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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농촌에서 산 지가 거반 2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못하는 게 많다. 농사야 시늉만 내는 얼치기라도 누가 욕하는 사람도 없다. 힘으로 하는 건 어떻게 하든 해보겠는데, 힘으로도 안되고 오기로도 안되는 게 있다. 바로 키질이다. 텃밭에 콩이나 들깨 참깨를 심어 수확을 하게 되는 경우 키질을 해야 한다.

커다란 멍석에 밭에서 거둬들인 콩이나 깨 덤불을 작대기로 두들긴다. 그러면 속 알맹이가 빠져나온다. 검불과 알맹이가 한 데 섞여서 손으로 대충 검불을 걷어 낸 다음 키로 까분다. 키질을 하면 단단한 알맹이는 안쪽으로 몰리고 검불이나 쭉정이는 바깥쪽으로 몰린다. 그러면 키를 톡톡 흔들어 검불이나 쭉정이를 떨어낸다. 다른 사람이 키질을 하는 걸 보면 쉽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 게 키질이다. 콩이야 잘못해서 땅에 쏟아도 다시 손으로 주울 수 있지만 깨는 한번 땅에 쏟으면 손으로 주울 수도 없고 곤란하다. 그러니 처음부터 조심해야 한다. 키질을 하는 것은 기술이다. 처음에는 공중에 크게 날려 받는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한 다음, 나중에는 살살 구술러서 검불이나 쭉정이를 떨어낸다.

ⓒ 느릿느릿 박철
키질은 할머니들이 잘 하신다. 키질에도 일정한 리듬이 있다. 키질을 잘하는 사람의 모양은 매우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나 같은 초보는 리듬을 탈줄 모르고 키질하는 모습이 매우 불안정하고 부자연스럽다.

잘 하는 사람 흉내 낸다고 괜히 까불다간 알맹이를 뭉텅 쏟아버리고 만다. 또 한 가지 기술은 바람을 적당하게 이용해야 한다. 키질을 하면서 바람을 만들어 낸다. 그 바람으로 검불과 쭉정이를 날려 보내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키질의 백미는 알맹이는 안쪽으로 쭉정이는 바깥쪽으로 몰아내는데 있다. 키질을 하면 단단한 알맹이는 제자리에 떨어지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대나무로 키를 만들었기 때문에 얼기설기 엮은 표면에 알맹이가 미끄러 떨어지는 것을 방지해 준다. 선조들의 지혜이다.

ⓒ 느릿느릿 박철
논에서 벼수확을 끝내고 시골아낙들은 콩 줄기를 걷어다 콩을 턴다. 작대기로 두들겨 콩을 턴 다음 키로 까분다. 요즘은 대형 선풍기를 이용하여 콩을 골라내기도 한다. 키로 콩을 까부는 풍경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농촌아낙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키질을 하는 것일까? 머리에는 수건을 동이고 온몸에 검불 투성이를 하고 키질을 한다.

세상에는 검불이나 쭉정이 같은 사람이 많다. 검불이나 쭉정이 같은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 속이 깊지 못하다. 속이 허(虛)하니 말이 많고 소리만 크게 지른다. 속이 튼실한 알맹이 같은 사람은 말이 별로 없다. 알맹이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이다.

그러면 과연 나는 쭉정이 같은 사람인가? 알맹이 같은 사람인가?
우리는 세상에서 쭉정이 같은 사람들을 대할 때, 왜 하느님은 악인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많은 권력과 부를 누리고 사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실까 하고 의심한다. 그러나 영혼의 키질을 할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다. 괜히 어설프게 키질을 할 생각은 그만두라. 하느님만이 하실 일이다.

ⓒ 느릿느릿 박철
스스로 나는 알맹이(알곡)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여, 남이 잘 되는 것이 시기가 나고, 질투의 불꽃이 그대들의 가슴 속에 타오르거든 혹시 자신이 쭉정이가 아닌가 성찰해보시라. 바람만 불면 검불과 쭉정이는 다 날아가고 만다. 지금 그대는 모진 바람을 견딜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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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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