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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여덟 살이었다. 술 취한 어떤 이가 의자를 무대 위로 내던졌다. 의자에 맞아 이마에선 피가 흘렀지만 그는 약속한 '쇼'를 다 보여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던질 수 있는 건 뭐든 다 날아오는 '밤 무대'일지라도 그에겐 TV와도 다를 바 없는 신성한 '무대'였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천직을 일찍 알아버린 김영준(20)씨. 그는 다섯 살에 데뷔해 '두심해'라는 예명을 지닌 제법 잘 나가는 '밤업소' 코미디언이다. 트로트부터 힙합까지 모든 장르의 노래와 춤은 기본! 여기에 코미디 만담과 마술까지 첨가돼 무대 경력 15년차인 그에게 불가능한 쇼란 없다.

마술사 이은결을 가장 존경하고 힙합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 한 적이 없다며 내성적이고 평범한 청년이라 소개했다.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알아버린 탓에 세상이 조금은 허무해 보인다고 말하는 두심해씨. 그는 '세월이 너무 빨라 정신이 없다', '벌써 어느 새 20살이 됐다',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냐' 라는 등의 조숙한 말을 꽤나 진지하게 건넸다.

그러나 텔런트 전지현을 이상형으로 뽑으며 “헤어진 여자 친구와 다시 만나는 것"이 현재 소원이라고 말하는 김씨의 얼굴은 영락없는 스무살 청춘이었다. 이런 두심해씨를 보고 그의 어머니 김영숙(42)씨는 "도대체 애인지 어른인지 잘 모르겠다"며 "간혹 내 아들인데도 헷갈린다"고 평한다.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아버지가 부러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건만 혼자 TV를 보며 노래와 춤을 배웠다. 급기야 그의 잠재된 끼는 아버지의 파트너를 밀어 낼 정도로 성장했고 이를 알아본 업소의 한 업주가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설 것을 제의했다. 아버지의 예명을 따 '한심해 부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 김진석
본명 김도문(52). 무대 경력 35년차인 그는 11살에 집을 나와 서커스단을 거치며 유랑생활을 전전했다. 그 후 노래하는 파트너로 같이 일했던 김영숙씨와 결혼해 아들 김영준(20)과 딸 김은지(12)의 아버지가 됐다.

"앗따! 겁나게 박수가 작네~ 이런 때 잘한다고 생각하면 박수 한 번 쳐줘요!"
"저기 언니 내가 그렇게도 좋아? 내가 좀 짧긴 해도 5학년 8반이거든!"
"이래뵈도 내 손 한 번 잡으면 평생 운수대통이야!"

그의 바람몰이가 시작됐다. 무대에 오르자 한심해씨는 신들린 사람처럼 시종일관 입을 열며 몸을 움직인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어도 관객들은 그의 말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에 큰 반응을 보낸다. 한심해씨에게 미리 만들어진 각본이란 없다. 일단 기본 뼈대만 구성한 뒤 나머지 그의 무대는 즉석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같이 만들어진다.

한편, 어딘가에선 반말이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술 병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지금이야 겁나게 웃어 재끼는 한심해씨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찌 사연이 없겠는가. 그는 "원래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지 않느냐, 피눈물로 보냈던 시절이었다"며 그간의 삶을 짧고 굵게 요약했다.

여인숙 사글세방으로 신혼 살림을 시작한 한씨는 결혼한지 8년만에 집을 마련할 만큼 악착같이 앞만 보고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웃음은 많이 나눠야 한다"는 신념으로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무료 공연을 하는 넉넉함도 잊지 않았다.

ⓒ 김진석
아버지 한심해씨와 무려 16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최고 파트너 두심해. 한심해씨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춤을 배우고 마술을 익히느라 밤낮을 잊고 몰두하는 두심해의 열정과 끼를 존중한다. 아들이 그리 원하고 좋아한다면 고단하고 힘들었던 자신의 전차를 밟는다 할지라도 한심해씨는 아들의 선택을 믿어줄 생각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존중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끔 무명이라 TV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어감은 참 싫어요. 무명이나 유명이나, TV이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같은 연예인으로서 구분 없이 다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직업이죠. 제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사람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돼요."

한심해씨는 남에게 웃음을 주며 덩달아 자신도 즐거워질 수 있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다. 정작 자신은 곧 죽어도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하지만 '연예인'에 관한 자부심과 열정만큼은 아버지를 꼭 빼닮은 두심해씨였다.

ⓒ 김진석
거짓말과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가장 싫어하는 한심해씨. 그는 무대에서만큼은 자신의 아들보다도 더 철없는 행동과 장난으로 관객들의 배꼽을 빼놓는다. 그러나 무대를 벗어난 한씨는 곧 두심해씨의 '철없음'을 여지없이 지적하는 엄한 아버지로 변신한다.

"16년간 같이 붙어 다니면 끔찍하죠.(웃음) 붙어다니면서 그때마다 다 말하다 보니 서로 비밀도 없고 이젠 서로 좋고 싫어하는 것들을 알기에 그리 싸울 일도 없어요. 항상 제 옆에 있어주고 이렇게 절 길러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이자 코미디언 선배로서도 존경합니다."

두심해씨는 아버지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까마득하다며 혼자서도 무대를 꽉 메우는 한심해씨의 흡인력을 닮고 싶어했다. 그런 그에게 간혹 일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찾아오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쉬는 일요일과 현충일을 제외하고 매번 공연을 해야 하는 그로선 여느 스무살 청춘들이 누리는 자유와 어리광이 그립기도 하다.

ⓒ 김진석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 마지막까지도 '신용' 이다.' '밤무대' 공연을 하는 연예인들의 철칙이다. 이것이 한 번 깨져버리면 그들의 생존 여부도 불투명해진다. 때문에 무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다한들 ‘진짜’ 연예인이라면 약속한 무대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게 두심해씨의 변이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나이에 이미 연예인의 생존법칙을 몸으로 체득해버린 두심해씨. 그는 어쩌다 우연히 쉬는 날이 생긴다 해도 직업병(?)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조용한 휴식이었건만, 막상 집에 얌전히 있으려 하면 무대에 서지 못해 근질거리는 몸이 말썽이란다. 결국 그는 금세 음악을 틀고 몸을 푼다는 핑계로 또 혼자 공연 연습에 빠져들고 만다.

“무대에만 서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제가 하고 싶은 춤과 노래 마술까지 뭐든지 제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잖아요. 오히려 무대에서 내려 올 때가 항상 아쉬워요. 더 보여 줄 것들이 많고 더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시간상 다 보여 줄 수가 없어요. 혼자서 공연을 생각하다 보면 정말 끝도 없이 이어져요. 특히 마술은 알면 알수록 더 빠져들기에 혼자 있어도 딱히 심심할 틈이 없어요.”

ⓒ 김진석
두심해씨에겐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야말로 천직이었다. 그는 주저없이 말한다. 자신이 좋아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노라고. 요즘 두심해씨는 마술 삼매경에 빠져있다. 제 아무리 못 하는 게 없는 한심해씨라도 두심해의 마술만큼은 따라 잡질 못한다. 이젠 '한심해 부자'가 아닌 '두심해의 매직쇼'로 단독 공연 요청이 잇따를 정도이다.

"사회를 두려워하면 안돼요. 그냥 남보다 작은 것뿐이에요. 장애인이라고 무작정 집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뭐든지 하면서 남과 직접 부딪쳐야 되요.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남들한테 손가락 받지 않을까?'라는 고민만 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스스로 노력해야 되요."

한심해씨가 사회적 편견 안에 웅크려 있는 장애인들에게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비법을 전했다. 항상 아버지를 보며 본보기로 삼을 것. 두심해씨의 어머니 김영숙씨가 두 자녀에게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편견에는 아랑 곳 없이 이루고 싶은 것들을 당당히 이루며 사는 한심해씨. 그는 안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앞서 말한 비법 정도는 두심해 스스로도 이미 터득했다는 것을.

ⓒ 김진석
오래된 잡지가 갑자기 지폐로 돌변하는가 싶더니 휴지가 하얀 강아지로 다시 태어난다. 새까만 스카프가 무지개 색으로 돌변하고 텅 빈 종이 가방 안에서 자꾸만 유리 상자가 생겨난다.

정해진 시간은 15분. 보여 줄 것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두심해씨이기에 떠나야 하는 무대가 여전히 아쉽다. 밤업소의 시끄러운 소음으로 청력이 상해 평소 전화벨 소리도 잘 못 듣고 TV도 크게 틀어 놓는 그이건만 관객이 보내는 갈채의 요란함만큼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다.

ⓒ 김진석
하루 저녁 영등포에서 부천까지 네 곳의 업소를 뛰는 것으로 일과가 마감된다. 귓전에 남은 소음이 체 떠나질 않아 두통이 찾아오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한심해 부자는 "내일 또 봐요"를 인사로 남기며 무대를 떠난다.

아직은 겨울인지라 제법 날카로운 바람이 달라붙건만 그들 부자 얼굴에 맺힌 땀방울에 그만 녹아버리고 만다. '내일 또 봐요'라는 인사를 기억해 찾아올 관객이 단 한 명일지라도 그들은 속살을 파고드는 새벽 기운에 아랑곳없이 ‘내일’의 약속을 철저히 믿고 노래 할 것이다.

▲ '한심해'씨와 부인 김영숙씨.
ⓒ 김진석
사람들이 웃었다. 한심해 부자 덕에 시름을 잊고 아주 잠깐이지만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었다. 그 누구보다도 그들을 보며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듯 진짜 행복하게 웃는 사람이 있다. 한심해 부자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가장 소중한 관객인 김영숙씨가 그 주인공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정말 행복하냐고, 슬픈 것을 애써 감춰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자꾸만 그에게 물어왔다. 그러나 김씨는 말한다. 욕심을 다 채웠기에 충분히 행복하다고.

"제 욕심이 남보다 작은 걸까요? 전 제 욕심만큼 채우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두 아이들도 건강히 잘 크고 남편도 키만 조금 작을 뿐 누구보다 가정을 위해 성실하게 사는 사람인걸요. 우리 가족 모두 열심히 살고 있고 또 남들에게도 열심히 산다고 인정받으면서 모두 만족하며 살아요. 외부에선 우리를 어떻게 볼 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들은 참 행복한데 뭐가 더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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