려 한다는 것에 대해 은근히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 김대오
중국 정부와 언론의 대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반 중국인들이 단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썰렁하기만 하다. 단오가 가까워지며 가게에 진열되는 쫑즈를 사서 먹는 것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반응들이다.

중국의 농촌에서는 그나마 전통 절기와 그 문화를 보존하려는 의식이 남아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도시에서는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서양의 기념일을 중시하지 전통 절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분위기이다.

중국에서 말하는 단오절은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풍습들을 유추해 볼 때 초나라 때의 애국민족시인 굴원(屈原)을 기리는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초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던 굴원은 초나라의 융성을 위해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다가 모략을 당해 정계에서 추방당하여 양자강과 동정호 일대를 떠돌아 다녔다. 경양왕 27년, 초나라가 진나라의 침략을 받아 수도 영이 함락되었다는 조국 침탈의 소식을 들은 굴원은 조국의 운명에 대한 분노와 비애에 싸여 음력 5월 5일에 돌을 품고 멱라수(지금의 상수의 지류)에 몸을 던져 62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애국시인이자 사상가, 정치가이던 굴원을 존경하던 마을 사람들은 굴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앞다투어 배를 저어 강가에 몰려 나왔는데 이것이 후세에 전해지면서 굴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의미의 용선 경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또한 후대 사람들은 훌륭한 인품을 지녔던 굴원의 시신을 물고기들이 뜯어먹을 것을 염려하여 굴원이 죽은 날인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해마다 강가에 쫑즈를 만들어 던져주어 물 속에 잠긴 굴원의 시신을 물고기들이 뜯어먹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단오(端午)의 단(端)은 처음의 의미이고, 오(午)는 곧 양(陽)의 숫자인 오(五)를 의미하니 단오는 곧 음력 초닷새를 뜻한다. 그래서 단오절을 '단양절(端陽節), 단오절(端五節), 중오절(重五節)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칭이나 의의는 비슷하지만 한중 양국의 단오절 풍습은 오늘날 크게 달라져 있다. 특히 강릉 단오제는 이미 쫑즈와 용선으로 대표되는 중국 단오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널뛰기, 씨름, 그네뛰기, 창포에 머리 감기, 풍어제 등 종합적인 전통문화제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그 의미가 높다고 할 것이다.

중국이 그동안 문화 유산 보호에 소홀했음을 인정하고 자국의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그 과정에서 지나친 배타성으로 한국 고유의 독창적 문화유산 자체를 폄하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일 것이다.

어쨌든 고구려문화유산에 이어 단오절도 향후 세계문화유산 선정을 둘러싼 한중간의 뜨거운 문화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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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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