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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아침 8살 정욱이가 바둑대회에 나간다하여 학원에 급하게 데려다 주고 난 동네 테니스 클럽의 월례회가 있어 아내와 같이 테니스 구장으로 향했다.

정욱이는 개구쟁이다. 어느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또한 자기 마음 먹은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여유가 없이 바로 신경질을 부린다. 자기 누나는 미술이니, 음악이니, 서예 등등 두루 다니게 했지만 주위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아들을 바둑 학원을 다니게 하였다.

나의 경우는 강원도 철원의 적근산 고지 관측소 군 생활할 때 처음 바둑을 접해 바둑의 정석도 모르고 두고 있지만 꼼수만 늘어 그래도 설 명절에 처갓집 장인어른과 대적을 하면 제법 신경전을 부리며 즐기는 11급 수준이다.

정욱이가 바둑 학원을 다닌 지 서너 달이 지나 나하고 바둑을 한 수 하자고 떼를 쓰기에 한 판 붙었다.

정석을 배우지 못한 나로서는 학원에서 정석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아들에게서 한 수 배워 볼 요량으로 접바둑으로 두지 않고 맞붙어 한 집도 허락하지 않을 각오로 막 두었다.

처음에 아들이 자기 집이 만들어 질 것 같은지 방글방글 웃으며 하더니 이상하게 전부 다 잡힐 형편이 되니 나의 얼굴을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더니 바둑돌을 흘리기도 하고 짜증을 내며 바둑을 반 도 두지 않았는데 “그만 두겠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마디 하였다.

"바둑 둘 때 조금 이길 것 같아 까불고 웃고 하면 바둑은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둑은 신사들이 두는 것이기에 늘 점잖게 두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하기 싫어 죽어가는 목소리로 "예~" 했다.

아내는 좀 져 주면서, 아이를 달래가면서 가르치지 않고 사정없이 바둑을 두는 내 모양이 너무 미운 모양이었다.

10여년 넘게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테니스장의 부족으로 동호인 테니스는 대개가 복식으로 2인 일조가 되어 게임을 하기에 동네 테니스 클럽에서는 회원들의 실력을 맞춘다. 대개 제일 고수와 제일 하수를 한 편으로 조를 만들어 게임을 하므로 대다수 하수들은 실제 게임에 들어가면 고수가 공을 다 처리해 제대로 어려운 공을 쳐 볼 기회가 없어 혼자서의 혼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평생 하수로 밖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이들의 빠른 성장은 진짜 강하고 빠른 공 맛을 보여주고, 어려운 공을 주어 실력차를 느끼게 해줄 때, 진짜 테니스를 하겠다는 사람은 열심히 배운다고 본다.

내심 아들이 내일부터 “바둑학원에 안 가”하고 버티면 곤란한데, 승부욕이 대단하기에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하였다.

몇 번 둘 때마다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고 두니, 이제는 자기로서는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빠는 바둑 두며 하품하고 트림하고 한다"는 불평을 하면서 다시는 두지 않겠다고 한다.

하루는 자기 친구가 우리 집에 와 바둑을 배운 시기가 같기에 같이 한 번 바둑을 둬 보라 했는데, 정욱이가 졌다. 정욱이한테 “왜 졌는냐”고 물으니 학원에서 두면 이기는데, 우리집에 왔기에 대접을 해 주기 위해 졌다는 것이다.

한 달 전쯤 되었나? 아들은 어디 바둑 시험을 보러 갔다 왔는데, 바둑을 두면서 움직이지 않고 시험을 잘 보아서 원래는 18급을 받아야하는데…. 만점을 받아 금박으로 새겨진 상장과 같은 용지에 바둑 17급이라는 증서를 받아 왔다.

바둑대회에 나간다고 하여, 내가 보던 바둑 책을 주었다. 한자가 들어있어 제법 난해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는 그림만 보고 바둑돌을 책대로 이리 놓고, 저리 놓고 하면서 꼼짝하지 않고 몇 판을 혼자서 두었다.

대회에 보내 놓고, 한참이나 어떻게 하였을까 궁금했는데, 집에 돌아올 시간쯤 전화를 해 보니 정욱이의 목소리는 대단히 흥분되어 있었다.

"아빠 나 트로피 내일 받게 된다. 4승 1패 했어. 4학년 누나한테만 졌어!"하며 아주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제 저녁에는 6학년에 올라가는 자기 누나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겠다며 달려들었다.

자기 누나는 바둑을 둘 지 모르니, 내가 하던 대로의 막 두기식이 아니고 오히려 배려하면서 누나의 집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자기 집을 만들어 나가니…. 누나도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한참이나 같이 바둑을 두는 것이었다.

나도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바둑 두다가 정욱이한테 전에 패한 적도 있지만, 바둑을 두면서 친구를 배려하고 처음 배우는 누나를 달래가면서 두는 것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고수다워 대견스러웠다.

덧붙이는 글 | 삼환 테니스 홈페이지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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