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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읍내 '아담 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군민들이 가스통에 불을 붙여 경찰을 위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우리도 냄비라도 뒤집어쓰고 나올 걸 그랬나봐."

때는 19일 밤 10시30분께. 부안수협 앞에서의 촛불집회를 마친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부안 예술회관과 부안 군청으로 향한 뒤였다.

오래 전 '아담 다방'이 있었던 자리여서 '아담 사거리'라고 불린다는 거리에서 만난 30대와 50대 주부 2명은 경찰과의 대치 상황이 초조한지 주변을 서성이며 이같이 말했다.

부안읍내에서 가장 번화가여서 새벽 1시가 넘어서도 불야성을 이룬다는 아담 사거리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사거리에 즐비한 상가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불이 켜져 있는 상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도로를 지나는 차들도 극히 적었다. 간간히 앰뷸런스 소리와 멀리서 LPG통이 폭발하는 굉음이 들릴 뿐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고아무개(38)씨와 김아무개(51)씨는 경찰의 진압을 우려섞인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김씨는 기자가 쓰고 있는 헬멧을 가리키며 "우리도 다음엔 저런 모자를 써야 한다. 오늘 노란 냄비라도 쓰고 나올 걸 그랬나보다"라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물었다.

"주민들은 경찰이 지난 17일에도 '폭력 진압'을 했다고 말하던데 무섭지 않으세요?"

그런데 김씨의 답은 단호했다.

"무섭긴요. 죽기 살기로 해야지!"

옆에서 고씨도 거들었다.

"내 남편은요, 그저께(17일) 경찰 방패에 맞아서 무릎뼈가 나갔어요. 그걸 봤어야 하는데. 그날 내가 보기에 경찰은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주부들은 이날(19일) 주민들이 격앙돼 시위에 나선 이유를 지난 17일 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서 찾았다.

김씨는 "그날 경찰들이 주민을 향해 빈병을 던졌다"며 "증거로 주민들이 수거한 병만 100개가 넘었다"고 말했다. 고씨도 "왜 가만히 서 있는 주민이나 학생들까지 방패로 찍느냐"면서 부르르 떨었다.

▲ 부안성모병원에 부상당한 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지난 17일 시위에서의 경찰의 과잉진압과 주민들의 분노는 '소문'도 만들어냈다. "경찰 간부들이 대원에게 술을 먹이고 진압을 내보냈다"는 것이다. 근거를 찾기 어려운 소문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 소문을 '사실'로 믿었다. 이날 시위가 진정될 무렵인 밤 11시30분께 부안 수협 앞에서 만난 천아무개(47)씨도 확신에 찬 어투로 "경찰들에게서 술 냄새가 났었다"며 "얼굴이 벌건 게 분명히 술을 먹고 진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부안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말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에 질세라 "아니 제 정신이면 어떻게 제 아비, 어미같은 어른들에게 그렇게 방패를 휘두르냐"며 소문을 '진실'로 믿었다.

부안에서 만난 군민과 경찰 사이의 반목과 불신은 이처럼 심했다. 부안대책위 측에서 '해산'을 표명했음에도 20일 새벽 1시까지 일부 주민과 경찰이 대치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경찰을 약 20여 미터 앞에 두고 주민들은 "아니 저것들이 왜 안가는 것이여? 우리를 집에 안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당가"라며 경찰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경찰도 같은 이유에서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기자가 다가가자 부안서 정보과 관계자는 "주민들이 몇이나 있느냐. 이제 시위는 그만하고 해산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20대 초반의 기동대원들도 고생이었다. '군기'가 꽉 잡힌 이들은 방패를 앞에 뉘어놓은 채 아스팔트 위에 앉아 다리를 편히 펴지도 그렇다고 가만히 굽히고 있지도 못한 채 꼼지락거렸다. 그들도 부안읍내를 종일 뛰었을 터이니 다리가 편할리 없다. 피곤한 기색이 한눈에 들어왔다.

결국 약 1시간 동안 의혹의 눈초리로 서로 바라 보기만 하던 주민과 경찰은 '해칠 의사가 없음'을 서로 암묵적으로 확인한 뒤 현장을 떴다.

부안 군민과 경찰 사이에 자리한 이같은 '불신'은 결국 핵폐기장 문제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태도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군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과 군수에게서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40여년간 부안에서 살았다는 한 주민은 "노무현 대통령도, 김종규 군수도 모두 이 손으로 뽑았다"며 "그런데 지금은 그 손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라고 한탄했다.

제대로된 의견 수렴 없이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한 군수에게도, 주민 투표를 제안했음에도 '거부'의사를 밝힌 정부에게도 이들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믿을 것은 우리밖에 없다"며 매일같이 12개 면에서 버스를 빌려 '촛불시위'에 참여하러 오는 부안군민들. 이들이 지난 3개월간 외친 구호는 단 하나다.

"주민 의견수렴 없는 핵 폐기장 유치 전면 무효."

부안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는 이 구호를 왜 정부만 듣지 못하는 것일까.

부안군민과 경찰사이의 반목도, 불신으로 빚어진 '소문 소동'도 허투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새만금 간척도 반대"
반핵시위 3개월 부안군민... 새만금사업도 환경위해 '반대'

▲ 19일 오후 고속도로 연좌시위를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부안수협 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부안군민들.
ⓒ오마이뉴스 안현주

지난 3개월 동안 '반핵시위'로 들끓었던 부안군의 인식변화는 '새만금 간척사업'에도 전이됐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불과 수 개월 전만해도 '새만금 간척사업'을 찬성했으나, 이제는 그 정반대의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는 부안읍 곳곳에서 만난 주민들에게서 느껴졌다.

서해안고속도로로 향하는 부안들판 한가운데서 만난 주민 이아무개(54)씨는 대표적인 경우. 이씨는 "사실 처음 간척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지역 발전을 위해서인가보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찬성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씨는 "알고보면 위도민이 처음 핵 폐기장 유치를 찬성한 것도 '새만금'때문"이라며 "간척사업으로 생계의 현장을 잃은 위도민들이 정부의 근거없는 '보상설'에 솔깃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씨가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또다른 이유는 환경문제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다. 이씨는 "새만금은 각종 희귀철새가 머물다 가는 천혜의 갯벌인데 그런 갯벌을 죽여서야 되겠느냐"고 성토했다.

이씨는 "하지만 '반핵시위' 전에는 그런 점들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이젠 환경을 위해서 핵 폐기장도 새만금 간척 사업도 반대한다"며 "내 주위만 해도 대단한 의식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안읍내의 '아담 사거리'에서 만난 주부 고아무개(38), 김아무개(51)씨도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이제는 새만금도 안된다"며 "간척사업 이후 새만금은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씨는 "예전엔 나도 뭘 몰라 새만금 사업에 찬성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결국 물길을 막아 새만금이 썩어가고 있지 않느냐"고 한탄했다.

김씨도 "부안은 누가 뭐래도 내 아름다운 고향"이라며 "우리는 이 땅을 지키며 살고 싶어 핵 폐기장도 새만금도 반대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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