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정병진
한국교회 내에서 '종교다원주의'는 아직 뜨거운 감자에 속한다. 내가 알기에 저자도 종교다원주의자로 몰려 어지간히 홍역을 치른 사람 중 한 명이다.

보수적인 풍토가 지배적인 한국 교회 내에서 '종교다원주의자'라는 딱지는 일반인에게 냉전시대가 낳은 비극적 잔재인 '빨갱이'라는 말과도 같다. 오죽했으면 저자가 '진실은 이렇다'며 유일신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해부하는 이런 책을 썼을까? 그래도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적 요청에 의해 심사숙고하여 쓴 책인 만큼 더욱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일찍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호렙산의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강렬한 신(神)의 현현을 체험한 바 있다. 그 신은 이집트 파라오의 학정 하에서 고통 당하고 있던 히브리인들을 구해내고자 모세를 부른 것이다.

그때 모세는 신에게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자신을 파송하는 이 신이 대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다. 이 같은 모세의 질문에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히,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는 신의 음성이 들렸다. 바로 여기서 '야훼'(여호와)라는 신의 이름이 나왔다.

그러나 '야훼'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신은 인간의 언어로 정확히 포착되거나 표상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의 종교사상가 다석 유영모는 하느님을 일컬어 "없이 계시는 분"이라고 정의한 적 있다. 그의 말처럼 신은 인간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초월해 있기에 "미지의 궁극에 계시는 분"이며, 신학자 폴틸리히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존재의 기반"이자 "궁극적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철저 유일신 신앙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가 관건이긴 하지만, 불교, 유교, 이슬람교, 원불교, 동학과 같은 세계의 여러 고등 종교에서도 유일신론적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철저 유일신 신앙(radical monotheism)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러한 고등 종교들과의 풍부한 대화성을 갖게 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자면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름과 양태들은 각 나라의 종교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을 뿐 근본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작은 붓대롱으로 하늘을 보고는 자기가 본 하늘이 하늘의 전부라고 여기는 독선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무책임한 종교혼합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삶이나 체험이 아니라 머릿속 이론으로 종교 문제를 접근하려는 자들을 경계한다. 열린 신앙으로 다양한 종교들과의 만남을 통해 창조적 자기 변화는 꾀하되,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깊이 헌신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한 종교적 빛깔도 충분히 존중되어야함도 잊지 않고 있다. 일곱 가지의 다양한 색깔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루듯, 각 종교가 지닌 고유한 전통과 독특한 믿음이 소중히 간직되어야 이웃과의 책임 있는 대화와 협동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종교다원주의란 온갖 종교적 편견과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배타주의, 포용주의를 넘어서 '그들 나름의 구원의 길'을 인정하고 이웃 종교들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함께 성숙해 가고 인류 평화증진을 위해 협동하자는 것이다.

이는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무분별한 상대주의에 빠져서 절대적 가치를 지닌 신앙 진리 자체를 무작정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진의는, 역사적인 것과 유한한 것을 상대화시킴으로 역설적으로 상대적이고 유한한 것들을 통해 드러나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진리 자체를 증언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40여 년 동안 연구해온 중요한 신학적 결실의 하나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지금껏 서구 신학의 울타리에 주로 안주해 온 신학담론을 우리 겨레의 하느님 신앙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지평 융합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매우 뜻깊은 성과라고 본다.

하지만 그의 신학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최병헌, 유영모, 김재준, 함석헌, 유동식 같은 수많은 한국신학의 선구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냥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삶의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지성인으로서 이 책을 별난 신학자의 외도라고 덮어놓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신(神)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차원에서라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