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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서울시는 남산 소나무 숲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보존대책을 발표했다. 시 관계자는 "민족의 상징인 남산 소나무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늠름한 기상과 위용이 넘치는 푸른 숲으로 보존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각 언론매체에서 일제히 이 사실을 보도했는데, 많은 기사들이 애국가의 '남산 위의 소나무'를 언급하고 있다.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남산 위의 소나무’에 대한 대대적인 보존 관리가 시작된다." (조선일보)

"애국가 2절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관리하기 위한 남산 소나무림 보존대책이 추진된다." (동아일보)

"남산 소나무는 다른 지역 소나무와는 달리 껍질이 붉고 형태가 수려해 애국가 2절 가사에도 등장할 정도로 ‘민족 기상의 상징 ’으로 여겨져 왔다." (문화일보)

"애국가에 나오는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한 남산 소나무가 옛 모습을 되찾아 민족 정기가 발현되길 기대한다." (세계일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서울시가 1일 남산 소나무림을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하기 위한 '남산 고유 소나무림 보존대책'을 마련, 추진키로 해 눈길을 끈다." (매일경제)


<숲과 한국문화>란 책을 낸 국민대 전영우 교수는 서울 남산의 소나무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광복 5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한남동 외인아파트 터에 조성된 남산 소나무 복원 현장을 둘러봤다. (중략) 이렇게 남루한 소나무가 과연 남산 소나무의 본 모습일까. 애국가 가사 속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변치 않는 지조와 충절, 굳건한 기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우리 가슴 깊숙이 각인된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한 남산 소나무는 상상 속의 소나무인가.

(중략) 남산의 소나무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하나의 상징적 문화요소이다. 마치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우리 정신을 지배하는 민족혼이나 정체성이 우리말과 글에 녹아 있기 때문인 것처럼 ‘남산 위의 저 소나무’도 우리의 민족혼을 지키는 한국인의 정신이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문화일보> 2003년 7월 10일자)


애국가의 남산은 서울의 남산이 확실할까? 이에 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이어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문제 제기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점은 긴 글을 읽게 될 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애국가의 남산 문제에 앞서 '남산'에 대한 어원부터 살펴보자.

"백두산이나 한라산은 강토를 통틀어 단 하나뿐이라지만 남산은 전국에 걸쳐 수십 개나 존재하는 산이다. 그저 앞산을 남산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산이 남산이다." (<오마이뉴스> 2003년 9월 2일자 권기봉 기자)

임신했을 때 배가 남산 같다고 말하는데 위의 설명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향토사학자 윤민용씨는 이렇게 말한다.

“원래 남산은 도읍(都邑)이 있는 곳의 앞산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였습니다. 죽산에 남산이 있다는 것은 죽산에 도읍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서울과 경주, 개성에 남산이 있잖습니까.” (<한국담배인삼공사> 웹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남산' 은 '앞 산'이라는 설명이다. 박갑천씨는 애국가의 남산이 서울 남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애국가 중의 또 한 가지 '남산'의 의미를 모르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어느 고장을 가나 `남산`은 있습니다. 서울의 남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남`은 한자로 지금은 `남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원래 `남`은 `앞 남`이었습니다. 즉 `남산`은 `앞 산`이란 의미입니다. `앞에 있는 산`이 곧 `남산`입니다. 그리고 `북`은 `뒤 북`이었었습니다. 그래서 `북망산`에 간다는 것은 `뒷산`의 묘지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을유문화사)


엠파스나 네이버의 지식검색에도 애국가 남산에 대한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박갑천의 글을 인용한 답변들이 주로 논쟁의 마침표를 찍고 있다.

얼마 전 지식검색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이 부분을 인용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반박글이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럼 애국가의 남산이 서울의 남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된 상식이었을까?

이런 의문이 생긴 까닭은 애국가의 작사자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애국가의 남산에 대해 언급한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남산이 설사 동네의 '앞 산'을 의미한다고 해도 작사자가 서울 남산을 염두에 두고 가사를 지었다면 의문이 쉽게 풀렸을 것이다.

실제로 서울 남산은 민족 기상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상징물이기 때문에 애국가의 남산이 서울 남산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 윤치호 작사, <애국가> (뉴욕시립박물관 소장), 1907년 작.
ⓒ 뉴욕시립박물관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 안창호, 최병헌, 김인식 등 여러 설이 있고 이중 윤치호가 가장 유력하긴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가 1955년 ‘미상’이라고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논쟁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 결론은 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목멱산(木覓山)은 도성의 남산인데 인경산(引慶山)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산은 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일반화된 이름이고, 고유명은 목멱산, 인경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남산을 우리말로는 '마뫼'라고도 불렀는데 한글학자 문일평은 마는 남쪽을 뜻하는 우리말이고 뫼는 산을 뜻하는 순우리말로서 마뫼는 우리 고어로 남산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고, 목멱은 우리말 마뫼의 한자음 표기라고 하였다."


위의 글이 실린 '남산사랑' 홈페이지에 따르면 남산이라고 바뀐 시기는 1394년이라고 한다.

1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절 :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은 서울 남산일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하지만, 가사를 잘 살펴보면 백두산을 빼고는 특정 지역이나 지명을 언급한 부분이 없다.

말하자면 서울뿐 아니라 삼천리 화려강산 방방곡곡 어느 곳에 사는 백성들이라도 자긍심을 갖고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남산이 서울 남산이 아니라 어느 곳에나 있는 남산인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남산'의 어원이 어느 마을에나 있는 동네 '앞 산'이라는 설명은 맞고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이 앞 산을 의미한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이 있지만, 애국가의 작사에 대한 보다 충분한 자료가 발견될 때까지는 결론을 미뤄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애국가의 남산이 서울의 남산이라는 명백한 증거 또한 아직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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