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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저자만 믿고 고른 책이었다. 김진경 씨는 시인이며, 교육과 관련한 좋은 글들을 많이 쓰는 분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쓴 동화이기에 더욱 흥미를 갖고 구입해 읽어본 것이다.

동화를 읽기 전에 먼저 맨 뒷 부분에 지은이가 달아 놓은 소개글을 보았는데, '2500년 전에 펼쳐진 옛 해커들의 전쟁'이라고 글 제목을 달아 놓아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일까 했다. 2500년 전에 해커라면? 해커와 목수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알고보니, 저자가 이 동화를 쓴 것은 오랜 중국 목수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기술정보 전쟁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쟁을 일삼는 국가 기관에 예속되어 자신의 뛰어난 기술로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에 실존했던 묵적와 '신의 손'이라 불리던 노반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과학 기술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부터 2500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이들의 직업은 당시의 대표적 과학 기술자라 할 수 있는 '목수'로 설정되어 있다.

노반과 묵적은 실력에 있어 쌍벽을 이루는 당대 최고의 목수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목수들 가운데 왕이라 할 만한 묵자의 빼어난 제자들로 그려진다. 중국 전설에 내려오는 목수 노반은 하늘을 나는 까마귀, 스스로 달리는 마차 등을 나무를 깎아 만들어내지만, 바로 그 기술로 인해 부모님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노반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여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데 쓰도록 초나라 왕을 도와 공격 무기 등을 개발해내고 높은 지위와 많은 재물을 얻었다.

이에 비하면, 노반과 함께 묵자의 같은 문하생인 묵적은 스승을 이어 묵자의 자리에 오른 목수로 각 나라 왕들의 불필요한 침략 전쟁을 통해 무고히 피흘리며 고통 당하는 민중들을 위하여 전쟁을 방지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다. 그래서 무한한 겸손과 사랑을 가르치고 (겸애설), 전쟁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외적을 방어하는 기술(축성술, 방어술)을 개발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결국 노반은 초나라 왕을 충동질하여 송나라를 치려고 하늘을 나는 정찰용 까마귀, 성을 공격할 때 쓰이는 구름 사다리 등을 만들어내고 바야흐로 초나라는 정복 전쟁 준비에 혈안이 되었다. 초나라 왕을 돕는 노반의 기본 생각은,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면 강대국인 한 나라가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묵적은 각 나라들이 모두 세력 균형을 이루어 전쟁 없는 평화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 발발이 코앞에 닥쳤을 때, 묵적은 목숨을 걸고 초나라에 단신으로 건너가 노반을 만나 담판을 짓고 그를 설득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초나라 왕은 한 번 내린 전쟁 결정을 다시 번복하려 하지 않았다.

묵적은 노반과 함께 가상 전쟁을 보여주면서, 전쟁의 결과가 어찌 날 것인지를 왕에게 말함으로써 겨우 그를 설득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자신과 자신의 제자들이 철저히 대비해둔 것들로 인해 초나라가 송나라를 눌러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초나라 왕은 이것을 받아들여 정복 전쟁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이 책은 민중의 희생은 안중에 없는 강대국의 패권주의적 논리라든가, 기술자들이 갖춰야할 올바른 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발명품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보라는 것과, 과학 기술이 어떻게 쓰여야 옳은 것인지를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목수들, 즉 지금의 과학 기술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묵자가 가르쳤던 것처럼 올바른 의식을 갖추고, 자신의 재능을 인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사용하려고 애쓸 때 우리의 미래가 그리 암울하지만은 않으련만...

이 동화에는 사이보그와 같은 인간을 만들어낸 언사라는 자가 소개되고 있다. 묵적은 노반에게 언사에 대해 자신들의 스승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언사의 기술은 신과 같았지만 언사는 그 기술을 가장 천하게 썼다고 하셨습니다. 왕이나 제후에게 구경거리나 만들어 주었으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나 제후가 전쟁을 일으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 데 기술이 쓰인다면 가장 나쁘게 쓰이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금은 보화나 높은 벼슬을 받는다고 해서 기술이 귀하게 쓰인 건 아니라고요. 기술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일 때 귀하게 쓰이는 거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쓰일 때는 천하게 쓰이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목수들의 전쟁 - 천년동안 읽는 동화

김진경 지음, 최달수 그림, 문학동네어린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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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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