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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창동 백범 묘소에 꿇어 사죄하는 권중희씨
ⓒ 박도
"백범 선생님, 불초 중희 정말 면목 없습니다. 만고 역적 안두희 그 놈의 입을 열어서 시원한 진상도 밝히지도 못하고 괜스레 세상만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안두희 그 놈을 제 손으로 처치하지 못한 점도 두고두고 천추의 한으로 남습니다. 아직도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몽매한 저에게 채찍을 주십시오. 미력하나마 안두희 배후 진상을 밝히는 데 여생을 바치겠습니다."

가을볕이 좋은 지난 10월 25일 오후, 효창공원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앞에서 권중희씨가 꿇어 사죄하고 있었다. 그 날은 암살범 안두희가 박기서씨에게 응징 당해 숨을 거둔 지 7주기 다음다음날이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達)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칠십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 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貧賤)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 독립공원 3. 1 독립선언기념탑 앞에서 이항증(왼쪽) 권중희(오른쪽) 씨
ⓒ 박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기신 <백범일지>의 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한 분이신 백범 선생에게 해방된 조국 땅에서 그것도 동족이 흉탄을 쏘고, 그 범인은 감옥에서 나온 뒤 다시 현역 장교로, 예편 후에는 군납업자로 호의호식하는 세상은 크게 잘못된 세상이었다.

권중희(權重熙), 193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 경덕중학교 재학 중에 <백범일지>를 읽고 민족혼을 가슴에 아로 새겼다.

그 후 백범에 관한 책이라면 빼놓지 않고 탐독하던 중, 암살범 안두희가 버젓이 활개치고 살아 있다는데 격분하여 몇 차례 정부에 안두희를 응징하라고 탄원서도 보냈건만 공소 시효가 만료되어 처벌할 수 없다는 답변에 당신이 직접 그를 응징하고 암살 배후를 밝히고자 생업도 팽개친 채 안두희 추적에 나섰다.

1987년 마침내 김포에 사는 안두희를 발견하고 빚쟁이에 몰려 도망 다니는 사람처럼 가장하여 안두희에게 접근해서 기회를 노리던 중, 외출하던 안두희를 미행하여 마포구청 대로에서 몽둥이로 응징했다.

▲ 안두희의 수기 <시역의 고민> 표지
ⓒ 박도
권중희씨는 그 일로 형무소까지 갔지만 출소 후에도 암살의 진상을 밝히고자 추적을 계속했다. 1991년 한 차례, 1992년 세 차례에 걸쳐 안두희를 응징하고 중요한 자백의 일부나마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그 후 다시 안두희를 응징하기에는 자금 마련은커녕 당신 호구지책도 어려웠다. 그런 중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 인천시 중구 신흥동 자택에서 운전기사 박기서씨에게 피살되었다.

권중희씨와 동향으로 평소 친분이 두터운 이항증(광복회원·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증손)씨의 주선으로 권중희씨를 2003년 10월 25일 12시에 독립 공원 3.1기념탑 아래서 만나기로 했다.

필자는 그 분을 만나기 전에 대학 도서관을 뒤져 안두희 수기 <시역의 고민>, 전정일 편저 <안두희 그는 누구인가>, 권중희 편저 <백범 살해범 안두희>, 권중희 지음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를 빌렸다. 좀 더 사건의 개요를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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