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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인생은 바다와 같다. 헤엄치지 않으면 죽고 만다."

오는 13일 무주에서 열리는 복싱 신인왕전에 출전하는 조영익(25·슈퍼라이트급)씨. 젊은 나이에 복서와 복싱트레이너라는 두 개의 직함을 가진 그는 "꿈을 쫓느라 오늘이 100% 행복한 청년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비록 작년 도전이 실패로 끝났지만, 조씨는 꾸준히 준비한 지난 1년의 노력을 믿는다며 그저 담담해했다. 그가 항상 이렇게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학창 시절 그리 많은 친구들을 사귀지 않았고, 막연한 불안감으로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복싱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무엇보다도 '자신감' 을 얻었다는 거죠. 예전엔 해보기도 전에 괜히 불안했는데, 이젠 직접 내가 부딪쳐서 해보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냉정하지만 '인생은 바다와 같아서 헤엄치지 않으면 죽고 만다' 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가만히 멈춰 있으면 아무 것도 얻는 게 없잖아요. 계속 앞으로 움직이며 꿈을 쫓고 싶어요."

복싱을 시작하면서 그는 변했다. 링 위에서 땀 흘리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삶에 대한 자신감도 같이 불어났다. 빨간 날을 제외하고 땀내 나는 체육관에서 하루 평균 13시간을 근무한다. 관원이 쉬는 일요일에도 개인 운동을 하느라 여지없이 체육관을 찾는 사람이 바로 조씨이다.

ⓒ 김진석
‘뭘 하고 살아야 할지’ 혹은 ‘무엇을 가장 좋아하며, 잘할 수 있는지’를 몰라 적잖이 방황할 나이. 그는 남보다 일찍 진로를 결정한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복서야말로 자신의 '진짜' 꿈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조씨. 무언가 몰두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 쳐다보지도 듣지도 못할 만큼 빠져버린다는 그는 오늘도 내일을 위한 새벽 로드워크(roadwork)를 멈추지 않는다.

7년간 태권도를 배우다 사범증을 준비하기 위해 우연히 시작한 복싱이 이젠 조씨의 인생 목표이자 나침반이 되었다. 그의 목표가 비단 세계 챔피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풍부한 선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복싱 지도자가 되는 게 조씨의 궁극적인 바람이다.

"좋은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지식보다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끊임없이 연구하고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하죠. ‘하나’만 가르쳤는데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 ‘둘’ 을 배우는 학생들을 볼 때 가장 뿌듯해요. 나중에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저와 '판박이' 라는 말을 들으면 참 불쾌할 것 같아요. 지도자란 자기보다 더 뛰어난 학생들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태권도를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아는 걸 자연스레 남에게 가르쳐주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이 사범과 복싱 관장의 눈에 들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평소 남 앞에서는 다소 긴장된다는 조씨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열정’ 때문인지 긴장감이 다 사라져 버린다고.

ⓒ 김진석
“복싱을 하며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웠어요. 서로 모자라는 건 채워주고 모르는 걸 가르쳐주면서 사람 사귀는 법을 배웠죠. 그 분들을 통해 사회경험도 간접적으로 많이 얻은 것 같아요. 순수하게 서로 목적 없이 그저 복싱이 좋아 모인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많은 형과 동생이 생겼어요.(웃음)”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땀 흘리는 선수들을 통해 조씨는 또 다른(?) 사회를 배우기 시작했다. 과거 마케팅, 의류 장사, 보안업체 등의 일을 하며 그가 겪었던 사회에서 느낀 혼란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조씨는 꿈이 있던 시절과 없었던 시절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소극적이었던 아들이 지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해쳐나가는 모습에 부모님도 신기한지 차마 복싱 선수의 길을 말리지 못한다. 어떤 친구들은 조씨에게 "장시간 노동인데, 그 적은 돈으로 어떻게 버티는가?"라는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

이에 조씨는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버는 가치를 아느냐"고 물으며 "돈이라는 건 살다보면 쌓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 김진석
“물론 맞는 것에 대한 공포심은 저도 있어요. 근데, 링 위에만 올라가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링에 올라가서 대전할 때의 그 ‘맛’은 올라가 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모를 걸요?(웃음) 딱히 정확히 꼬집어 말로는 설명을 못하겠어요. 마약이 이런 걸까요? 그 맛에 한번 빠지고 나니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는 거 있죠.”

사실 프로 복서가 된다 한들 국내에서는 경기가 없어 복서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편이다. 게다가 잘한다고해서 여타 인기종목인 축구나 야구처럼 스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운동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비인기 종목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들과 똑같죠. 제가 원하고, 좋아하면 그만 아닌가요?”

담담하고 단호한 어투다. 아침 9시 30에 출근해 밤 11까지 근무하는 고된 훈련이자 노동이지만 후회는 없다.

ⓒ 김진석
2004년 조씨가 이루고 싶은 소망이 세 가지 있다. 우선은 신인왕전을 통과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 마지막은 개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약 올해도 떨어지면 어떡해요?”
“안되면 될 때까지 해야죠(웃음). 다시 한 번 도전하든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요.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복싱인의 꿈을 놓고 싶지는 않아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선택에 확신 할 수가 있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그 값어치는 언제가 꼭 인정받는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깔끔한 복싱으로 롱런 하는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조씨. ‘진짜’ 꿈을 발견하는 순간이 곧 '행복 시작'이라는 그에겐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삶의 진지한 열정과 정직한 믿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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